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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7일 : 성 안토니오
조회수 | 2,845
작성일 | 06.01.17
성 안토니오 (251~356)

서로 기도해 주기

아주 유명한 사람이 나에게 친필 편지를 보내 충고와 조언을 구한다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4세기경 이집트 사막 한가운데서 안토니오의 지도를 받고 있던 수도자들은 어느 날 황제의 인장이 찍힌 편지를 받고 무척이나 놀랐다. 그것은 콘스탄티노 대제와 그의 아들들이 자기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보낸 편지였다. 안토니오는 놀라는 수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황제가 우리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해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닙니다. 그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아닌가요? 우리가 정말 놀라워해야 할 것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편지를 쓰시고 그의 아들을 통해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성 안토니오가 황제에게서 요청받은 것은 기도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우리는 하느님께 서로 기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존 돈이 “사람은 아무도 전적으로 혼자 존재할 수 없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 모두는 하느님을 필요로 하고 또 서로를 필요로 한다. 누군가 기도를 부탁할 때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다른 사람에게 기도를 부탁한 적이 있는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한다.

생활성서[작은 거인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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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아빠스(251-356년)는 모든 수도자들과 은수자들의 아버지 또는 사막의 성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인은 이집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유복한 생활을 하였으나 “하느님의 나라와 부자”에 관한 복음 말씀을 듣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뒤 은수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는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싸우는 아타나시오 성인을 도와 교회의 정통 교리를 수호한 수도자였습니다.

신비로운 것은, 안토니오 성인은 글을 모르는 사람이었음에도 교회의 호교론을 증언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아타나시오 성인은 자신의 저서 『안토니오의 생애』에서, 안토니오 성인이 교회에서 유명해진 것은 학문의 지혜나 기술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타고난 영적 신심 때문이었다고 증언합니다.

안토니오 성인에 대하여 한 교회 역사가가 전하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 하루는 철학자 한 사람이 안토니오를 찾아와 은둔 생활을 할 때에 독서에서 오는 즐거움과 위로 없이 무슨 낙으로 하루하루를 견디어 내느냐고 묻습니다. 이에 안토니오 성인은 “지혜의 학자님, 자연이 바로 그 책입니다. 저는 자연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글들을 읽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성인은 비록 인간이 만든 글을 통하여 세상의 지식을 가까이하지는 못했어도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자연을 통하여 그 누구보다도 영적인 지식을 충만히 갖춘 분이었습니다.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신 주님께서는 법에 대한 세상 개념 안에서는 법을 어겼을지라도, 하느님 계명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법의 정신을 살리셨습니다. 우리도 안토니오 성인처럼 세상의 지식보다는 하느님의 지혜를 더욱 추구하는 참다운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매일미사에서
  |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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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으로 거듭난 광야의 은수자

“수사님, 독서(讀書)에서 오는 위로 없이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습니까?”

하루는 한 철학자가 안토니오 성인을 찾아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성인은 웃으며 대답하였습니다.

“철학자님, 자연이 바로 책입니다. 나는 자연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글들을 읽습니다.”

오늘 기념일을 지내는 안토니오 성인은 글을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이를 안 사람들이 수시로 조롱하는 말을 건네었으나 성인은 흔들림 없이 수도자로서의 당신의 길을 꿋꿋이 가셨습니다.

'수도자들의 아버지' '사막의 성인' 등으로 불리우는 안토니오 성인은 251년 이집트 중부 코마나의 한 부유한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스무 살에 양친을 잃은 후 성인은 어린 여동생을 돌보며 많은 재산을 관리해야 했습니다. 평범한 부자 청년이었던 안토니오의 삶을 바꾸어 놓았던 것은 복음 말씀, 그 중에서도 특히 예수님과 부자 청년과의 대화 장면이었습니다. 성인은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이 곧 자기를 향하여 하신 말씀이라고 깊이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19,21)

