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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1일 : 성녀 아녜스
조회수 | 3,733
작성일 | 06.01.21
성녀 아녜스 (~304)

확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어떻게 할까? 당황하지 않고 믿는 바를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성녀 아녜스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신앙을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증언하였다. 그의 생애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확실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죄명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당할 때 단지 열두세 살의 어린 소녀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요즘에는 텔레비전의 토크쇼 같은 데서 세간에 화제가 되는 사건이나 연예인들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보도한다. 우리는 가족과 친구들의 인생 또는 죽음의 신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꺼려하면서도, 연예인들이나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시시콜콜히 알려고 한다. 우리가 누군가와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 싫어하면 그들도 우리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 신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자신의 신앙을 감추고 부끄러워하면 다른 이들도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반면 우리가 신앙과 삶을 조화롭게 일치하여 살려고 노력한다면, 사람들도 편안한 느낌으로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에 대해 말을 걸어 오기 시작할 것이다. 자신의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대할 때, 우리는 스스로도 정직하게 살 수 있고 다른 사람들도 정직한 삶을 살도록 용기를 줄 수 있다.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다른 사람이 신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할 때 기꺼이 응하겠다.

생활성서[작은 거인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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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결한 희생물이요 순결한 제물인 용감한 동정녀

오늘은 아녜스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오늘 미사 지향에 ‘아녜스’ 본명이 많은 것을 보니 우리 성당에 아녜스 본명을 가진 이들이 인덕이 많은가 봅니다. 요즈음도 새로 영세 받는 신자들이 자주 택하는 본명이 아녜스이기도 하지요. 물론 이름이 예뻐서이기도 하겠지만 성녀의 순결한 삶을 흠모하고 희망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아녜스 성녀이지만 성녀는 지금으로부터 1700여 년 전의 삶을 살았던 분입니다.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황제 박해 시대, 통상적으로 304년 경 순교했다고 전해 내려오는데 순교 당시 성녀는 고작 12-13세 정도의 어린 소녀였다고 합니다.

성녀 아녜스의 양친은 유명한 로마의 귀족 가문이었을 뿐 아니라 열심한 신자로써 자녀에게 그리스도교적 교육을 시켰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아녜스는 그 당시 상류 계층에 유행되던 사치와 향락에 격렬한 거부감을 보이며, 자신은 하느님 안에서 동정을 지키며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려는 굳은 결심을 합니다. 시간이 흘러 로마 사람들에게 알려진 미모의 소녀 아녜스가 13세가 되었을 때 로마 시장의 아들로부터 청혼이 들어옵니다. 대단히 좋은 조건의 청혼이었지만 아녜스는 거절하지요. ꡒ남편이 결정되어 있다.ꡓ는 아녜스의 거절 이유를 수상히 여긴 시장측에서 조사한 결과 아녜스가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시장은 다행으로 여겨 그녀를 법정으로 소환하여 배교를 강요하고 며느리가 될 것을 요구합니다. 사람들은 아직 어린 소녀라 겁을 주면 마음이 바뀔 것이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아녜스는 겁을 내지 않고 오히려 배교의 표시로 우상 앞에 향을 피우라는 요구에 우상 앞에 십자 성호를 긋는 대담함을 보입니다. 아녜스의 회유에 실패한 시장은 몹시 화가 나서 그녀를 악마의 소굴에 보내어 정조를 빼앗게 하겠다고 위협합니다. 그 위협에도 굴하지 않자 시장의 말대로 아녜스는 마굴에 끌려가 더러운 사람들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그 순간 ꡒ예수 그리스도님, 저를 보호해 주소서.ꡓ라는 기도대로 아녜스의 모습은 세상 사람이 아닌 선녀 같은 모습으로 변모되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누구하나 가까이 가려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한 무모한 자가 갑자기 용기를 내어 그녀의 몸에 손을 대려 했지만 그 순간 강한 힘에 눌려 기절해 버렸다고 합니다.

계획했던 것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자 증오에 사로잡힌 시장은 그녀를 불태워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맹렬한 화염도 그녀를 삼키지 못했지요. 이와 같이 여러 번 하느님의 기묘한 보호를 받아 위험을 모면한 그녀였지만 결국 교수형의 선고를 받고 형장으로 끌려갑니다.

