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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 저문 강변 한가롭던 소 울음소리
조회수 | 2,529
작성일 | 08.07.03
아버지의 별명은 ‘소 아부지’였습니다. 그만큼 소를 귀하게 여기고 잘 키웠지요. 아버지는 암소는 키우지 않았습니다. 딱 한번 암소를 키운 기억이 납니다. 암소가 송아지를 낳았는데, 송아지는 집에서 기르고 어미 소를 팔았습니다. 어미 소가 소장수를 따라 집을 나가면서 어찌나 눈물을 흘리던지 식구들이 소와 같이 운 적이 있었습니다. 소가 동네 산굽이를 돌아갈 때까지 우리들은 소를 보며 서 있었지요. 소는 우리들의 한 식구였습니다.

아버지는 늘 수소를 키웠습니다. 수소도 그냥 수소를 키우는 게 아니고, 인근 순창장이나 남원장에서 제일 좋은 수송아지를 골라 사다 키웠지요. 큰집 큰아버지가 소 거간을 하셨기 때문에 아주 좋은 송아지를 탈탈 골라 시세보다 값을 더 쳐주고 사 왔습니다. 시세보다 더 주고 산 송아지를 보며 사람들은 아버지를 비아냥거렸지만, 보기만 해도 복스럽게 잘생긴 소를 깨끗하게 치운 외양간에 넣어두고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음, 송아지를 사려면 이런 송아지를 사야 허는 것이여!” 하시면서 아주 흐뭇해하시곤 했지요.

초가지붕 환한 달빛 하얀 박꽃
모깃불과 마당에 매어 둔 황소

아버지는 별명이 소 아부지답게 소를 아주 정성스럽게 키우셨습니다. 새 풀이 나기 시작하면 동네에서 아버지가 제일 먼저 새 풀을 베어다가 소죽을 끓여주었습니다. 소죽이란 풀을 베어다가 구정물에 넣어 쌀겨나 보리겨를 넣고 푹푹 삶아 주는 ‘소밥’을 말합니다. 소죽이 끓을 때 나는 소죽 냄새는 늘 고소했지요. 소죽을 여물이라고도 합니다. 여름이면 다른 집들은 대개 귀찮고 풀도 많고 또 더워서 소죽을 끓여주지 않고 생풀을 주지만 아버지는 절대 생풀을 주지 않고 동네 주위에서 제일 좋은 풀을 찾아 베어다가 소죽을 끓여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이맘때 어디 가면 무슨 풀이 있는지도 훤히 알고 있었습니다. 더운 여름밤이면 소를 외양간에 두지 않고 마당에 매어 놓고 소 옆에 모깃불을 피워주었습니다. 환한 달빛 아래 초가지붕에 핀 하얀 박꽃과 검푸른 산속에서 우는 소쩍새 소리와 모깃불과 마당가에 매어져 있는 황소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아버지는 겨울에 먹일 소 풀도 동네 산에서 제일 좋은 칡잎을 베어 말렸습니다. 좋은 칡잎은 험한 산에 많지요. 아버지는 놉을 얻어 그런 험한 산에 가서 겨울에 먹일 소 풀을 베어 말렸다가 집으로 가져와 헛청에 쌓아두고 소를 먹였지요. 물론 다른 집들도 다 그렇게 소를 키웠습니다. 소 몸에 똥 하나 묻지 않도록 소 우리를 늘 깨끗하게 치우셨고, 소를 싸리비나 소 빗으로 빗어 소 몸이 늘 번지르르 윤기가 났습니다. 강변에 수십 마리의 소들이 있어도 우리 집 소는 얼른 눈에 띄었습니다. 탄탄하게 살이 오른 잘생기고 깨끗한 우리 소가 강변에 서 있으면 이웃 동네 사람들이 “하따, 그 소 뉘 집 손가 살 한번 잘 올랐다”며 지나가다가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소가 쟁기질을 할 만큼 커도 쟁기질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쟁기질은 대개 성질이 사나운 수소보다 순한 암소에게 가르치지요. 황소에게 쟁기질을 가르쳐 놓으면 여간 소를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니고는 쟁기질을 못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소를 제일 잘 다루는 어른은 아롱이 양반이었습니다. 장딴지가 참나무 토막같이 굳세 보인 이 어른 앞에서는 아무리 뿔 짓을 잘하는 동네 부사리(사나운 수소)도 꼼짝을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지요. 이 어른 앞에서 소가 식식거리며 뒷발질을 하고 콧김을 풍기면 이 어른은 “이런 니기미, 니가 감히 나를 깐봐” 하며 두 발을 땅에 굳게 딛고 어깨를 쫙 펴고 서서 두 개의 소뿔을 잡고 끙 하고 힘을 주면 제아무리 사나운 황소도 금방 눈에 잔뜩 들어간 힘을 슬며시 풀었습니다. 소와 힘겨루기를 하며 버틸 때 그 어른 장딴지를 보면 새파란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살 속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지요. 우리 집에 암소를 키울 때 이웃집에 소를 빌려준 적이 있었는데, 어찌나 힘들게 논 가는 일을 시켰던지 소가 집에 와서 여물도 먹지 않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끙끙 앓아 아버지가 소 빌려 간 사람하고 대판 싸운 적이 있었습니다. 말 없고, 시키는 대로 일을 하는 소지만 몸이 고단하면 그렇게 끙끙 앓는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습니다.