결국 성인은 많은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여동생은 친척에게 맡기고는 참회와 청빈의 삶을 살기로 마음먹습니다. 그 후 인근 한적한 곳에서 어느 정도 덕을 닦고 난 안토니오는 외부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하여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빈 무덤 동굴로 거처를 옮겨 십 오 년 동안 기도와 금육 생활을 엄격하게 수행합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1베드5,8)는 성경 말씀처럼 성인은 많은 유혹에 시달렸지요. 그러면 그럴수록 성인은 더욱 기도와 금욕 생활에 전념하여 유혹과 시련을 하느님께 나아가는 성숙의 계기로 승화시킵니다. 안토니오 성인의 감탄할만한 생활이 사방에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그를 따라 살았습니다. 특히 수도 생활에 희망을 품은 청년들이 몰려들었지요. 성인은 이들의 청을 받아들여 그들의 영적 지도자가 되기도 합니다. 곧 초기 수도 생활이 시작된 것이지요.

311년 막시미아노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박해하기 시작하자 안토니오는 산을 내려가 악렉산드리아에 가서 공공연히 설교를 하며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신앙을 북돋아주고 박해가 끝나자 다시 사막으로 돌아가 은수자 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그 후 이집트 나일강 끝에 자리한 피스피르 산에 들어간 성인은 약 20년 동안 사람을 만나지 않은 채 빈 성채에서 수도 생활을 계속합니다. 그의 뛰어난 성덕과 수많은 기적에 관한 소문이 퍼지면서 제자가 되기를 청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은수자들의 집단이 여기저기에 생겨나게 됩니다. 이들은 각자 움막에 거처하다가 주일이나 축일에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영적인 스승 안토니오에게서 지도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안토니오는 하느님과 일치하는 더 충실한 삶을 위해 홍해 근처에 있는 콜짐이라는 높은 산으로 은둔소를 정하고 더욱 기도와 수덕 생활에만 전념하였습니다. 훗날 이곳은 홍해의 ‘성 안토니오 수도원’, 혹은 ‘안토니오의 산’으로 불렸으며 여기에서 안토니오의 제자들이 안토니오의 서한들을 작성하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특히 성인은 당시 득세하던 아리우스 이단과 맞서 정통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은둔지를 떠나 알렉산드리아로 움직이기도 하는데 투쟁 중에도 기도와 단식을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365년 105세의 나이로 돌아가시자 성인을 따르려는 수도자와 일반인들이 5천명 이상 장지로 모여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안토니오 성인은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기보다는 자신의 이기적인 삶을 위해 세상적인 욕망만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기에 그 끝 모를 욕망의 추구 앞에서 깊은 갈증과 불만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지요. 그 결과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며 지옥 속에 살아갑니다. 그래서 어떠한 시대보다도 풍요롭고 부유하지만 그 어떤 시대보다 외롭고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온 땅에 원수들이 쳐 놓은 올가미들이 있는 것을 본다. 나는 한숨을 내어 쉬며 중얼거렸다. ꡑ누가 이들을 피해 갈 수 있겠는가?ꡑ 그 때 내 귀에 한 음성이 들려왔다. ꡑ오직 겸손뿐이다.ꡑ"

성 안토니오 아빠스의 가르침입니다. 성인은 하느님의 말씀에 귀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었고 유혹과 시련을 넘어 참 행복에로 가는 길을 아는 사람이었지요. 인간은 욕망의 추구를 통해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아오스딩 성인의 말씀대로 “하느님 안에 쉬기까지는 불안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육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철저하게 하느님 안에서 살아감으로써 참된 평화와 충만한 삶을 이루어낸 안토니오 성인의 삶을 깊이 묵상하고 본받는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서울대교구 이기양 신부
  |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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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2년 전, 이맘 때, 휴가를 보내면서, 어느 수도원에서 피정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비록 2박 3일의 휴가였지만, 수사님들과 함께 참여했던 전례와 식사시간, 그리고 모처럼 고요한 가운데서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피정 때, 산책을 하면서 그곳 바위에 새겨진 글귀를 보았습니다. 꽤 큰 글씨로 새겨졌지만, 아주 단순한 내용이었는데,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하느님만 찾으라.”(성규 58, 7) ... ... ... 이 얘기를 들으신 청취자 여러분 가운데에는, 거기가 어딘지 아시는 분도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정말, 하느님만 찾으며 살 수 있을까요? 수도생활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가능하겠지만, 우리는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요.

