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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시] 무학당 순교 성지
조회수 | 1,498
작성일 | 04.07.04
▣ 나주 무학당 순교 성지

나주는 천년의 고도요 전남의 주읍(主邑)으로 옛날부터 크게 발전한 고장이었다.   여기에 지금의 본당이 설립된 것은 1935년 5월 나주본당의 첫 본당신부로서 고 하롤드 현대주교님이 부임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실제 나주에 천주교 신앙의 씨가 뿌려진 역사는 1866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시작된 병인대박해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병인박해의 와중인 1871년 나주에는 천주교 신자 세 분이 잡혀와 모진 고문 끝에 조선군 병영의 정문인 무학당(武學堂) 앞에서 1872년 순교하셨다는 사실과 그분들에 대한 단편적인 사연들만 교회의 병인박해 순교자들의 기록물인 <치명일기>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니 참혹한 박해시기에 그 보다 더 많은 신자들이 이 곳에서 잔혹한 고문을 당하고 장렬하게 순교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수가 정확히 얼마인 지 내용은 알 길이 없고 오직 긴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을 뿐이다.

자랑스런 무학당의 세 순교자들의 이름은 강영원(바오로), 유치성(안드레아), 유문보(안드레아)이다. 그들이 처형당한 곳으로 알려진 무학당 원래의 터였다고 전해지는 자리는 지금의 나주초등학교 교정으로 추정하며 그 곳에는 무상한 세월의 흐름과 함께 아무런 흔적이 없고 오직 무학당의 주춧돌 10개만이 일렬 종대로 남아있어 역사의 자리를 대변해 주고 있다.

비록 단편적으로 전해진 세분의 순교자들의 이야기지만 그들의 신앙은 너무나 훌륭하여 오늘날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참된 귀감이 된다. 그들은 참아 견디기 어려운 혹형 속에서도 사람들 앞에서 천주신앙의 당위성을 용감히 증언했으며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진리를 온 몸으로 입증하였다. 그리고 연일 계속된 혹독한 고문으로 땀과 피가 범벅이 된 지친 몸의 상태에서도 서로 형제애를 발휘하여 세락의 유혹을 극복하자고 격려해 주었으며 조석으로 신공을 통성으로 바친 기도의 삶을 사신 분들이었다. 모두가 천성이 어질고 착하여 박해를 잘 견디어 내며 옥살이 중에 모범을 보이고 심지어 사형집행일을 남기고 남에게 진 빚을 걱정하신 분들이다.


특히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온갖 고통 가운데서도 오로지 천주님과 천상의 삶만을 너무나 그리워했기에 천신과 성인들이 순교자들을 모시러 오는 꿈을 죽음직전에 세 분이 함께 꾸기까지 하신 분들이기도 하다.

이 점은 다른 순교자들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 특이한 점으로 이 모든 이야기는 세 분의 순교자와 같이 잡혀 옥살이를 하다 석방된 순창묵상 사람 최성화(안드레아)와 장성수도 사람 서윤경(안드레아)이 1898년 11월 16일 증언하였고 이 기록이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에 수록되어 있다.

생각해 보자.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진실되고 더 숭고하고 더 거룩한 삶이 어디에 있겠는가! 참으로 순교자들은 한 분 한 분이 하느님 사랑의 극치를 이루신 분들이다. 예수님을 그대로 닮아버린 분들이다. 그러므로 “순교야말로 선교의 씨앗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자신에게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목숨을 남을 위해 바친 것보다 더 큰사랑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이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증거란 없는 것이다.  아, 기막힌 사랑의 봉헌이여! 죽음을 초극한 사랑의 용기여! 도대체 신앙이 무엇이길래 그렇게도 그들은 중요하게 생각했던가! 삶을 바라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거늘. 그러나 우리 무학당의 자랑스런 순교자들은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육정을 끊고 세속의 순간적인 쾌락과 유혹을 기꺼이 버렸던 것이다.

세 분의 순교자들의 이와 같은 위대한 삶을 기억하며 추모하고 고양하기 위해 나주 천주교회에서는 2004년 나주본당 70주년을 맞아 무학당의 세 순교자 현양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 현양의 장소는 나주천주교회 안에 두기로 하고 그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무학당 순교 터는 광주대교구의 유일한 순교성지요, 순교정신을 함양하는 일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므로 우리는 자부심과 긍지를 지니고 신앙의 후손된 도리를 다해야 할 것이다. 순교자 현양사업은 많은 기도와 재원이 따라주어야 하는 사업이다.

따라서 이 역사적인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전 교구민들과 뜻 있는 모든 이들의 나주무학당 순교성지조성을 위한 간절한 기도와 물심양면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하겠다.     지금으로부터 130년전 이 나라가 어둠과 불신의 늪에 빠져 절망할 때 민족구원의 제단에 한 목숨 바치신 무학당의 위대한 순교자들의 순교정신이 오늘날 민주와 인권의 빛고을을 새롭게 비추는 신앙의 횃불로 거듭나게 해야 하겠다.

