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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 성 요한 보스코
조회수 | 3,244
작성일 | 06.01.31
성 요한 보스코 (1815~1888)


예언적인 꿈은 우리가 보통 꾸는 꿈과는 달리 미래의 방향을 알려 주고 우리의 희망과 열정과 목표를 보여 준다. 요한 보스코는 예언적인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그는 9살 때 성모님이 나타나셔서 가난한 소년들을 도와 주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는 꿈을 꾸었다. 꿈은 줄곧 그의 일생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 그는 꿈을 통해서 자신이 가르치는 어린 소년들의 영혼 상태를 식별하기도 하고 새로운 계획과 선교에 관한 전망을 얻기도 하였다. 요한 보스코에게는 언제나 자금이 충분치 않았지만 하느님이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일을 시작하면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재원이 마련되곤 했다. 하느님은 그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베푸셨다. 요한 보스코의 꿈처럼 예언적이지는 않더라도 꿈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준다. 관심을 갖고 꿈을 잘 살펴보면 잠재되어 있는 깊은 열망이나 포부를 알아낼 수도 있다. 꿈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암시해 주기도 하며, 숨은 잠재력을 깨워 주기도 하고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특별히 예언적인 꿈을 꾸어 본 적이 있는가? 꿈은 때로 잠재 의식을 반영한다.

생활성서[작은 거인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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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의 사도이자 고아들의 아버지

고아들의 아버지, 청소년 교육의 선구자라 불리는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입니다. 성인에게는 신심이 뛰어난 어머니가 계셨는데 요한 보스코 사제가 성인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분으로 그 어머니 말가리다를 꼽아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말가리다는 남편이 34세의 젊은 나이에 급성 폐렴에 걸려 세상을 떠나는 불행을 겪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임종시에 유언한 ꡒ자녀들을 잘 부탁하오. 특히 어린 요한을.ꡓ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훌륭한 인물로 양성하기 위해 어려운 환경에서도 평생 끊임없이 기도하고 노력했던 여인으로서 모든 신자들의 모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요한 보스코는 1815년 8월 16일 이탈리아 베키라는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 프란치스코와 말가리다 사이에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정규 학교에 갈 수 없었던 보스코는 9세 때 농한기를 이용하여 카프릴리오 초등학교에서 읽기와 쓰기만을 배웠습니다. 어려운 어린 시절을 지내던 요한 보스코는 어느 날 생애에 결단의 계기가 된 한 꿈을 꾸게 됩니다. 이 꿈은 이후에도 약간씩 변화가 있으면서 반복되지만 성인은 이 꿈을 통해 자신의 소명을 알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1824년 살레시오 수도회를 창립하고자 교황 비오9세를 알현하였을 때 어떤 초자연적인 계시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 꿈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 꿈을 계기로 사제 성소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되지만 가난한 과부의 아들로써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남의 집 머슴살이, 상점의 점원 등을 하면서 신부가 되는데 필요한 공부를 하게 되고 1841년 6월 5일에 사제로 수품됩니다.

사제 수품 후 요한 보스코 신부는 그의 은인이자 영적 지도자였던 가파소 신부의 도움으로 토리노에 있는 사제 연수원에서 신학 연구와 현대 사목에 관한 연구를 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당시 이탈리아 사회는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드는 청소년들로 많은 혼란이 있었습니다. 이런 혼란의 과정 속에서 산업화는 인구의 도시 집중, 빈민굴의 형성, 비참한 노동 조건 등 부작용을 드러내었지요. 보스코 신부는 토리노에 체류하는 동안 토리노의 골목을 방황하는 소년들, 전쟁 고아들, 감옥에서 만난 12~3세의 청소년들, 공장에서 비인간화되어 가는 소년 노동자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한 때는 백여 명이 넘는 소년들과 함께 돈도 거처도 없이 광장, 목초지 등을 다니며 거의 일년 동안 이동을 하다가 마침내 1846년 4월 토리노시의 발도코에 정착합니다. 그가 회고록에서 일년 동안 이동한 목적을 ꡒ가장 많은 위험에 처한 소년들과 출감 소년들을 모으기 위해서였다.ꡓ라고 술회하였듯이 성인은 도시 하층민 소년들과 농촌 출신의 가출소년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게 됩니다.