여러분 가운데 대부분은 세상 안에서 살아가고 계십니다. 세상의 일을 하고,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근심걱정도 해야 하지요. 앞날에 대한 걱정도 해야 하고, 자녀들에 대해서도 걱정해야 하고, 당장 내일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고, 잠시도 쉴 겨를이 없습니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많이 일을 해야 하고, 그러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니기에 바쁜 여러분에게, “하느님만 찾으라.”는 말은 그저 먼 남의 나라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생산성, 효율성을 강조하는 요즘 세상에서, 하느님만 찾고서 사는 수도자들의 모습은 어쩌면, 가장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모습으로 비춰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을 바치고 극기를 실천하고, 세상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시는 어떤 분들이 계시기에, 우리가 이렇게 건재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직도 이 지구상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폭력,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분위기, 지구 한 편에서는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들이 하루에도 부지기수이고, 또 한 편에서는 사치와 과소비가 급증하는 그런 불의가 있지요. 우리가 먹다 남기고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요. 아직도 끊이지 않는 이 세상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위해서, 사람들의 회개를 위해서 누군가가 끊임없이 드리고 있는 그 기도가, 하느님 진노의 팔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는 고대 때부터 수도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외딴 곳에 혼자서 움막을 짓고 살아가며 성덕(聖德)을 얻으려 노력했던 은수생활(隱修生活)이 있었고, 이후에 여러 사람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공주생활(共住生活)이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오늘 기념하는 안토니오 성인은 우리에게 알려진 최초의 은수자(隱修者)입니다. 안토니오 성인은 마태오 복음 19장 21절에,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사막에 들어가 은수 생활을 하셨습니다. 당시, 그를 본받으려는 많은 청년들이 있었고, 주교와 사제들도 그를 찾아가 의논할 만큼,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리는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예언자로서 후대 신앙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신 분입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세상은 갈수록 복잡다단해지고, 더 많은 규범과 제도를 필요로 합니다. 그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많은 제도와 규범 속에 살면서, 때로는 그것들을 지키기에 급급할 수도 있습니다. 신자로서 지켜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치는 일상기도, 주일미사 참례가 단지 의무이기 때문에 하고 있다면, 우리가 받을 보상은 과연 무엇입니까?

하지만, 우리가 지키는 그것들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하느님 사랑에 응답하는 과정이라면, 겉보기에 별반 다를 바 없는 일일지라도, 그 결과는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주요 관심사에서 밀려나 있는 일,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은 비단 수도생활을 하시는 분들, 또는 성직자들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 하느님을 믿는 여러분 모두의 특권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안토니오 성인을 생각하며, 우리도 언제나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찾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해 나가기를 다짐합시다.

대구대교구 최의정(바오로) 신부
  |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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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낌없는 나눔과 베품의 성인 안토니오 아빠스