그리하여 이 불이 참된 선교의 불길로 장렬하게 타올라 이 지역에 그리스도의 진리와 평화를 전하고 이 지역민들에게 희망의 불기둥이 되어야 주어야 하겠다.   마침내 순교자들의 후예인 이 시대를 사는 신앙인들의 이런 간절한 기도와 염원은 잊혀질 뻔했던 무학당의 세 순교자들을 복자의 품에 오르게 할 수도 있고 언젠가는 위대한 한국 순교성인의 반열에 들게 하여 신앙의 큰 은총과 영광을 보게 될 날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지금은 꿈과 같이 여겨지겠지만 모든 이들이 같은 꿈을 꾸면 그 일은 반듯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역사의 진실이므로 우리는 오늘도 그 꿈을 꾼다.

◎ 무학당 순교자

강영원(바오로)

전북 용담인으로 1871년 11월 23일 정읍에서 체포되어 나주 진영에 하옥되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포악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고 통경으로 기도를 바쳤다. 당시 함께 갇힌 유치성과 유문보에게 유감에 빠지지 말자고 격려하며 굳굳이 참아 견디었다.
마침내 나주 무학당 앞마당에서 영장의 지휘아래 태장 30대를 맞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얼굴에다 물에 적신 창호지를 여러 겹으로 덧씌워 질식시키는 백지(白紙)사형을 받아 1872년 3월 9일에 치명하셨는데 그의 나이는 51세였다.
<치명일기 791번>

유치성(안드레아)

본래 경상도 사람으로 전북 무장 암틔에서 살다 나주 포교에게 체포되어 나주 진영에 갇혔다. 그는 신문을 받으며 “만번 죽어도 천주교를 믿겠다”고 하자 영장은 유치성의 발등에 불을 지지도록 하고 나아가 돌무더기에 묻혀 머리가 깨지고 뼈와 살이 으스러지는 혹독한 형벌을 당하다 동료 강영원과 함께 같은 날 백지사형으로 치명하였는데 그의 나이는 48세였다.
<치명일기 792번>

유문보(안드레아)

전남 장성 삭벌리에서 살다 나주 포교 김용운에게 체포되어 나주 진영으로 끌려갔다. 옥중에서 혹독한 고문에다가 염병에 걸려 1871년 11월쯤에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옥사하니, 그의 나이는 50세였다.
<치명일기 793번>

* 이분들의 증언자는 장성 수도에 살다 1871년 11월 13일 나주와 정읍 포교에게 잡혀 12월 초에 나주 진영에 갇혔다가 석방된 최성화(안드레아)이다. 그는 1898년 11월 16일 증언, 당시 순창 묵산에 살았다.

* 치명일기(致命日記)는 제8대 조선 교구장인 뮈텔(Mutel) 민주교가 1866년 흥선대원군의 병인대박해의 과정에서 순교한 이들 가운데 877명의 기록을 담아 1895년에 발간한 책으로 그 중 24명이 1968년에 복자 위에 오르고 1984년 5월 6일 한국천주교창립 200주년 기념대회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오르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 천주교 광주대교구 나주성당 주임신부 송홍철 -

교우 여러분, 나주는 천년의 고도로서 긴 역사를 지닌 목사 고을로 유명한 곳입니다. 동시에 교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홍선대원군이 천주교도에 대해서 내린 병인대박해(1866년)의 와중인 1872년 나주 무학당 앞에서 세분의 천주교 신자들이 신앙을 증거하다 피를 흘리며 순교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 세분 순교자 중 한 분인 강영원(바오로)은 전북 용담 사람인데 정읍에서 1871년 11월23일에 체포되어 혹독한 형벌을 받아 백지 사형으로 1872년 51세의 나이에 치명하였고, 두 번째 순교자 유치성(안드레아)은 본래 경상도가 고향이나 전북으로 이사와 무장 암티에서 살다가 같은 해에 체포되어 30여대의 태형과 돌로 침을 받는 형벌을 받아 강영원과 함께 같은 날 48세의 나이에 순교하였으며, 마지막 순교자 유문보(안드레아)는 장성 삭벌리에서 살다 1872년에 잡혀 감옥에 끌려와 갖은 고문과 질병의 휴유증으로 고생하다 1872년 정월에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옥사하였는데 그의 나이는 50세였습니다.

위의 세 순교자에 대한 기록은 조선교구 제 8대 교구장인 뮈텔 민대주교(Mutel : 民德孝)가 1891년부터 4년동안 병인 박해 희생자 877명의 행적을 엄밀히 조사하고 지역적으로 정리하여 1891년부터 발간한 <치명일기>라는 문헌에 나옵니다.(여기에는 877명의 순교자 기록이 있고 이중 24명이 1968년에 시복이 되고 1984년 5월 6일 한국천주교 창립 200주년 기념대회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오릅니다.)