이후 성인은 가파소 신부와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발도코에 기숙사를 세웠으며 제본소나 인쇄소 등의 기술학교를 시작합니다. 그의 청소년 교육은 점점 확대되어 가고 교육을 위해서 많은 저술과 출판사업을 통해 자신의 교육 이상을 펴 나가지요. 성인은 사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교황 비오9세의 권고에 따라 1859년에 18명의 제자들에게 수도서원을 하게 하였고 그들은 가난한 청소년을 위해 일생을 바칠 것을 서약합니다. 이렇게 성 프란치스코의 살레시오 수도회는 1869년 교황청으로부터 수도회 인가를 받았으며, 1870년 소녀들의 교육을 위해 살레시오 수녀원을 창립하고 1876년에는 살레시오 협력자회를 창립하게 됩니다.

특히 돈보스코 성인은 청소년 교육에 있어서 예방 교육을 중시하였습니다. 그의 예방 교육법은 사도 바오로의 ꡒ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ꡓ(1코린13,4-7)를 기초로 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청소년 교육을 위해 살았던 보스코 신부는 1888년 1월 31일 회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72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보스코 사제는 유언을 통해 ꡒ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고 아무에게도 악을 행하지 마십시오. 나의 아이들에게 천국에게 기다리겠다고 전해주시오.ꡓ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성인은 1926년 6월 2일 교황 비오11세에 의해 시복 되었고 1934년 시성되었습니다.

돈보스코 성인은 19세기의 가장 훌륭한 교육자이며 동시에 2천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작가이자 청소년 교육이라는 새로운 영성을 도처에 심은 대 영성가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 요한 보스코 사제야말로 청소년 교육의 어려움이 어떠한 때보다도 심화되는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청소년 교육은 돈보스코 성인이 보여준 것처럼 하느님 사랑 안에서 몸소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ꡒ나는 청소년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며, 공부하고 나의 생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ꡓ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심어주기 위해 일생을 헌신한 성인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이 세상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서울대교구 이기양 신부
  | 01.23
533 80%
언젠가 단골 이발소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날따라 늘 면도해주시던 자매님이 안계셨습니다. 그 대신에 ‘상당히’ 연세가 있으신 할아버님께서 어울리지 않게 하얀 가운을 입고 면도사 역할을 하고 계셨습니다. 제 앞 사람한테 면도하시는 폼을 봐서 할아버님은 ‘초짜’ 알바가 분명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 차례 때 저는 무서워죽는 줄 알았습니다. 하시는 것이 영 서투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연세가 있으셔서 면도칼을 쥐신 손이 가늘게 떨렸습니다. 그런 할아버님께 얼굴을 맡겨드리고 있노라니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안 그래도 만만치 않은 얼굴인데, 칼자국이라도 하나 더 생기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머릿속에는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꼬마 때 들은 이야기, 어떤 이발소에는 무서운 이발사가 있다, 그 이발소의 특징은 사람들이 들어가기는 하는데 나오지는 않는다, 그 이발소에는 지하실이 있고, 어느 순간 이발의자가 자동으로 바닥이 밑으로 꺼져버린다...

어제 1월 31일은 가난한 청소년들의 사도이자 저희 살레시오 회원들의 사부이신 성 요한 보스코(혹은 돈보스코)의 축일이었습니다.

돈보스코께서도 어느 날 저와 비슷한 체험을 하셨습니다. 돈보스코가 사제로 서품된 지 2년 정도 지난 때,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한 사랑으로 활활 타오르던 1943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머리를 깎으러 단골 이발소에 가셨던 돈보스코는 거기서 한 어린 소년을 만납니다. 당연히 그 소년은 갓 이발소 일을 시작한 왕초보였습니다. 바닥이나 쓸고, 이발 도구를 정리하고, 겨우 면도를 위한 비누칠 정도 하던 아이였습니다. 그 소년이 돈보스코의 얼굴에 비누칠을 하기 위해 다가왔습니다.

“친구야, 네 이름이 뭐지? 나이는 몇 살이고?”

“카를리노예요, 열 한 살이고요.”

“좋아 카를리노 비누칠을 잘 해다오. 아버지는 안녕하시냐?”

“돌아가셨어요. 엄마 밖에 안계세요.”

“저런 저런, 가엽구나.”

대화가 오가는 중에 카를리노는 비누칠을 끝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돈보스코는 소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카를리노, 어디 가니? 면도를 해줘야지. 자, 이제 용기를 내고 면도칼을 가져와서 내 수염을 깎아다오.”