수도생활의 창시자요 아버지로서 동 서방 교회 모든 수도자들로부터 존경과 흠모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안토니오 아빠스(351~450)의 기념일입니다. 그의 덕행이 얼마나 탁월했던지 1600여년의 시대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나 행적들이 비교적 소상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안토니오는 요즘으로 치면 ‘금수저’를 입에 물고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금수저를 넘어 ‘다이아몬드가 장식된 금수저’였습니다. 그는 이집트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볼모지가 아니라 비옥한 알짜배기 옥토만 37만평을 소유하고 있었답니다. 이는 여의도 면적의 반 조금 못되는 크기입니다. 거기다 수많은 가축들과 대저택들, 딸린 종들...그 무엇도 아쉬울 것 없는 안토니오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부모는 스물도 채 안된 안토니오와 어린 여동생만을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엄청난 충격과 시련, 그리고 어마어마한 유산...자칫 잘못하면 크게 그릇된 길, 자포자기와 향락, 타락의 길로 빠져들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신심이 돈독했던 부모의 영향으로 큰 환란 속에서도 신앙생활에 충실했습니다. 하루는 미사에 참여하러 성당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 세워놓으신 계획이 무엇일까?’ 깊은 상념에 빠진 상태에서 성당 안으로 들어갔는데, 마침 다음과 같은 복음 말씀이 낭독되고 있었습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오복음 19장 21절)

그 말씀에 무릎을 ‘탁’ 친 안토니오의 내면에는 이미 한 가지 확신과 결심이 섰습니다. 그는 그 확신과 결심을 미루지 않고 곧 바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지니고 있던 막대한 유산들을 다 처분했습니다. 어린 여동생의 교육을 위해 아주 작은 몫만 남겨놓고 대부분의 유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아낌없이 나누어주었습니다. 동네 전체가 사상 유래 없는 특별 자선 이벤트에 난리가 났습니다. 너나할 것 없이 이웃들의 얼굴에는 함박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안토니오는 홀연히 세상을 등졌습니다. 때로 깊은 산속으로, 때로 외딴 곳의 쓰러져가는 요새 안에서, 때로 어둡고 캄캄한 빈 무덤 동굴에서 침묵과 고행과 기도 속에 본격적인 수도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내일 일은 모두 주님 섭리의 손길에 맡겼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권고에 따라 그 누구의 도움도 바라지 않고 손수 노동을 하며 자급자족을 했습니다. 그리고 남는 몫은 가난한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었습니다.

이렇게 안토니오는 아낌없는 나눔과 베품의 성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위에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한 그의 노력은 정말이지 영웅적이었습니다. 더 큰 가치이자 의미이신 하느님을 선택하기 위한 세상과의 결별 과정에 있어 놀랍도록 단호했습니다.

평생토록 안토니오는 그리도 사막을 사랑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그는 사막에 머물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단 한번 사막 밖으로 나온 적이 있었는데, 당시 창궐하던 아리우스 이단에 대항하여 정통교리를 설파하기 위해 알렉산드리아에 외출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는 아타나시오 주교의 간곡한 요청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사막의 수도생활이라는 것 언뜻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실은 혹독했습니다. 매일 결핍과 싸워야 했습니다. 굶주림, 추위와 더위, 갖가지 유혹과 대적하느라 에너지 소모가 많은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지닌 유일한 무기, 십자성호와 주님을 향한 한결같은 믿음으로 갖은 결핍 가운데서도 행복한 얼굴로 수도생활에 전념했습니다. 평생토록 그가 일관되게 지녔었던 삶의 태도는 이것이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강렬한 믿음! 이웃을 위한 한없는 너그러움! 자신에게는 철저하게도 엄격!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매일미사 2017년 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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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일에 대해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대의 혀와 배를 잘 다스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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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수도자의 아버지요 길잡이이신 성 안토니오 아빠스의 기념일입니다. 그는 기원후 251년경 이집트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8세 되던 무렵 한 음성이 그에게 들려왔습니다.