그 크고 순한 눈…묵묵한 모습
이젠 텅빈 지 오래된 동네강변

농가에서 소는 절반 살림이었지요. 소를 키워 살림을 늘리고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한때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했지요. 돈이 없어 소를 키우지 못하는 집은 동네 부잣집이나 이웃 동네 부잣집에서 ‘배내기’ 소를 가져다가 키웠지요. 부잣집에서 암송아지를 사다가 주면 그 소가 송아지를 낳을 때까지 키워 송아지를 낳으면, 송아지는 키운 사람이 차지하고 다 큰 소는 주인이 가져갔습니다. 옛날 동네에서 부자를 말할 때 ‘그 집 소 고삐가 한 짐도 넘는다’고 하였습니다. 남의 집에 소를 키워 달라고 준 소 고삐가 많으면 많을수록 부자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소는 거름을 만들기도 합니다. 소는 똥도 많이 싸고 오줌도 많이 쌉니다. 그래서 여름에는 외양간에 늘 새 풀을 베어다가 넣어주고 겨울에는 새 짚을 넣어주지요. 그 새 풀과 새 짚이 오줌, 똥과 섞여 두엄이 되고 썩어 거름이 되지요. 동네 어른들 중에 강변에서 소똥을 바재기 가득 주워 담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소는 일 잘하는 장정 두 사람 몫을 하였습니다. 소가 하루 남의 집에 가서 일을 해 주면 장정이 이틀 일을 해주었습니다. 모내기철이 되어 비가 갑자기 많이 내리면 쟁기질을 해서 물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소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집이 한두 집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소를 키워 깃발을 날리실 때가 있었습니다. 어찌나 좋은 수소를 잘 키웠던지 외양간이 그들먹하게 자란 소가 있었습니다. 잘생긴 머리통이며 양쪽으로 가지런하고 순하게 자란 뿔이며 정자나무 아랫도리같이 든든한 앞발과 뒷발, 듬직하게 살진 몸이 어찌나 우람하고 붉던지 보는 사람들이 다 탄복을 했지요. 그 큰 소는 순하기까지 했습니다. 다른 소들은 아버지가 어디 가셔서 우리들이 여물을 퍼가지고 가면 식식거리며 뿔 짓을 하기도 하고 여물통에 여물을 잘 붓지 못하게 우리들을 겁주기도 했지만 이 소는 순해서 우리들이 여물을 주어도 그 크고 순한 눈으로 여물통에서 물러나 여물을 다 퍼 부을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지요. 아버지는 꼭 소 목에 핑경(풍경)을 달아 주었는데, 그 수소의 핑경 소리는 늘 고르고 평화로웠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 소가 우리들을 바라보던 그 정다운 눈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무튼 소가 어찌나 잘생기고 크던지 전라북도 종돈 대회에 나갔지요. 대회에 나간 날 아침 굿 칠 때 두르는 울긋불긋한 굿 띠를 소의 몸에 이리저리 보기 좋게 장식을 했지요. 굿 띠를 두른 소가 외양간을 빠져나올 때 동네 사람들은 모두 탄복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 소가 전라북도 종돈 대회에서 2등을 해 왔습니다. 금테 두른 아주 근사한 상장과 금일봉을 탔지요. 아버지 생전 처음 받은 상장을 나는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는 강변이 아주 넓습니다. 그 강변에는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붉은 소들이 여기저기 매여 있었습니다. 꼭 목장 같았지요. 이른 아침 풀이 좋은 곳을 찾아 소를 매어 두었다가 해가 지면 아이들이 하나 둘 어딘가에서 나타나 소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 해 저문 강변에서 소들을 데리고 집으로 갈 때 울던 소들의 그 한가로운 울음소리는 우리가 살던 전형적인 고향의 풍경이었습니다. 소를 데리고 강 건너로 일을 갔는데, 갑자기 운암댐 문을 열어 큰물이 불면 사람들은 소 고삐를 벗겨 몸에 단단히 맨 다음 그 큰물에 소를 몰아넣었습니다. 그러면 소는 목만 물 위로 드러내 놓고 그 파란 물결을 따라 마을 쪽으로 건너왔지요. 소가 그렇게 강물을 건너오면 동네 사람들은 강가에 서서 마음을 졸이다가 소가 강을 무사히 건너와 물 밖으로 서서히 몸을 드러내며 강기슭으로 걸어 나오면 고함을 지르고 손뼉들을 치며 좋아했지요.

그런데 어느 해부턴가 소를 키우라고 나랏돈을 융자해 주었어요. 아버지도 융자를 받아 커다란 황소를 두 마리나 사서 키웠지만 그해에 소 값이 똥값이 되는 바람에 그 뒤로는 소를 키우지 않았습니다. 동네 강변이 텅 빈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지금 두 집이 소를 키우고 있습니다. 동환이 아저씨는 깊은 산속에서 여러 마리 소를 키우고 종만이 아저씨네는 지금도 옛날 그 외양간에서 소를 키웁니다. 종만이 아저씨네 소가 얼마 전에 암송아지를 낳았습니다. 나는 이따금 그 집 외양간에 가서 어미 소가 송아지를 핥는 그 정겨운 모습을 보곤 합니다. 우리는 지금 촛불을 들고 잃어버린 소를 찾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김용택 시인
한겨레 신문 2008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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