그 순간 주인이 깜짝 놀라서 달려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맙소사, 신부님! 이 아이는 초짜예요. 아직 면도를 못하지요. 그저 비누칠만 하는 아이랍니다.”

돈보스코는 막무가내였습니다.

“언젠가는 이 아이도 면도를 시작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내게 시험 삼아 한번 해보게 기회를 주는 것도 좋을 겁니다. 자 카를리노, 용기를 내거라!”

카를리노는 사시나무 떨듯 하면서 돈보스코의 수염을 깎았습니다. 사실 돈보스코도 카를리노가 면도칼을 턱 주변에 댈 때에는 등골이 오싹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너무 세게 깍은 곳도 있었고, 몇 군데 작은 상처가 나긴 했지만 카롤리노는 면도를 끝냈습니다. 돈보스코는 긴장으로 얼굴이 잔뜩 경직된 카롤리노를 향해 활짝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했다. 카롤리노! 이제 우리는 친구니까 자주 나를 만나러 와주길 바란다.”

나중에 카롤리노는 돈보스코의 오라토리오로 들어왔습니다. 그가 오라토리오에 들어오던 날 돈보스코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야, 보다시피 난 가난한 신부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게 빵이 단 한 조각 밖에 남지 않는다하더라도 난 그걸 너와 나눠 먹을거란다.”

그 후 카롤리노는 훌륭한 살레시오 회원이자 돈보스코의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동반자가 되어 50년간 오라토리오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돈보스코는 당시 어른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길거리 청소년들에게 다가섰습니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억압과 죄와 고통의 족쇄를 끊어버렸습니다. 그들을 해방시켜준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돈보스코는 그들 안에 깃들어있던 가능성을 눈여겨보셨습니다. 끊임없이 그들을 격려하고 지지했습니다.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에게 장밋빛 청사진을 펼쳐놓았습니다.

양승국 신부
  | 01.31
533 80%
휴식은 천국에서! 제게는 쉴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아이들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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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 ‘자기 증여성’입니다. 선물뿐만이 아닙니다. 마음, 시간, 더 나아가서 삶 전체, 목숨까지도 증여하는 현상이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이런 자기 증여의 사랑은 우리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기증여성의 강도가 얼마나 강했으면 ‘헤프신’하느님이라는 표현까지 사용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흘러넘치도록 아무리 주고 또 주어도 당신 성에 차지 않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주신 다음, 마지막에는 당신 생명까지도 우리에게 증여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자기증여성은 성인성녀(聖人聖女)들의 생애 안에 잘 드러나고 있는데, 돈보스코(1815~1888)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난한 청소년들을 향한 그의 자기 증여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돈보스코는 한 청소년의 영혼을 구하는 일이라면 악마에게도 절할 용의가 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또 다른 청소년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느날 내게 단 한조각 빵만이 남게 된다 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너와 나눌것이란다.”

어느날 청소년들을 향한 자기증여성으로 활활 불타오르던 날, 그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나는 청소년들을 위해 공부하고,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며, 청소년들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사랑은 어떠한가요? 돈보스코의 후예로서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그 위대한 자기증여적 사랑, 다시 말해서 댓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 조건없는 사랑, 차별없는 공평한 사랑, 목숨까지 바치는 사랑을 또 다시 선택해야겠습니다.

1850년 돈보스코가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 위대한 오라토리오를 시작하던 무렵의 작은 에피소드는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비바람이 치던 어느날 밤, 돈보스코와 어머니 맘마 마르가리타가 일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어머니께서 문을 열었더니 온 몸이 비에 흠뻑 젖은 작은 꼬마 하나가 겁에 질려 서 있었습니다. 아이는 이렇게 애원했습니다.

“배가 고파요. 좀 들어가게 해 주세요. 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뜨거운 스프를 게걸스럽게 흡입하면서 아이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최근에 엄마가 세상을 떠났고, 땅은 빚쟁이들에게 넘어갔고, 지금 자신은 빗방울처럼 혼자라고 했습니다. 돈보스코가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데리고 있지요.”

“어디다 재우지?”

돈보스코는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 자리가 없으면, 천장에 바구니라도 하나 매달아 자게 해야죠.”

어머니는 살짝 당황해하셨지만 아이도 따라 웃었습니다. 그 아이가 돈보스코 오라토리오 첫번째 기숙생이었습니다.