마르코 복음 10장 21절이었습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머리가 명석하고 빠릿빠릿했던 안토니오는 즉시 그 말씀이 자신을 위한 말씀인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말씀을 듣자마자 조금도 지체치 않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따라 우선 자신이 지니고 있던 모든 것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한동안 성문 밖에서 가난한 노동자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던 그는 깊은 사막속으로 들어갑니다. 놀랍게도 그는 20년 세월 동안 홀로 완전한 고독 속에 사막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막 속에서 얼마나 고초가 컸겠습니까? 틈만 나면 그의 귓전을 때리는 사탄의 간사한 유혹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안토니오, 너 지금 대체 여기서 뭘하고 있는 것인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휘황찬란한 도시 생활이 얼마나 멋진데 여기서 이러고 있어?” 포기하라는 유혹, 맛있다는 유혹, 달콤하다는 유혹이 거듭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주권에 무조건 승복한 그였기에 모든 유혹을 잘 극복하고, 깊은 내공을 닦은 다음 20년만에 사막에서 걸어나올 수 있었습니다.

사막에서 걸어나온 안토니오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20년간 제대로 먹지 못해 해골바가지 같은 얼굴, 노인의 얼굴을 하고 나올 줄 알았는데, 더없이 건강한 얼굴, 천사의 얼굴로 걸어나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엄청나게 성숙한 인간의 모습, 진보한 영성으로 충만한 안토니오의 모습에 크게 매료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와 큰 위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성숙한 영적 동반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영혼과 육체를 치유시켰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안토니오는 세상 사람들의 박수갈채와 존경을 뒤로 하고 또 다시 깊은 사막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더 깊은 하느님과의 만남과 합일 속에 살다가 356년 10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안토니오는 한곳에 머물렀지만 영원히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늘 깨어있기 위해, 언제나 하느님의 음성을 잘 듣기 위해 또 다시 더 깊은 사막으로의 여행을 평생토록 반복했습니다.

안토니오는 깊은 고독, 깊은 사막, 그리고 부단한 이동과 순례야말로 참된 변화와 성장이 이루어지는 장소임을 오늘 우리에게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 삶 속에 고독이 없을 때 거짓 자아의 환상에서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고독은 부족한 나와의 치열한 싸움의 자리인 동시에 진실로 하느님을 대면하는 위대한 만남의 자리입니다. 고독이라는 광야는 우리의 옛 자아가 죽고 새로운 자아가 탄생하는 변화의 장소요 새출발의 장소입니다.

누군가가 안토니오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단순화의 대가인 안토니오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언제나 하느님을 바라보십시오. 무엇을 하든 성령의 가르침대로 사십시오. 어디에 살든 그곳을 쉽게 떠나지 마십시오. 이 세 가지만 잘 지키면 구원받을 것입니다.”

또 다른 제자가 안토니오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세 가지의 전문가 안토니오는 이번에도 간단간단하게 세 가지를 말해주었습니다.

“자신의 능력에 너무 의지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일에 대해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대의 혀와 배를 잘 다스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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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2022년 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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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포주는 새 부대에, 그리스도 중심의 삶
말씀, 회개, 기도, 믿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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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 잠시 휴게실에 들렸다가 신간 서적을 발견하고 참 반가웠습니다. 새 책을 보면 우선 행복감에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니까 37년전, 1985년 왜관수도원에서 수련받을 때, 수련장 신부님이셨던 김구인 요한 보스코 신부님의 참 신선하게 느껴지는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글모음’집었습니다. 참으로 선량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분으로 기억하는 어른이십니다.

“우리 믿음이 든든한 바위 같게 하소서”

책 제목도 마음에 와 닿았고 책 서문의 내용도 소박하고 겸손하며 온유한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수도원에 입회한 지가 벌써 60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수도서원한지도 53년이 흘렀고 사제서품 50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수도자로서 또한 사제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충실히 답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왔고, ‘아빠, 아버지’의 크신 배려로 일생을 행복하게 살아왔습니다.

저를 받아들여 이끌어 주신 수도원의 선배님들과 공동체 형제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오래된 옛 글들을 꺼내 보니, 과거의 제가 지금의 저에게 이야기를 건네며 더 열심히 살라고 가르치고 깨우치는 느낌이 듭니다.”

