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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 사이
조회수 | 2,298
작성일 | 08.11.10
쑥떡 이야기 숲속에 비오듯 왁시글거리고…

퇴근해서 밥 먹고(밥을 큰집에서 먹었나, 아니면 우리 집에서 먹었나, 모르겠네.) 아, 참 내 정신 좀 봐, 오늘 저녁은 내가 밥을 샀구나? 큰집 식구 희영이와 아들, 이환이 아줌마, 용국이 형님 내외, 그리고 전주에서 그림 그리는 이일청 선생님 내외가 우리 동네 앞을 지나다 같이 밥 먹었습니다. 13명이 회문산 가든에 가서 다슬기 수제비를 먹었습니다. 맛이 있었습니다. 집에 와서 배가 불러 용국이 형님하고 만조 형님하고 강가에 나가 돌아다녔습니다. 비 오면 넘치는 다리에 서서 마을에 사는 사람을 세어 봤더니 모두 28명쯤 되었습니다. 모두 한 명 아니면 두 명인데, 재호네 집만 다섯 명이나 되네요. 밤 여덟 시도 안 되었는데, 사람들이 불을 다 꺼놓았어요. 만조 형 말에 의하면 밤이 되면 사람들이 밥만 먹고 불을 다 끄고 텔레비전을 본답니다. 전기세 아끼려고 그런대요. 텔레비전 화면만 나오면 되니, 그래도 되겠네요. 밤이면 정말 단순한 생활이 되어버리네요. 텔레비전을 켜 놔야 잠이 든대요. 우리 어머니도 꼭 텔레비전 리모콘을 들고 주무신다니까요. 그리고 모두 새벽이면 일찍 일어납니다. 새들처럼 부지런하지요. 밤에 우는 새 빼고는 모든 새들도 해지면 금방 집 잡아들어 조용하게 자지요. 참, 새들은 집에서 잠을 자지 않아요. 많은 새들이 숲속 나뭇가지에 앉아 잠을 잔답니다. 집은 새끼를 기를 때만 사용합니다. 사람들만 무슨 일들이 그리도 많은지 밤을 새워 일들을 하지요.

아침 4시 반쯤 깨어 일어나 산책을 나갑니다. 시골에 살면 아주 구체적인 일들이 많습니다. 어제는 한수 형님이 고추 모종을 했는데, 45포기가 모자란대요. 오늘 아침에 산책 나가는데, 동환이 아저씨 못자리에 모가 파랗게 자랐습니다. 작고 파란 모 잎에 이슬들이 달렸는데, 잎마다 다 달고 있었어요. 뛰엄 바위쯤에 가는데 용국이 형님이 차에 수남이 누님하고 형수님을 태우고 천담 쪽으로 가는 거예요. 어디 가냐니까, 쑥 캐러 간대요. 이 새벽에. 그러면서 우리 ‘쑥 병’ 걸렸다고 해요. 오늘은 우리 집 쓸 쑥을 뜯는답니다. 큰집과 용국이 형네 집 쑥을 뜯어 오면 어머니께서 같이 다듬어 주었기 때문이랍니다. 용택이는 백날 가야 쑥 뜯지 않을 테니까 자기들이 뜯어 준다나 봐요.