청소년들을 위한 돈보스코의 헌신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하루 온종일 얼마나 열심히 사목에 헌신했던지, 저녁이 되면 옷을 그대로 입은 채 침대 곁에 쭈그리고 앉아 잠이 든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평생에 걸쳐 돈보스코는 하루 다섯시간만 잠을 잤으며 매주 한번을 밤을 꼬박 지새웠습니다. 심야 축구 중계나 드라마 때문에 잠을 못잔 것이 아니라, 사목적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온 종일 아이들 사이에 뛰어다니던 돈보스코는 조용한 밤이 되면 은인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셀수도 없이 썼습니다. 기도를 청하는 이들에게는 위로와 격려의 편지를 썼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수학, 문학, 성경, 교회사 책을 집필했습니다.

돈보스코는 지칠 줄 모르는 고해신부였습니다. 인기 있는 설교자였습니다. 피정 강론 초대를 거절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연세 드셔서는 과로 탓인지 거의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 되었습니다. 보다 못한 비오 9세 교황님으로부터 쉬라는 권고를 받았지만, 돈보스코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휴식은 천국에서! 제게는 쉴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아이들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폴 애로니카 신부 SDB, ‘하느님이 보내신 사람 성 요한 보스코, 돈보스코미디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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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2020년 1월 31일
  | 01.31
533 80%
돈보스코의 유일한 관심사는 오직 한 가지,
청소년들의 영혼 구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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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스코 대축일을 맞아 간단하게나마 성당 장식을 했습니다. 창립자 대축일인데 밋밋하게 보내기가 송구스러웠기에. 상황이 상황인지라 30여년전 지원자, 수련자때나 해봤던 장식을 정말 오랜만에 하게 되었습니다.

돈보스코 얼굴 액자도 준비하고, 틀도 마련하고, 등경도 제작하고...제대 앞에 적당히 차려놓으니 봐줄만 했습니다. 등경 속 초에 불까지 붙이니 나름 근사했습니다.

성당에 앉아 돈보스코의 얼굴을 천천히 들여다보면서 한 가지 크게 느낀 바가 있습니다. 얼굴은 상습 피로에 시달리신 흔적이 역력합니다. 머리도 헝클어질데로 헝클어져, 참빗으로 싹싹 빗겨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희 살레시안들은 참으로 큰 행운아들입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나 로욜라의 이냐시오, 베네딕토나 도미니코...다들 그림으로만 창립자 성인의 얼굴을 확인할 수는 반면, 은혜롭게도 저희 창립자 돈보스코(1815~1888)는 살아계실 때 사진기가 발명되어, 수많은 창립자의 사진들이 저희 손에 소중한 유품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많은 돈보스코의 사진들 가운데 제대로 된 사진, 그럴싸한 사진이 드믑니다. 하나같이 과로와 중노동에 찌든 사진, 수면부족과 스트레스에 쩌든 사진, 멋이라고는 단1도 내지 않은 사진들이 대부분입니다.

깔끔하지 않고 부스스한 돈보스코의 사진들, 이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묵상해봤습니다. 그에게 있어 꾸민다거나, 멋부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세상의 좋은 것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돈보스코의 유일한 관심사는 오직 한 가지, 청소년들의 영혼 구원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모든 에너지들을 청소년들을 위해 200퍼센트 쏟아부었습니다. 눈을 떠도 청소년, 눈을 감아도 청소년이었습니다. 세상의 다른 좋은 것들로 눈길을 돌리거나 신경 쓸 여유나 관심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단 1분이라도 시간이 나면 아이들을 찾아갔고, 아이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그 시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을 위한 투자를 할 시간이 조금도 없었던 것입니다.

