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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2일 :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조회수 | 3,482
작성일 | 06.01.02
성 대 바실리오 (329~379)

인내
  
아무리 해 봐야 승산이 없을 것 같은 절망을 당신은 느껴 본 적이 있는가? 그 절망감을 뼈저리게 체험한 이가 바로 성 바실리오다. 현재 터키 동남부에 해당되는 지역의 대주교였고, 소아시아에 최초의 수도원을 세웠던 바실리오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도 아니고 영원하지도 않다.’라고 주장하는 아리우스파에 대항하여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그러던 중 그리스도의 신성을 옹호하다가 오히려 이단으로 몰리기도 했다. 좌절과 실망으로 전의를 잃은 바실리오는 “내 죄로 인해 모든 것이 다 실패한 것 같다.”라는 기록을 남기기까지 했다. 삶에 부대끼다 지쳐 기운이 빠지면 모든 것이 다 엉망진창인 것처럼 느껴진다. 과거의 좋았던 일은 오늘의 실패에 묻혀 버리고 우리는 자기 연민에 빠져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진다. 바실리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부정적인 느낌들이 자기의 삶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고, 교회 역사상 가장 뛰어난 스승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성 바실리오는 실패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다. 실패가 너무 확실해서 수도원 안에 은둔해 버리는 편이 나을 것처럼 보일 때도 그는 복음 선포의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다. 성 바실리오는 ‘인내란 성공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삶으로 보여 주었다.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는 “달팽이는 인내로 노아의 방주에 이르렀다.”라는 찰스 스펄전의 말을 기억하자. 실패했다고 생각될 때 어떻게 하는가? 낙심하고 있을 때 나를 지탱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나 자신을 신뢰하겠다.

생활성서[작은 거인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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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독서 : 1요한 2,22-28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복 음 : 요한 1,19-28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새해 들어 둘째 날인 오늘은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바실리오와 그레고리오는 카파도치아 출신으로 니싸의 그레고리오와 함께 동방의 3대 교부로 널리 알려진 성인들입니다. 카파도치아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동북쪽으로 약 27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이 900m 높이의 고원 지대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화산 작용으로 옛날에는 바다였던 곳이 산처럼 솟아올랐고 화산재가 굳어져 절벽 같은 봉우리들이 약 800㎢ 이상 펼쳐져 있는 곳입니다.

하느님만을 섬기며 살아가고자 애를 썼던 수도자들이 모여들어 그 암석으로 굳어진 봉우리들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들어가서 살았던 곳이 바로 카파도치아였습니다. 특히 괴레메 골짜기에는 수도원 집성촌이 있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수도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서기 4세기에 그리스도교 신학과 영성이 특히 발전한 곳이 이 카파도치아였고 이곳에 유명한 교부 삼총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가이사리아의 주교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주교 그레고리오, 그리고 니싸의 주교 그레고리오가 그들이지요. 이들은 지금으로부터 1700년 전인 330년경에 태어났는데 그 당시 그리스도교는 이단들이 득세하여 혼란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이들 교부들은 난립하는 이단에 맞서 그리스도교 신학을 정립시켰던 유명한 학자들이었으며, 또한 훌륭한 수도 규칙을 마련하여 수도원의 기틀을 잡아놓은 분들이기도 합니다.

놀라운 것은 하느님만을 바라보고자 했던 이들의 철저한 삶의 모습입니다. 세상과 멀리 하기 위하여 이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아주 높은 산봉우리로 올라가 오직 기도와 묵상으로만 삶을 이어갔습니다. 그리스에 가면 󰡐메테오라󰡑라는 수도원 집성촌이 있는데 이 곳은 도저히 사람이 갈 수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최근에 가까스로 다리를 놓고 건너갈 수가 있게 되었는데 필요한 생필품은 줄을 연결해 끌어올려 사용합니다. 그야말로 오직 하느님만을 섬기며 살아가고자 노력한 수도자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지요.