절의 두 귀한 보물은 절의 역사가 담신 노승老僧과 노목老木이라 하는 데, 이런 아름다운 수도선배는 수도원의 참 귀한 자산입니다. 참으로 한 평생 성소에 충실했다는 삶 자체가 참 아름답고 귀하게 생각됩니다.

오늘은 은수생활의 아버지라 칭하는 사막의 성 대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입니다. 무려 105세 까지 사셨으니 성인들중 아마 가장 장수했던 분일 것입니다. 105세까지 참으로 성소에 한결같이 충실했던 분으로 네가지 예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안토니오 아빠스의 회심 과정에서 말씀과의 만남이 극적입니다. 말씀은 그리스도의 현존이요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들은 것입니다. 말씀이 회심을 일으키고 기도와 더불어 그리스도 중심의 믿음도 날로 굳건해지니, 말씀-회개-기도-믿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봅니다. 끊임없는 말씀과 회개 및 기도의 수행이 든든한 바위같은 믿음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네가 완전히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마태19,21)

바로 이 복음 말씀이 안토니오의 결정적 회심과 더불어 그를 사막의 수도생활로 이끌었습니다. 성인의 마지막 유언도 인상적입니다. 임종을 예견한 성인은 지팡이는 성 마카리오에게 한 개의 양피 망토는 성 아타나시우스에게 또 한 개의 양피는 제자 세라피온에게 주고 자신의 시신은 비석 없는 비밀묘에 묻으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얼마나 무소유의 본질적 가난한 삶을 살았는지 그의 성소 말씀이 평생 성인께 영향을 미쳤음을 봅니다.

성인은 언젠가 온 세상이 덫들과 함정으로 가득 한 꿈을 꾸었고, 주님께 물었습니다. “오, 좋으신 주님, 누가 이러한 덫들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애원하듯 묻었을 때 들려온 주님의 답변입니다. “겸손은 더없이 그것들을 피할 것이다.” 새삼 모든 덕의 어머니라 칭하는 겸손이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무지에서 벗어나 자기를 아는 자가 진정 겸손하고 지혜로운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겸손하고 지혜로워야 끝까지 성소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안토니오가 악마와 치열하게 싸운 후 원망하듯이 주님께 악마들이 공격할 때 하느님은 어디 계셨나 추궁하듯 묻자 주님은 대답합니다. “나는 거기에서 너와 함께 있었으며, 네가 사나이답게 잘 싸우며 견뎠으므로, 나는 너의 이름이 온 세상에 두루 퍼지도록 할 것이다.” 하느님은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 늘 나를 살펴보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어제에 이어 제1독서 사무엘 상권의 주인공은 사울입니다. 사울의 불행의 단초는 주님의 말씀에 충실치 못했음에 기인함을 봅니다. 이 또한 하느님 탓이 아닌 자업자득입니다. 순간의 탐욕에 빠져 주님의 말씀을 잊었고 구구하게 합리화 합니다만 이미 하느님의 마음은 그에게서 떠났고 성소에 실패자가 되고 맙니다. 바로 다음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주시는 다음 주님의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말씀 중심의 삶, 그리스도 중심의 삶에 항구할 것을 가르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1사무15,22)

바로 이 말씀이 오늘 복음의 이해에도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참으로 본질적인 분별의 잣대는 단식의 횟수가 아니라 말씀이신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단식을 잣대로 함은 주객전도主客顚倒, 본말정도本末顚倒의 어리석음을 반영합니다. 아무 때나 단식이 아니라 단식의 때가 있으며, 지금은 단식의 때가 아닌 주님이신 당신과 함께 축제인생을 즐겨야 할 때라 말씀하십니다.

