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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서소문
조회수 | 2,350
작성일 | 04.07.07
◎ 서 소 문

1984년 이땅에는 103위 순교 성인의 탄생이라는 세계 교회사상 드문 하느님의 역사가 나타났다. 순교자들의 피로 세운 신앙의 터는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의 가슴속에 굳건히 살아 있다.



이들 103위 순교 성인들 중 44명의 성인 성녀와 함께 수많은 순교자들을 탄생시킨 한국 최대의 순교지가 바로 서소문 밖 네거리이다.

한국 교회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은 바로 이곳에서 "월락재천수상지진(月落在天水上池盡)", 즉 "달은 떨어져도 하늘에 있고 물은 솟구쳐도 연못에서 다한다."라고 하여 굽히지 않는 신앙을 증거한 바 있다.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숨져 간 순교자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중 성인품에 오른 이만도 44명으로 이들은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39년 기해박해, 그리고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통 속에서 배교를 강요당하다가 희광이의 칼 아래 스러져 갔다.

지금은 서소문 시민 공원으로 단장돼 있는 이 순교의 현장에는 103위 성인의 탄생을 본 1984년, 한국 천주교 현양 위원회에서 세운 순교자 현양탑이 하늘로 치솟아 건립돼 있다.

서소문 밖 형장이 기억하는 첫 인물은 만천(蔓川) 이승훈이다. '덩굴이 무성한 시냇물'이라는 다소 풍류적인 호를 갖고 있던 그가 태어난 곳은 서소문과 이웃한 반석골, 곧 지금의 중림동(中林洞)이다. 자신의 호와 같이 덩굴이 우거져 무성한 시내를 앞에 둔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 교회 최초로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훗날 조선 교회의 베드로로서, 본명이 의미하는 반석(盤石)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명문가에 태어나 이미 24세에 벼슬길에 나서 환히 열린 출세의 가도를 달리던 그가 환난(患難)의 길로 들어선 것은 천진암 강학회의 일원이 되면서부터이다. 광암 이벽이 주도했던 이 모임에서 새로운 학문과 사상에 접하고 부친을 따라 북경에 가게 된 그는 서양인 선교사들을 통해 한국 교회사상 처음으로 세례를 받는다. 그것이 1784년의 일이다.

조선 교회의 반석으로 전교에 힘쓰던 그는 1801년 신유박해의 서슬로 최필공·정약종·홍교만·홍낙민·최창현 등과 함께 포졸들에게 잡혀 서소문 밖 형장으로 끌려간다. 사회적 명망이 높은 이들 여섯 명의 당당한 태도와 굳센 신념은 그들을 쳐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탄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그중에서 정약종은 약현·약전·약용형제와 함께 이승훈의 처남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평신도 사도직 단체라고 할 수 있는 명도회의 회장을 역임한 그는 강직한 성품과 뛰어난 통찰력으로 주자학과 도가 사상을 깊이 탐구했다. 그러나 주자학이 공리 공론에 치우치고 도가가 허무 맹랑한 사상이라고 판단한 그는 마침 서양문물과 함께 들어온 한역 천주교 서적들을 손에 넣게 되고 주어사 강학회를 통해 천주교를 수용한다.

「주교요지(主敎要旨)」와「성교 전서(聖敎全書)」는 그가 저술한 두 가지의 교리서이다.「성교전서」는 방대한내용의 교리를 종합, 해설했으나 미완성으로 남았고「주교요지」는 순수한 한글로 쓰여진 저술로 10장 43개 항목에 걸쳐 배움이 없는 이들도 누구나 금방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쓰여졌다. 특히 이 책은 양반 계층의 학자가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글로 저술했다는 사실에서 인간의 평등 사상을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같은 때 강완숙을 비롯한 여교우들도 한꺼번에 참수된다. 최초의 여신도 회장이자 주문모 신부를 숨겨 준 죄목으로 아들 홍필주와 함께 체포된 강완숙은 몇 번이나 주리를 틀리면서도 주 신부의 거처를 함구하다가 다른 4명의 여교우와 함께 이승훈등이 처형된 그 자리로 끌려 나간다.

1839년의 기해박해 때에도 서소문 밖 형장에서는 순교자들의 피가 강물처럼 흘러내렸다. 이 때 처형된 이들 중에서 41명이 성인품에 올랐는데 그중에는 성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 김제준도 포함돼 있다. 그는 고문의 혹독함에 굴복해 한 번 배교한 후로는 더욱 혹독함에 굴복해 한 번 배교한 후로는 더욱 굳건한 신앙으로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정약종의 아들 정하상과 그의 누이 정정혜 그리고 정하상과 같이 북경을 여러차례 다녀온 유진길과 불과 13세의 나이로 부친과 함께 순교한 유대철 소년 역시 기해박해 때의 순교자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서소문 밖 네거리는 또다시 피로 물든다. 베르뇌 주교 등 외국 선교사들이 순교하던 바로 그 날 여기서는 남종삼, 홍봉주가 피를 흘린다. 그리고 이들의 머리가 네거리 말뚝에서 채 내려지기도 전에 최형·전장운의 목이 잘린다.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한 이들의 수는 헤아릴 수도 없다. 다만 그들 모두 양같이 순하게 칼을 받았고 신음도 원망도 없이 오직 천주를 행한 한마음이 얼마나 컸던가 하는 것만 미루어 헤아릴 뿐이다.


☞ 찾아가는 길 :

지하철 1호선이나 4호선을 이용. 서울역에서 하차하여 서울역 쪽 출구로 나가 염천교를 건너면 바로 앞쪽이 서소문 공원이다. 서소문 공원 한쪽에 순교 기념탑이 서 있다. 지하철 2호선을 이용, 충정로역에서 하차해도 5분거리이다.



▶ 서소문 ☎ : 중림동성당 사무실 : (02) 392-5018, 362-1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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