아르스의 성자 비안네 신부님 못지 않게 돈보스코 역시 위대한 고백성사의 성인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돈보스코는 하루 일과중 많은 시간을 청소년들은 물론 신자들의 고백성사에 할애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막 전세계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는 살레시오회의 창립자로서 방문이며, 집필이며, 회의며 신경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미사도 집전해야 했습니다. 강론 준비도 해야 했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도 돈보스코는 개구장이 청소년들을 한명 한명, 일대일로 만났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경청했습니다. 나중에는 얼마나 바빴던지 식사 중에도 살레시오 회원들이나 청소년들과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돈보스코는 외모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쓰지 않은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목에 전념하느라, 영혼 구원에 시간을 바치느라 자신의 외모에 신경 쓸 시간이 도무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매일 특급 연예인 못지 않은 스케줄을 소화하며 하루 온종일 격무에 시달려야했기 때문에 외모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돈보스코는 보다 가치 있는 대상, 보다 본질적인 대상에 더 깊이 집중하기 위해 부차적인 것들에 대한 과감한 가지치기를 단행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오직 영적인 것, 청소년들의 영혼 구원, 하느님, 영성생활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 결과가 자연스럽게 극단적 청빈생활로 연결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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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2021년 2월 1일
  | 02.01
533 80%
돈보스코의 유일한 관심사는 오직 한 가지,
청소년들의 영혼 구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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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스코 대축일을 맞아 간단하게나마 성당 장식을 했습니다. 창립자 대축일인데 밋밋하게 보내기가 송구스러웠기에. 상황이 상황인지라 30여년전 지원자, 수련자때나 해봤던 장식을 정말 오랜만에 하게 되었습니다.

돈보스코 얼굴 액자도 준비하고, 틀도 마련하고, 등경도 제작하고...제대 앞에 적당히 차려놓으니 봐줄만 했습니다. 등경 속 초에 불까지 붙이니 나름 근사했습니다.

성당에 앉아 돈보스코의 얼굴을 천천히 들여다보면서 한 가지 크게 느낀 바가 있습니다. 얼굴은 상습 피로에 시달리신 흔적이 역력합니다. 머리도 헝클어질데로 헝클어져, 참빗으로 싹싹 빗겨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희 살레시안들은 참으로 큰 행운아들입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나 로욜라의 이냐시오, 베네딕토나 도미니코...다들 그림으로만 창립자 성인의 얼굴을 확인할 수는 반면, 은혜롭게도 저희 창립자 돈보스코(1815~1888)는 살아계실 때 사진기가 발명되어, 수많은 창립자의 사진들이 저희 손에 소중한 유품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많은 돈보스코의 사진들 가운데 제대로 된 사진, 그럴싸한 사진이 드믑니다. 하나같이 과로와 중노동에 찌든 사진, 수면부족과 스트레스에 쩌든 사진, 멋이라고는 단1도 내지 않은 사진들이 대부분입니다.

깔끔하지 않고 부스스한 돈보스코의 사진들, 이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묵상해봤습니다. 그에게 있어 꾸민다거나, 멋부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세상의 좋은 것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돈보스코의 유일한 관심사는 오직 한 가지, 청소년들의 영혼 구원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모든 에너지들을 청소년들을 위해 200퍼센트 쏟아부었습니다. 눈을 떠도 청소년, 눈을 감아도 청소년이었습니다. 세상의 다른 좋은 것들로 눈길을 돌리거나 신경 쓸 여유나 관심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단 1분이라도 시간이 나면 아이들을 찾아갔고, 아이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그 시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을 위한 투자를 할 시간이 조금도 없었던 것입니다.

아르스의 성자 비안네 신부님 못지 않게 돈보스코 역시 위대한 고백성사의 성인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돈보스코는 하루 일과중 많은 시간을 청소년들은 물론 신자들의 고백성사에 할애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막 전세계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는 살레시오회의 창립자로서 방문이며, 집필이며, 회의며 신경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미사도 집전해야 했습니다. 강론 준비도 해야 했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도 돈보스코는 개구장이 청소년들을 한명 한명, 일대일로 만났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경청했습니다. 나중에는 얼마나 바빴던지 식사 중에도 살레시오 회원들이나 청소년들과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돈보스코는 외모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쓰지 않은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목에 전념하느라, 영혼 구원에 시간을 바치느라 자신의 외모에 신경 쓸 시간이 도무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매일 특급 연예인 못지 않은 스케줄을 소화하며 하루 온종일 격무에 시달려야했기 때문에 외모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돈보스코는 보다 가치 있는 대상, 보다 본질적인 대상에 더 깊이 집중하기 위해 부차적인 것들에 대한 과감한 가지치기를 단행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오직 영적인 것, 청소년들의 영혼 구원, 하느님, 영성생활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 결과가 자연스럽게 극단적 청빈생활로 연결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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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2021년 1월 31일
  | 01.31
533 80%
안녕? 친구들, 어떻게 지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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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희 살레시오회 창립자 돈보스코 성인(1815~1888)의 축일입니다. 성인께서 그리도 사랑하셨던 청소년들과는 이제는 멀찌감치 떨어져 하루 온 종일 청소나 세탁, 조리나 벌목으로 보내고 있는 제 모습이 많이 서글펐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언제나 피 끓는 청춘입니다. 언제나 갈 곳 없는 아이들을 향한 불타는 사랑으로 이글거립니다.

