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ning: fread() [function.fread]: Length parameter must be greater than 0. in /home/hosting_users/ocatholic/www/bbs/lib.php on line 1002

Warning: fread() [function.fread]: Length parameter must be greater than 0. in /home/hosting_users/ocatholic/www/bbs/lib.php on line 1002
국내성지-안동교구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가톨릭이란?

전   례

성   사

교   리

신   학

기도문

용어사전

인물100

소공동체

신자생활

국내성지

국외성지

성   당

수도회

피정지

성화포토

이것이 가톨릭

질문과 답변

♣ 현재위치 : 홈 > 가톨릭 안내 > 국내성지 > 안동교구

서 울

수 원

광 주

대 구

전 주

부 산

대 전

인 천

제 주

청 주

안 동

마 산

원 주

춘 천

의정부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528 66.4%
경북 영양군 곧은정 교우촌
조회수 | 1,423
작성일 | 04.07.18
건사골에서 깊은 계곡을 따라 다시 동북쪽으로 1.5㎞가량 내려 가면 현재 남회룡 제4다리 좌우에 곧은정 신자촌이 있다. 이곳은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와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의 경계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계곡을 좌우로 하여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와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에 옛 고가들이 있었던 흔적이 있다. 군 경계지역 계곡의 길 바로 옆에 있는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 지역의 우거진 낙엽송 밭에는 여기저기 돌무더기들이 쌓여 있으며 야생 약초들과 칡덩쿨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옛날 고가들이 있었던 흔적의 표시로 흙으로 덮여진 고가의 구들장과 굴뚝도 있다. 구들장이 있는 바로 빈 집터 옆에는 물을 긷던 샘이 이끼가 끼고 나뭇잎으로 덮여 있다. 샘터에는 아직도 물이 질척하고 깊이는 약 50㎝ 정도이며 허물어져 있었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보아서 이곳이 곧은정 교우촌이 아닌가 싶다.

그 당시 곧은정 교우촌에는 충청도 여사울 사람으로 중인계급의 부유한 가정 출신인 김경서(희성, 프란치스코)가 1801년 신유박해 때 부친 김광옥(안드레아)의 순교한 후에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는 거룩한 신앙심으로 세상 일을 우습게 생각하여 모든 재물을 버리고 이곳 일월산 중에 있는 경상도 영양 고을 곧은정으로 피난와서 살았기 때문이다.

김희성은 충청도 예산 여사울(지금의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의 부유한 중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아버지 김광옥(金廣玉, 안드레아)은 열심히 신자답게 아들들에게 철저한 신앙교육을 하였다. 아버지 김 안드레아는 신유박해(1801년) 때 체포되었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족에게 자기를 본받아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권고하며 교육시켰고 집안끼리 서로 화목하게 살며, 고신극기하여 영혼 구하는 일에 힘쓰라고 가르쳤다.

김희성은 아버지의 본을 따르겠다는 거룩한 열성으로 세상 모든 체면을 끊고 물욕을 물리쳐 일월산중에 있는 경상도 영양 고을 곧은정으로 가서 숨어 살았다. 거기서 그는 나무 뿌리나 도토리로 연명하면서 금욕생활을 하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해마다 사순절이 되면 대재를 엄수하였고 타고난 급한 성미를 극복하려는 의지와 노력으로 마침내 양순과 인내의 모범이 되었다.

1815년 3월 배교자 전지수가 안동 포졸들을 데리고 나타났을 때 그는 포졸들과 배교자까지도 관대하게 대접하고, 어머니에게는 하직을 고하며 아내에게 어머님을 잘 봉양해 드리며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때가 되면 자기의 뒤를 따르라는 부탁을 하고 나서 기쁜 마음으로 포졸들을 따라 나섰다. 안동에서 첫 심문을 당하고 며칠 후에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그의 용감한 항구심은 관헌들을 당황하게 하였다고 한다.

사형선고를 받은 후 약 20개월 간 감옥에서 기다리던 그는 1816년 12월 19일(음 11월 1일)함께 옥살이를 하며 사형집행을 기다리던 6명과 함께 대구 남문 밖에 있던 관덕정에서 참수되어 시신은 형장 근처에 매장되고 무덤마다 묘비가 세워졌다. 그때 그의 나이는 52세였다. 그 이듬해 1817년 3월 4일 10여 명의 신자들과 친척들이 의논하여 순교자들의 시신을 더 안전한 곳으로 이장할 때 김희성의 시신은 김화춘(金華春, 야고보)의 시신과 합장했다고 한다. 현재 그 무덤이 어디 있는지 확실히 모르고 있으나 아마 대구 근교에 있었던 교우촌이 아닐까 추측된다.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15   경북 청송군 노래산 교우촌  1603
14   경북 울진군 왕피리 교우촌  1532
13   경북 영양군 머루산 교우촌  1437
  경북 영양군 곧은정 교우촌  1423
11   경북 봉화군 건사골 교우촌  1184
10   경북 문경시 건학 교우촌  1246
9   경북 문경시 한실 교우촌  1364
8   경북 상주시 배모기 교우촌  1395
7   경북 봉화군 곰직이 교우촌  1317
6   경북 봉화군 우련전 교우촌  1430
5   경북 영주군 구구리성지 - 홍유한 유택지  1421
4   경북 봉화군 우곡성지 - 홍유한의 묘  1910
3   경북 상주시 신앙고백비  1242
2   경북 문경시 진안리성지  1335
1   경북 문경시 마원성지  1550
1
 

 

서 울

수 원

광 주

대 구

전 주

부 산

대 전

인 천

제 주

청 주

안 동

마 산

원 주

춘 천

의정부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3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


Warning: Unknown(): write failed: Disk quota exceeded (122) in Unknown on line 0

Warning: Unknown(): Failed to write session data (files). Please verify that the current setting of session.save_path is correct (/home/hosting_users/ocatholic/www/bbs/data/__zbSessionTMP) in Unknown on line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