그런데 그곳에 가면 온통 성당만 보입니다. 동굴마다 파서 만든 곳이 성당이지요. 그래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성당과 제대뿐입니다. 수도자들이 산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살았던 곳인데도 먹고 자는 곳은 거의 보이지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음에도 식당이나 밥을 해 먹은 흔적은 별로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하느님뿐이었습니다. 성당 안의 많은 장식과 성화들이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을 신실하게 믿고 싶어서 세상의 것들은 모두 끊고 살았던 사람들이 이 카파도치아, 특히 괴레메 골짜기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며, 그 바탕을 만든 사람들이 오늘 우리가 기념일로 지내는 바실리오 성인과 그레고리오 성인입니다.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성인들의 신앙과 정신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공인을 받으면서 하느님보다는 세상과 욕망에 집착하게 되자 과감히 세상의 안락을 떠나 오직 하느님만을 따르기 위해 생활환경이 열악한 곳으로 옮겨와 살아간 사람들이 바실리오와 그레고리오 성인입니다. 육신을 제어하고 세상의 것을 멀리하면서 하느님에 대한 열의만을 담고 살아간 이들의 신앙을 본받아야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시대는 정신과 영혼은 빈약하고 오직 육체에만 관심하며 살아갑니다. 그리하여 끊임없는 갈증과 불안에 시달리며 살아가지요. 바실리오와 그레고리오 성인처럼 육신의 욕망을 제어하고 하느님 안에 살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 속에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욕망을 절제하고 하느님 중심의 삶을 결심해야겠습니다.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나는 그들 위에 유일한 목자를 세워 그들을 먹이게 하겠다. 바로 나의 종 다윗이다.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다. 나 주님이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나의 종 다윗은 그들 가운데에서 제후가 될 것이다.󰡓(에제34,11.23-24)

서울대교구 이기양 신부
  |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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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념하는 두 성인은 초대교회의 초석을 놓은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곧 동방교회의 대성인들이다. 2천 년 교회의 역사 안에서 커다란 두 물줄기가 있다고 하면 동방정교회와 서방교회이며, 로마 가톨릭 교회는 개신교 형제들을 포함하여 서방 라틴 교회에 속한다고 하겠다. 그래서 신학자 이브 콩가르는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묵시 22,1)이 동방과 서방에서 흘러나온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동방정교회가 미미하여 그 전례의 장엄함과 신비스러움을 접할 수 없어 아쉬움이 많다.

서방교회는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모되는 성변화의 순간을 주님의 성찬제정 말씀인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의 잔이다”로 믿는 데 비해, 동방정교회는 성찬기도문 전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그리고 성령의 오심(Epiclesis)을 강조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와서 서방교회는 이 성령의 오심을 미사성제 안에 받아들여 성찬제정 말씀 이전에 성령청원(축성기원)을 드리고 있다.

우리에게 친근한 이콘 성화를 바라보노라면 바로 동방교회의 신앙세계, 은둔과 신비와 관상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이런 교회의 심원한 사상은 러시아의 문호들, 특별히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신비스러움은 어쩌면 우리가 믿는 신앙의 세계, 곧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우리에게 나누어주시고자 하는 당신의 내적 생명의 온갖 풍요로움(에페 1,3­-14)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세례자 요한은 오늘 바로 이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요한 1,26).

서울대교구 구요비 신부
  |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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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1월 24일 : 성 프란치스코 드 살  [4] 2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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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월 22일 : 성 빈첸시오  2031
21   1월 21일 : 성녀 아녜스  [6] 3732
20   1월 20일 : 성 파비아노  2339
19   1월 19일 : 성 울프스턴  2016
18   1월 18일 : 프리스카  2240
17   1월 17일 : 성 안토니오  [8] 2843
16   1월 16일 : 성 호노라토  2020
15   1월 15일 : 성녀 이타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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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월 09일 : 성 아드리아노  2284
8   1월 08일 : 성 토르핀  2186
7   1월 07일 : 페냐포르트의 성 라이문도  2174
6   1월 06일 : 복자 안드레아 비제트  2183
5   1월 05일 : 성 요한 네포묵 뉴먼  2062
4   1월 04일 : 성녀 엘리사벳 앤 시튼  2523
3   1월 03일 : 성녀 제노베파  2708
  1월 02일 :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2] 3482
1   1월 01일 : 천주의 성모 마리아  [1] 3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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