불가에서 인생을 고해라 합니다. 그러나 우리 가톨릭 교회의 믿는 이들은 고해인생을 살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축제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깨어 주님과 함께 그리스도 중심, 말씀 중심의 삶을 살 때 축제인생이 될 것입니다. 어떻게 축제인생을 살 수 있겠는지요? 복음의 마지막 말씀이 답이자 결론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이래야 늘 새 하늘에 새 땅의 삶이 겠습니다. 바꿔야 할 것은 외적 환경이 아니라 마음을 늘 새롭게 하여 새 부대로 만드는 일이 겠습니다. 그러니 끊임없는 “말씀-회개-기도-믿음”의 일련의 여정을 통해 늘 새 부대의 마음으로 만드는 일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이래야 늘 새 포도주의 현실을 새 마음 부대에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노년이 될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있는 데, 지갑은 물론 새 포도주의 현실을 담을 수 있도록 마음의 눈, 마음의 귀도 늘 열려 있어야 함을 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게 해주시고, ‘새 부대의 마음 안에 새 포도주의 현실’을 담게 해 주시며, ‘고해인생이 아닌 축제인생’을 살게 해주십니다.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시편50,23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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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분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신부
2022년 1월 17일
  | 01.17
533 80%
물고기가 바다로 돌아가듯이 끊임없이 사막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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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보다 주님께 가까이 다가서고, 보다 주님을 깊이 느끼고, 보다 주님을 잘 따르기 위해 깊은 광야나 사막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메시아 오심을 준비했던 구약 시대 마지막 대예언자로서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를 잇는 가교 역할에 충실했던 세례자 요한도 깊은 유다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광야에서 최소한의 옷을 걸치고, 최소한의 음식만 먹으며 자신의 내면을 갈고닦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직전 유다 광야로 들어가셔서 홀로 40일간의 대피정을 실시하셨습니다. 더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기 위해 단식을 하셨는데, 적당한 단식이 아니라 철저한 단식이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기도에 기도를 거듭하셨습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안토니오 아빠스를 비롯한 사막의 교부들 역시 현란하고 요란스러운 도시를 떠나 깊은 사막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냥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간 축척해 두었던 재물이며 학식이며 명성이며 사회적 기반이며...모두를 내려놓고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훌훌 털고 혈혈단신으로 아무런 미련도 없이 깊은 사막으로 들어가는 은수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멋있다, 쿨하다고 박수칠 수도 있겠습니다. 사막 생활의 낭만도 없지 않았습니다. 까마득한 사막 저 너머에서 태양이 떠오를 때라든지, 서녁 하늘을 장엄하게 물들이는 일몰 시간에는 기도가 저절로 흘러나왔을 것입니다.

해가 떨어지고 나면 또 어떤가요? 캄캄한 밤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의 잔치가 벌어지겠지요. 인간 세상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자취를 손에 잡힐 듯이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낭만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낮의 더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강풍이라도 불어오면 함께 날아오는 모래로 인해 눈을 제대로 못뜰 지경입니다. 건기가 되면 물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어 굶주림과 목마름은 기본이었습니다.

은수자들이 깊은 사막으로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 온전히 주님을 추종하기 위해서, 오로지 주님만 선택하기 위해서, 하루 온종일 주님 현존 속에 살아 숨 쉬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집트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던 안토니오는 일찍이 부모와 사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성전에서 기도하던 중 다음과 같은 복음말씀을 듣게 됩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나를 따라 오너라.”

안토니오는 전율과도 같은 느낌을 받은 동시에 그 말씀은 바로 자신에게 하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안토니오는 37만평이나 되는 비옥한 토지를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그 외롭고도 허전한 길, 쓸쓸하고도 고통스런 사막의 길-십자가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안토니오의 위대함은 쉼 없는 기도생활과 한결같은 겸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안토니오는 한 은둔소에서만 20년간 칩거하며 기도생활에 전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수많은 방문객들을 모른척하며 그 오랜 세월 하느님과의 만남에만 몰두하셨습니다.

안토니오에게 하느님 이외의 것들은 다 부차적인 것, 큰 의미가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오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떠받들었지만 거기에 조금도 연연해하지 않았습니다.

안토니오의 주옥같은 권고 말씀이 오늘 하루 삶의 양식이 되길 빕니다.