꽃과 같은 어린 처녀의 사형을 불쌍히 여긴 구경꾼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에 찬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아녜스 성녀였다고 하지요. 성녀는 머뭇거리는 형리를 재촉하여 꽃봉오리와 같은 생명을 하느님께 바쳐 순교했다고 합니다. 성녀 아녜스를 표현한 그림들을 보면 그녀가 한 마리의 어린양을 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성녀가 순교한 후 슬픔에 젖어 있던 양친을 위로하기 위해 그러한 모양으로 나타났다는 전설에서 기인한다고 합니다. 부모와 친구들이 성녀의 시체를 수습하여 비아 모멘따나 카타콤바에 안치하고 밤을 지낼 때, 아름다운 동정녀의 무리들이 원을 그리며 나타나 성가를 부르는데 그 한가운데 기쁨에 찬 성녀 아녜스가 있었다고 합니다. 성녀의 손에는 약혼 반지가, 그 옆에는 어린양이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물론 어린양은 그녀의 순결한 무죄를 상징하는데, 그녀를 기념하여 350년경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딸이 성녀의 묘지 위에 아녜스 성당을 건립하였고, 교황 호노리우스 1세(625-638)가 증축한 이래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건립한 아녜스 성당에서는 두 마리 새끼 양을 축복하고 그 양에서 깍은 털과 다른 양털을 섞어 교황이 대주교에게 직분과 권한을 수여하는 상징인 빨리움(Pallium, 대주교나 교황의 목에 걸치는 영대 같은 견의)을 만든다고 합니다.

아녜스 성녀 기념일을 지내면서 우리가 1700여 년 전의 성녀를 지금도 사랑하고 기억하는 것은 성녀와 같은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희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너나 할 것 없이 욕망을 쫓아 살며, 그 결과 채울 수 없는 갈증과 공허에 시달리며 살아갑니다. 인간적인 모든 욕구를 자제하고 하느님께 봉헌하며 사는 아녜스 성녀의 삶은 옛날에나 믿었던 유물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삶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얼마 전에 선진국들의 성교육 실태를 밝힌 자료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성적인 타락과 미혼모 문제로 골치를 앓다가 순결 서약 운동을 펼쳤고, 영국에서는 실질적인 피임법과 미혼모 복지를 뒷받침하는 정책을 펼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에서는 성적인 타락이 서서히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영국에서는 더 혼란이 가중되어 가기만 한다는 자료였습니다.

인간의 행복과 평화는 끝없는 욕망의 추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자제하고 하느님 안에 살 때 가능하며 그것이 훨씬 아름다운 삶일 것입니다. 아녜스 성녀는 그 어린 나이에 벌써 그것을 통찰하고 실천하였던 것입니다. 12-13세의 나이에 순교의 월계관을 받은 용감한 성녀 아녜스의 굳센 정신을 묵상하는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서울대교구 이기양 신부
  |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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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녀 아네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먼저 축일을 맞은 모든 분들께 축하를 드리구요,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늘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네스는 로마 순교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성인 중의 한 분입니다. 로마의 어느 부유한 가정 출신이며 뛰어난 미모를 지녔던 그녀는 평소에 늘 순결한 생활을 희구하여, 하느님께 동정을 지키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녀는 디오끌레씨아노 박해 때 어느 청혼자의 고발로 신자임이 드러나 총독에게 끌려갑니다. 거기서 혹독한 신문에 자신의 영웅적인 용덕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신의 정결을 보존하였고, 어린 나이에 참수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성 암브로시오 주교는 그의 저서 ‘동정녀들’에서 아네스 성녀를 다음과 같이 칭송합니다. “칼을 받을 자리마저 없었던 아녜스는 그 칼을 이겨낼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나이의 소녀들은 부모님의 성난 얼굴마저 견디지 못하고, 또 모르고서 바늘로 한 번 찔리기만 해도 중한 상처를 입기나 한 듯 보통 울고 맙니다. 그러나 성녀 아녜스는 사형 집행인의 피 묻은 손아래에서도 두려움을 몰랐고 쨍그랑거리는 육중한 쇠사슬로도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온몸을 난폭한 병사의 칼에 내 맡기고, 비록 아직 죽음을 체험하지는 않았지만 그 죽음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강제로 신전의 제단에 끌려 나아가 불 가운데 놓여 졌을 때 그리스도께로 손을 펼쳐 그 불경한 제단 위에서 주님이 거두신 승리의 표시를 나타냈습니다. 아녜스는 자기 손과 목을 차가운 쇠의 형틀에 집어넣을 자세가 되어 있었지만 그의 작은 지체를 조여 맬 쇠사슬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순교가 아니겠습니까? 그는 고통 받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으나 승리를 얻을 만큼 이미 성숙되어 있었습니다. 전투는 힘들었지만 월계관을 받기는 쉬웠습니다. 아직 나이 어렸으나 덕행의 교훈을 주었습니다. 결혼하는 신부라 할지라도 이 동정녀가 즐거운 표정을 지니고서 형장으로 급히 달려갔던 그만큼 급히 신방에로 달려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동정녀는 댕기머리 대신에 그리스도로, 화관 대신에 자신의 덕행으로 머리를 단장했습니다.”