나주는 조선시대에 목사 고을로 병영과 감옥이 있었고 형이 집행되던 곳이었기에 천주교 박해시대에 더 많은 순교자들이 나왔을 것으로 판단되나 현재에 기록으로 남은 분들은 이 세분뿐이며, 현재 순교자들의 후손을 찾을 길이 없고 여러 설이 있으나 그들의 시신은 나주 산야 어느곳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할 뿐입니다.

교우 여러분, 나주는 이렇게 광주대교구의 유일한 순교터인데 이런 사실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순교자들의 자랑스런 이름보다는 개인이 소장한 작은 성모상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로 유명해져서 교회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전국 각지에서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이 나주 문제의 장본인인 윤율리아는 그의 주장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며 그 현상이 근거 없다는 교도권의 판단을 이미 두차례나 받았고(1998.1.1윤공희 대주교의 공지, 2001.5 최창무 대주교 공지), 그래서 그 어떤 주장이나 홍보 그리고 사업의 추진이 교회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나, 이 일에 관여한 이들은 이런 교회의 공식적인 지시와 명령을 무시하고 1985년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그들의 메시지를 선전하고, 요즘은 성혈이 흘러 내린다는 또 다른 이상한 현상을 소개하며, 소위 성모 동산이라는 성지를 조성하여 사람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주란 역사적으로 세 분의 순교자들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교회에 대한 믿음과 진리에 대한 확신 하나로 귀한 목숨을 바친 거룩한 땅인데 이런 성지가 사이비 성모 신심과 온갖 기복과 신비주의의 소굴로 변질되고 있다니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현상들이 나오는 것은 결국 교회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 즉 순교정신을 함양하고 나주 순교자들의 의로운 죽음을 현양하기 위한 사업을 등한히 한 결과가 아닌가합니다.

교우 여러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야 할 길은 한 길밖에 없습니다.
그길은 최초의 순교자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그분이 짊어지고 가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 땅의 순교자들은 하나 같이 그 길을 갔습니다. 그 들의 삶의 지향은 오로지 하느님과 진리를 위해 그리고 교회와 겨레를 위해 그 어떤 고난과 시련도 두려워하지 않고 운명의 외길을 묵묵히 걸어가신 것입니다.

이런 고귀한 삶의 지향은 그리스도인들이 세대를 초월하여 변함없이 추구해야 할 최상의 덕목이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은 누구나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 위기의 원인을 분석해보면 결국은 순교정신의 이탈에서 오는 것들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날 현대사회를 풍미하는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빚어낸 극도의 이기주의, 물질만능의 풍조가 가져온 한탕주의, 그리고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는 육체와 쾌락에 탐닉하는 찰나주의는 무엇을 뜻합니까?   이와 같은 세속주의는 자기보다 하느님과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에서 진리와 사랑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자기 목숨까지 내어놓은 순교자들의 장한 삶과는 근본적으로 그 가치가 배치되는 것 아닙니까?

나주 본당은 우리 광주대교구에서 긴 역사를 지닌 본당 중의 하나입니다.
다가오는 2004년이 되면 나주 본당 설립 7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은총의 해를 맞아 나주가 광주대교구의 유일한 순교 성지로 조성될 수 있는 희망이 보여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미 교구 사제단과 교구장님의 이 성역화 사업에 대한 결의와 승인이 있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빛의 교구인 광주대교구가 민족사 안에서 민주와 인권의 성지일 뿐아니라, 교회사 안에서도 진리를 위해 피를 흘린 신앙의 성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사제단과 교구민들의 간절한 기도와 협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런 좋은 뜻을 가지고 나주 무학당 순교자 현양 사업을 전 교구적으로 펼쳐 나갈 때, 주님께서 올바르다 하시고 무학당의 순교자들을 비롯하여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도 한마음으로 천국에서 기도해 주실 것이라 확신하며, 그 결과 나주에는 본래의 명예를 되찾게 해주시고 지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교구의 미래에도 큰 희망의 빛을 내려주실 것이라 확신해 마지않습니다.

우리 모두 신앙의 도전과 위기에 직면했을 때에는 130년전 한 몸 바쳐 믿음을 용맹히 고백하고, 하느님과 교회 그리고 겨레에 대한 사랑으로 구원의 제단에 자기피를 모조리 쏟아부었던 나주 무학당 순교자들을 생각하면 이를 능히 극복하고 세상이 결코 주지 못하는 참된 용기와 위로 그리고 평화를 충만히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 순교자들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님,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한국의 모든 순교성인들이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찾아가는 길 :

나주역에서 서쪽으로 난 길로 500m쯤 가면 중앙로 남쪽 로터리가 된다. 여기서 직진하여 200m쯤 가다가 좌측 길로 들어서면 바로 나주 초등교가 나온다. 나주 초등교 구내가 나주 무학당 터이다.



▶ 무학당 순교 성지 ☎ : (061) 334-2123 / HP : 016-9885-4290

▶ 홈페이지로 바로가기 : http://www.kjcatholic.or.kr/naju/mai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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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강진군] 다산 초당  1201
  [나주시] 무학당 순교 성지  1498
1   [곡성군] 곡성성당 내 감옥터  1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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