젊은 사제 돈보스코가 밤낮 가리지 않고 토리노 뒷골목 청소년들을 위해 헌신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발도코에 인접한 그로사 도라 가리를 지나다가 그는 마주 오는 20여 명의 껌 좀 씹는 청소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돈보스코와 오라토리오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었습니다.

돈보스코를 본 아이들은 사제들을 조롱하는 말을 하며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돈보스코는 못 들은척하며 아이들에게 다가가 인사했습니다. “안녕? 친구들, 어떻게 지내지?”

아이들의 대답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참으로 놀랍습니다. “잘 못 지내는데요, 신학박사님, 목이 마른 데 땡전 한 푼 없어요. 마실 것 한잔 사주시겠어요?”

돈보스코는 가까이 있는 카페로 그들을 데리고 가 주머니를 탈탈 털어 모두에게 음료수를 한잔 씩 사주었습니다. 아이들이 목을 축이고 어느 정도 평온해졌을 때 돈보스코가 말했습니다. “애들아, 너희가 내 친구가 되고 싶다면 오늘 저녁에 누군가가 했던 것처럼 하느님과 예수님을 모독하는 말은 하지 않으면 좋겠구나.”

음료수까지 얻어먹었겠다, 아이들은 그러겠노라고 대답했습니다. 신이 난 돈보스코는 그 아이들을 자신의 오라토리오로 초대했습니다. “좋아, 참 고맙구나. 주일에 오라토리오에서 너희를 기다리고 있을게. 이젠 여기서 나가야겠다. 애들아, 이제 집으로 가거라.”

아이들의 대답에 또한 기가 막혔습니다. “저희는 집이 없어요.” 할 수 없이 돈보스코는 열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자신의 숙소인 발도코로 돌아왔습니다.

오라토리오에 도착한 돈보스코는 아이들에게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바치게 했습니다. 본격적인 기숙사가 없었기에 여기저기 적당한 장소에 그들의 침구를 펼쳐놓고 잠이라도 편안히 자게 배려해주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돈보스코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이 자고 있던 장소로 가보았습니다. 결과는 역시나였습니다. 아이들은 어제저녁에 깔아준 담요와 이불을 챙겨서 가버린 것입니다. 그만큼 1800년대 중반 이탈리아 토리노 뒷골목 청소년들이 직면한 처지는 열악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소나기가 억수같이 퍼붓던 5월의 어느 날, 돈보스코와 어머니 마르가리타는 누군가가 강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가 문을 열었습니다.

아이가 그 모진 비를 온몸으로 흠뻑 맞고 서 있었습니다. 많이도 말고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돈보스코를 잘 알고 있던 사람이 그 딱한 아이에게 그리로 가보라고 알려준 것이었습니다.

돈보스코와 어머니 마르가리타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이를 부엌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따뜻한 불가에 앉힌 다음 옷을 말리게 했고, 따뜻한 스프와 빵 몇 조각을 건넸습니다. 아이가 지독한 허기를 채운 뒤 돈보스코는 몇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이의 대답을 들은 돈보스코의 눈은 눈물로 그렁그렁했습니다.

“저는 고아예요. 벽돌공인데 일자리를 찾으러 며칠 전에 발세시아에서 왔어요. 3리라를 갖고 있었는데 일자리를 얻기도 전에 다 써버렸어요. 이제 저는 한푼도 없어요.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요.”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저 아이의 입장이었다면... 아이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설명한 후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트리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련한 아이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본 돈보스코와 어머니 마르가리타 역시 눈시울을 적시며 아이의 잠자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지금은 전 세계 140여개국에 진출해 있는 살레시오회 오라토리오 기숙사의 첫 출발점이 된 은혜로운 사건이었습니다. 을씨년스런 소나기가 데려온 그 아이의 오라토리오 입소 이후 수십, 수백, 수천, 수만명의 아이들이 그 뒤를 이어 살레시오 오라토리오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돈보스코가 만난 아이들, 클라우디오 루소, 돈보스코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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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2022년 1월 31일
  | 01.31
533 80%
"네 이름이 무엇이냐?"(마르코 5장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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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힘을 믿는다.
이름이란 소중한 이름을 자주 불러주는 거기에서 뿌리를 내린다.
열매는 그냥 맺히지 않는다.