예, 무엇보다도 ‘고통 받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으나 승리를 얻을 만큼 이미 성숙되어 있었다’는 암브로시오 성인의 말씀이 너무도 인상적입니다. 아네스 성녀도 오늘 복음의 예수님처럼 당시 다른 사람들에게 미쳤다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향한 온전한 열정이 승리의 월계관을 받기에 그녀를 합당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일상에서 많은 박해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어떠한 박해 속에서도 우리는 오늘 독서의 다윗과 같은 넓은 도량과 아네스 성녀와 같은 주님에 대한 한결같은 열정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다윗처럼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어야 하며, 아네스 성녀처럼 현실에서의 영광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영광에 마음을 써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영광은 이 세상의 영광과는 다릅니다. 세상의 영광이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을 위하여 얻어지는 것이라면 주님께서 주시는 영광은 얼마큼 내 자신이 남을 위하여 살았는가를 보시고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점점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위하여 살아가기만을 바라는 오늘날, 아네스 성인처럼 ‘승리를 얻을 만큼 이미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아멘.

부산교구 박종주 신부
  |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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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녀의 수호성인 성녀 아녜스

성녀 아녜스의 순교에 대한 기록 가운데 정확하거나 신뢰할 만한 것은 없지만, 전해오는 순교에 대한 기록들을 모아 6세기경에 만들어진 온전한 형태의 순교 전기가 있다.

이에 따르면 아녜스는 로마의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아름다운 용모를 갖춘 소녀였다. 그녀는 평소에 늘 순결한 생활을 꿈꾸며 하느님께 동정을 지키기로 작정하였으나 그녀의 미모에 반한 로마의 귀족 청년들이 끊임없이 청혼하였다. 이에 아녜스는 천상배필인 예수 그리스도께 순결을 서원하였다며 모든 청혼을 거절하였다.

그즈음 디오클레티아누스 박해(304년경)가 일어났다. 구혼자들은 아녜스가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사실을 고발하였다. 위협과 고문을 통하여 그녀의 마음을 바꾸어 결혼하려는 계산 때문이었다. 아녜스는 겨우 13세의 어린 소녀였으나 굳은 신앙으로 모든 고초를 참아 받았다. 재판관은 고문이 효과가 없자 그녀를 사창가로 보내 정조를 빼앗고 모욕을 주려 하였다. 사창가의 무지막지한 남자들이 아녜스를 범하려 달려들었으나 영웅적인 용덕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정결을 지킬 수 있었다.

몹시 화가 난 재판관은 그녀를 참수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아녜스는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꽃봉오리 같이 어리고 순진한 처녀의 사형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성녀 아녜스의 무덤 위에는 현재 아름다운 성전이 지어져있다. 이곳 수녀들은 해마다 두 마리의 어린 양을 키워 그 털을 교황에게 바치는데, 이 털로 팔리움(교황·대주교·주교가 미사용 제의 위에 걸치는 예식용 어깨 장식 띠)을 만든다고 한다.