“물고기가 마른 땅에 머물러 있으면 죽듯이 수도자들이 세상에 오래 머물게 되면 정신이 해이해집니다. 그러니 우리 수도자들은 물고기가 바다로 돌아가듯이 끊임없이 사막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 부단히 산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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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2023년 1월 17일
  | 01.17
533 80%
안토니오 아빠스(251-356년)는 모든 수도자들과 은수자들의 아버지 또는 사막의 성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인은 이집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유복한 생활을 하였으나 “하느님의 나라와 부자”에 관한 복음 말씀을 듣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뒤 은수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는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싸우는 아타나시오 성인을 도와 교회의 정통 교리를 수호한 수도자였습니다.

신비로운 것은, 안토니오 성인은 글을 모르는 사람이었음에도 교회의 호교론을 증언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아타나시오 성인은 자신의 저서 『안토니오의 생애』에서, 안토니오 성인이 교회에서 유명해진 것은 학문의 지혜나 기술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타고난 영적 신심 때문이었다고 증언합니다.

안토니오 성인에 대하여 한 교회 역사가가 전하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 하루는 철학자 한 사람이 안토니오를 찾아와 은둔 생활을 할 때에 독서에서 오는 즐거움과 위로 없이 무슨 낙으로 하루하루를 견디어 내느냐고 묻습니다. 이에 안토니오 성인은 “지혜의 학자님, 자연이 바로 그 책입니다. 저는 자연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글들을 읽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성인은 비록 인간이 만든 글을 통하여 세상의 지식을 가까이하지는 못했어도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자연을 통하여 그 누구보다도 영적인 지식을 충만히 갖춘 분이었습니다.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신 주님께서는 법에 대한 세상 개념 안에서는 법을 어겼을지라도, 하느님 계명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법의 정신을 살리셨습니다. 우리도 안토니오 성인처럼 세상의 지식보다는 하느님의 지혜를 더욱 추구하는 참다운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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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07년 1월 17일
  |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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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1월 31일 : 성 요한 보스코  [9] 3244
30   1월 30일 :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  2355
29   1월 29일 : 성 질다스  2023
28   1월 28일 : 성 토마스 데 아퀴노  [2] 2828
27   1월 27일 : 성녀 안젤라 메리치  [8] 3151
26   1월 26일 : 바울라 (Paula)  3456
25   1월 25일 : 성 바오로 개종  [10] 3820
24   1월 24일 : 성 프란치스코 드 살  [4] 2990
23   1월 23일 : 자선가 성 요한  2023
22   1월 22일 : 성 빈첸시오  2031
21   1월 21일 : 성녀 아녜스  [6] 3734
20   1월 20일 : 성 파비아노  2342
19   1월 19일 : 성 울프스턴  2018
18   1월 18일 : 프리스카  2241
  1월 17일 : 성 안토니오  [8] 2845
16   1월 16일 : 성 호노라토  2021
15   1월 15일 : 성녀 이타  2257
14   1월 14일 : 성 사바  2024
13   1월 13일 : 푸아티에의 성 힐라리오  2048
12   1월 12일 : 성녀 마르가리타 부르저와  [1] 2379
11   1월 11일 : 성 테오도시오  [1] 2446
10   1월 10일 : 성 베드로 오르세올로 / 스콜라스티카  [1] 2099
9   1월 09일 : 성 아드리아노  2287
8   1월 08일 : 성 토르핀  2188
7   1월 07일 : 페냐포르트의 성 라이문도  2176
6   1월 06일 : 복자 안드레아 비제트  2183
5   1월 05일 : 성 요한 네포묵 뉴먼  2066
4   1월 04일 : 성녀 엘리사벳 앤 시튼  2524
3   1월 03일 : 성녀 제노베파  2711
2   1월 02일 :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2] 3485
1   1월 01일 : 천주의 성모 마리아  [1] 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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