삶의 목적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가장 어렵고 오래 걸리는 것이 교육이다.
교육은 기초와 기본을 가르쳐주는 거기에서 출발한다.

출발이 없으면 도착도 없다.
성 요한 보스코 사제처럼 젊은이들의 교육은 우리의 미래이다.
신앙과 교육을 접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되풀이되는 교육을 통해 젊은이들은 건강한 사람이 되어간다.
설레임으로 아침을 맞이하게 하는 사랑이 교육이다.
배우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은 없다.

배움의 여정이 삶의 여정이다.
기술을 배우고 삶의 자세를 배우고 같이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저마다 펼쳐나갈 잠재력을 깨우는 것이다.

사랑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다.
새 생활이 시작되는 거기에 행복이 있다.
변화를 두려워 말자.

교육이 있는
곳에 신앙이 있고 배움이 있는 곳에 사랑의 멋진 성장이 있다.
아픔 없는 성장은 없다.
성장하는 부모 성장하는 자녀들이다.

성 요한 보스코의 사랑으로 교회는 한 단계 더 깊어진다.
사랑은 교육이다.
십자가로 가르치시는 주님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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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2022년 1월 31일
  | 01.31
533 80%
오늘 독서에서는 다윗 왕조가 왕자 압살롬의 반란으로 흔들리는 이야기를 들으셨고, 복음에서는 군대 마귀에 들려 미쳐 버린 사람을 예수님께서 제 정신을 차리도록 해방시켜 주신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또한 오늘 전례에서 교회가 기억하는 인물은 요한 보스코 사제입니다. 그는 19세기 가난했던 이탈리아 사회에서 가정에서는 물론 학교에서 받아야 할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작은 범죄들을 저질러 감옥에 드나드는 청소년들을 보고 시대적 소명을 느껴 투신한 인물입니다.

요한 보스코 자신도 어려서 아버지를 여윈 탓에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과 독실한 신앙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는 세상이 손가락질하고 낙인찍은 청소년들을 그만큼 더 따뜻하게 돌보아야한다고 여겼고 또 그리하면 그 청소년들은 어느 누구 못지않게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라토리오’라는 성가대를 만들어서는 청소년들과 함께 어울리며 노래도 하고 운동도 하며 기술 교육도 시키고 학교에도 보내는 청소년운동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그가 7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오라토리오 출신 사제가 천 명을 넘어설 정도로 그의 청소년 교육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가 평소에 존경하던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이름을 따서 ‘살레시오 수도회’를 설립하게 된 배경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의 이런 삶과 활동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자면 최근의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를 떠올리게 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는 1968년과 1979년에 총회를 열어 공의회의 정신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를 논의했는데,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본받기 위해서는 가난한 이들과 어린이 청소년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함을 결의한 바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요한 보스코는 이보다 2백 년이나 앞서서 예수님의 활동의 핵심을 꿰뚫어보고 일생동안 헌신했던 혜안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나 요한 보스코가 가난한 이들과 청소년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 바탕은 주어진 현실의 사회적 맥락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들을 눈여겨 보았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현장성입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사랑은 모래알처럼 제각기 흩어져서 살던 사람들을 찰흙처럼 단단히 뭉친 공동체로 변화시켜 놓습니다. 이른바 공동체성입니다.