경향잡지 2006년 1월호에서
  |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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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하시는 모든 분들께도 하느님의 축복을 전합니다. 아녜스 성녀는 3세기 후반에, 로마의 어느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셨다고 전해집니다. 평소에 늘 정결한 삶을 희구하여, 어린 나이에 이미 하느님께 동정을 지키기로 서원했습니다. 빼어난 미모 때문에, 많은 귀족 젊은이들의 관심을 샀고, 청혼하는 젊은이도 있었지만, 자신은 하느님의 배필이라며 청혼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마침내, 청혼을 거절당한 어느 젊은이의 고발로 인해서, 성녀는 체포되어 총독 앞에 끌려갔습니다. 불과 만 13세에 지나지 않았던 아녜스 성녀는 온갖 고문 기구를 진열해 놓고 위협하는 총독의 심문에 정면으로 맞섰고, 총독은 격분하여 성녀를 로마의 어느 매음굴로 보냈으나,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신의 정결을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아녜스 성녀는 막시미아누스(Maximianus) 박해(304-305)때, 참수형을 받고 13세의 어린 나이로 순교하셨습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아녜스 성녀가 어린 나이에 가장 영예로운 죽음을 택했다고 칭송했습니다. 시대가 지남에 따라 아녜스 성녀는 정결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졌고, ‘아녜스(Agnes)’라는 이름이 ‘어린 양’을 뜻하는 라틴어 ‘아뉴스’(Agnus)와 비슷했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눈보다 흰 어린양과 함께 있는 아녜스 성녀의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요한 1서 5장 5절에의 말씀을 잠시 인용하겠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아녜스 성녀는 자신을 위협하고 고문하고 죽이는 그 박해자들을 이길 수 없었지만, 하느님의 눈으로 본다면, 성녀는 믿음으로써 오히려 그 박해자들을 이겼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일찍이 떼르뚤리아누스는 말했습니다. 이미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바쳐진 그 공로를 얻어 입고 있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순교자들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순교자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신앙의 선물을 거저 받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순교자들이라고 해서 왜 죽음이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사람들의 냉대와 조소, 비난, 불명예가 왜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분명 그분들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자 했을 것입니다.

마르코 3,20-21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도 음식을 드실 겨를조차 없이 바쁘게 일하시며, 복음을 전하셨지만,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당신을 잡으러 오던 친척들이 있었고, 그렇게 친척들한테서조차 박해를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자 하셨습니다.

비록, 오늘날은 피를 흘리는 순교가 없지만, 피흘림 없는 순교자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신앙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겪게 되는 작은 불편이나 불이익 역시 순교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작은 것이지만, 우리가 바치는 희생, 봉사, 애덕의 실천은 하느님께 드릴 공로가 되고, 어느 누군가가 그 공로를 얻어입을 수 있다면, 우리 역시 그러한 신앙의 씨앗을 남기고, 하느님 나라에서 누릴 상급이 우리를 기다릴 것입니다.

대구대교구 최의정(바오로) 신부
  | 01.23
인천교구 민경덕 신부 1 4%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어린시절 언제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 무서울 것이 없었습니다.
때때로 친구들과 함께 무단횡단을 하면, 지나가던 차들조차도 멈춰섰기에 참으로 행복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여느때와 다름없이 친구들과 함께 무단횡단을 하는데, 맞은 편에서 경찰관 아저씨가 저희를 바라보며 해맑고 맑은 미소로 웃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긴장을 하고 길을 건너자, 경찰관 아저씨가 저희들의 학교와 반과 이름을 싹 적어가셨지요.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무단횡당하면 위험하단다.’라고.

우리들은 ‘잘못했으니, 학교에는 알리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경찰관 아저씨는 참으로 아름답고 고운 말투로 말씀하셨습니다.
‘걱정하지마~ 학교에는 절대로 말하지 않으마~’라고.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였지만, 그래도 경찰관 아저씨의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갔고, 다음날 학교에 도착했을 때, 교실에 있던 반장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야~ 담임선생님이 너 교무실로 오래~’

마음으로 생각했습니다.
‘울같이 허울어져갈 사람의 말을 믿기보단,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믿어라’

교무실에 끌려갔을 때, 마카베오 하권에 나오듯이, 용기있게 칠판을 잡고 매를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매를 맞으면서도, 하느님의 영광을 잊지않듯이, 경찰관 아저씨에 대한 원망을 잊지않았습니다.

매를 다 맞고나서, 담임선생님께서 한 말씀 하셨습니다.
‘경찰관 아저씨가 너희들에게 꼭 전해주라 하더라. 학교에 알린 것이 아니라 담임에게 직접 알렸다고’.

시간이 지나서 어른이 되어보니, 이제야 조금은 알 듯 싶습니다.
진정 법규라는 것은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인지,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법도 이와 같은 모습입니다.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만들어주신 법.
그 법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해를 입힐 때,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그 법의 참된 의미를 알려주시고 싶은 열정을 오늘 복음 말씀에서 우리 모두에게 알려주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아녜스 성녀의 기념일입니다.
하느님의 법인 사랑을 옳게 실천하고 살았던 성녀의 모습.
그 삶을 통해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법을 보게 됩니다.

진실된 모습으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당신 사랑의 법을 잊지않고, 잃지않길 희망합니다.





‘주님 당신의 법에 제 마음 다하나이다’
아멘
  |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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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오랜만입니다.
좋은 글 자주 부탁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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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1월 30일 :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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