요한 보스코처럼 예수님의 정신이 제대로 머리에 박힌 가톨릭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가 살거나 일하는 곳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찾아내어 그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노력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신앙의 기운이 지닌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모래알갱이처럼 흩어져서 서로 죽기 살기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위기를 신앙인이라면 숨막혀서 답답해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공기를 자유스럽게 호흡할 수 있는 인간관계에서만 신앙인은 마음껏 숨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왕위에 오른 후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러기에 부하들을 전쟁터에 내보내 놓고서 부하의 아내를 탐내기도 했고, 이런 불륜을 보고 자란 아들을 아버지로서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해서 끝내 반란을 일으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문제아 압살롬은 사랑받지 못하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청소년과도 같습니다. 이 상태는 마치 마귀에라도 들린 사람처럼 천방지축이요 제멋대로이며 문제투성이에다가 사고뭉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무릇 모든 악은 작은 죄가 벌려 놓은 틈바구니로 들어오는 법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가난한 청소년들 역시 사랑과 교육에서 소외되어 있어서 그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부딪치는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부모들이 저마다 제 자식들만이 아니라 서로가 함께 자라나는 세대를 돌보려는 책임을 지려고 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요한 보스코 사제가 던지는 메시지가 이것입니다. 청소년을 돌보는 일은 모든 어른들의 공동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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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이기우 신부
2022년 1월 31일
  | 01.31
533 80%
성 요한 보스코 사제(1815-1888년)는 이탈리아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을 청소년들의 교육을 위하여 봉헌한 청소년 교육의 선구자였습니다. 그는 살레시오 수도회와 수녀회를 설립하여 가난하고 불우한 청소년들의 사회적 재활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산업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국민 교육과 기술 교육의 문제가 시급해졌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인구의 도시 집중과 빈민굴의 형성, 비참한 노동 조건 등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면서 가장 보호받지 못하고 내버려진 이들이 바로 청소년들이었습니다.

보스코 성인은 뒷골목에서 방황하는 소년들과 전쟁고아들, 교도소에서 만난 수많은 청소년들, 공장에서 기계 부품으로 전락한 소년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오갈 데 없는 100여 명의 소년들과 함께 근 1년 동안 돈도 거처도 없이 옮겨 다니는 가운데 위기에 처한 소년들과 출감 소년들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하층 계층의 자녀들로서 그대로 방치하였다가는 생명의 위험에 처하거나 범죄에 곧바로 노출될 아이들이었습니다.

보스코는 이들에게 하느님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체험하게 하면서 사회적으로 재활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보스코 성인의 교육 사목이 성공하게 된 이유는, 철저한 가족 정신 아래 청소년들을 믿어 주고 희망으로 기다려 주며,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알게 해 주는, 신망애 향주 삼덕을 바탕으로 한 ‘예방 교육법’ 때문이었습니다.

‘청소년들의 아버지’ 요한 보스코 성인의 교육 철학은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몸소 체험한 그의 가정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는 비록 가난하고 아버지를 일찍 여읜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어머니의 남다른 헌신과 사랑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굳은 신앙은 그를 청소년의 아버지로 자라게 해 주었습니다. 가정은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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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07년 1월 31일
  |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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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31일 : 성 요한 보스코  [9] 3244
30   1월 30일 :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  2355
29   1월 29일 : 성 질다스  2023
28   1월 28일 : 성 토마스 데 아퀴노  [2] 2828
27   1월 27일 : 성녀 안젤라 메리치  [8] 3151
26   1월 26일 : 바울라 (Paula)  3456
25   1월 25일 : 성 바오로 개종  [10] 3820
24   1월 24일 : 성 프란치스코 드 살  [4] 2990
23   1월 23일 : 자선가 성 요한  2023
22   1월 22일 : 성 빈첸시오  2032
21   1월 21일 : 성녀 아녜스  [6] 3734
20   1월 20일 : 성 파비아노  2343
19   1월 19일 : 성 울프스턴  2018
18   1월 18일 : 프리스카  2241
17   1월 17일 : 성 안토니오  [8] 2846
16   1월 16일 : 성 호노라토  2021
15   1월 15일 : 성녀 이타  2258
14   1월 14일 : 성 사바  2024
13   1월 13일 : 푸아티에의 성 힐라리오  2048
12   1월 12일 : 성녀 마르가리타 부르저와  [1] 2379
11   1월 11일 : 성 테오도시오  [1] 2446
10   1월 10일 : 성 베드로 오르세올로 / 스콜라스티카  [1] 2099
9   1월 09일 : 성 아드리아노  2287
8   1월 08일 : 성 토르핀  2188
7   1월 07일 : 페냐포르트의 성 라이문도  2176
6   1월 06일 : 복자 안드레아 비제트  2183
5   1월 05일 : 성 요한 네포묵 뉴먼  2066
4   1월 04일 : 성녀 엘리사벳 앤 시튼  2524
3   1월 03일 : 성녀 제노베파  2711
2   1월 02일 :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2] 3485
1   1월 01일 : 천주의 성모 마리아  [1] 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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