민달팽이 기어간 자국 생생한 새벽
새들처럼 부지런한 사람들 몸놀림

아무튼 나더러 차 타라고 해서 나는 걷는다고 하고 걸었습니다. 내가 걷는 천담 가는 길이 흙길이잖아요. 그리고 깊은 계곡이고, 강 양쪽엔 지금 엄청나게 푸른 산이 되고 있어요. 그 길에 아주 희미하게 길을 가로질러 간 자국들이 많이 있어요. 마치 다슬기가 모래밭을 기어간 자리같이 생생하고, 마른땅에 지렁이가 기어간 자리 같은 자국 같아요. 가만히 보니, 민달팽이가 신작로 길을 기어 간 자리예요. 밤 사이 그 느린 민달팽이가 5미터가 넘는 길을 기어 건너가는 동안 차가 안 갔다는 증거지요. 민달팽이 자국들이 이렇게 많은 걸 보면 지금이 민달팽이들이 아주 많이 움직이는 철인가 봐요. 며칠 산책을 다니는 동안 그 길에 민달팽이 한 마리만 차에 치어 죽은 것을 보았을 뿐입니다. 집에 오는데, 웬 차가 우리 집 앞에 서는 거예요. 강진 떡 방앗간에서 어제 맡긴 쑥떡을 해 가지고 왔나 봐요.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종만이 아저씨 집에 사람들이 많아요. 종만이 아저씨 생일이래요. 내가 그 집 아들딸들을 다 가르쳤지요. 점순이, 인택이, 균택이, 또 딸이 둘인가 있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네요. 그 아이들이 다 자라 장가가고 시집가 아들 딸 낳아서 이렇게 저렇게들 살지요. 그 집에 가서 밥을 먹었습니다. 저 아랫 겉 이장 어머니, 성민이 할머니, 태금이 어머니, 당숙모, 나, 인택이 외할머니, 어머니, 종길이 아제, 한수 형님. 동네 사람들은 이분들만 모였어요. 오늘 아침은 또 만조 형 생일이래요. 인택이네 집에서 밥 먹고 큰집에 갔지요. 누룽지 말린 것을 먹고 있는데, 어머니와 이환이 아주머니가 쑥떡을 만들었어요. 뜨끈뜨끈한 쑥떡을 주먹만큼 떼어 수제비 만들 때처럼 쭉쭉 늘린 후 거기다가 팥을 엄지손가락만큼 떼어 넣고 겹쳐서 컵으로 꾹 눌러 똑 뜨면 꼭 반달 같은 떡이 되지요.

“떡이, 좀 작네.” “아녀, 이만해야, 한 번에 입으로 쏙 들어가지.” “아닌디.” “그런당게, 아, 근디, 동환이 양반네 못자리 비닐을 벌써 걷어부렀데?” “그 집은 머든 지들 맘대로여.” “냅둬, 그러든지 말든지.”

“한수 형님네 고추 모종이 모자란담서?”

“오늘은 쑥 뜯으러 안 가고, 취 뜯으러 가야지.” “나는 안 갈텨.” “냅둬, 나 혼자 갈텨.”

“떡이 참 차지다이.”

“혼자 가먼 안 된디.” “멧돼야지가 무서.” “멧돼야지는 사람한테 안 덤벼드는디, 요새 새끼 날 땐디. 새끼 있으면 무서. 사람한테 덤벼든당게.”

“오늘 낮에는 누구 집에서 밥 묵는데야.” “당숙모네 집이서.” “당숙모 생일을 일찍 쇠야분대야.”

“아이고, 나는 학교 가야겄다.”

“저것 봐, 저 집은 벌써 망태 메고 산에 가네.”

“오늘 굉일이잖여.” “글도 나는 갈 거여.” “그러면 떡 좀 가지고 가제?” “아녀 이따가 올 거여.” “안 오면 택배로 부칠게.” “택배도 굉일 날은 쉰디.” “아 참, 저그 종만이 사위가 택배 허잖여, 그놈보고 가라고 허면 되겄네.” “아녀, 그만뒀다는디.”

“그러면 취 뜯으러 가지 마?”

“아, 떡이 진짜 맛있다.”

“근디, 이명박이 큰일이드만.” “이명박이 뭐여, 대통령보고” “아, 두 달 쬐끔 더 되얐는디, 미친 소 때무이람서.” “뭔 소가 다 미쳐 부렀대야.” “그나저나, 노무현 대통령이 신간 편하드마인.”

“떡은 이렇게 따땃헐 때 먹는 것이 질이여.”

“아, 용택이 학교 안 가?” “오늘 아이들도 없어.” “아, 근디 뭐하러 핵교는 가?” “시 쓰로 간감만.”

“근디, 용택이네 쑥은 언제 다듬는대야.” “집에다 가져다 놨응게 되겄지, 뭐.”

“아이고, 나는 학교 가야겄다.” 참고로 집에서 학교까지 차로 5분 정도 걸립니다.

이게 아침 큰집에서 떡을 만들며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요란하지요. 시끄럽습니다. 무슨 말들을 하는지 잘 들어야 앞뒤가 이어집니다.

아무데서나 끝나고 잘리는 이야기
나무들처럼 말갛게 어우러져가네

시골 사람들은 밥 먹을 때도 놀 때도 일을 할 때도 무슨 이야기들을 남 이야기 하듯 합니다. 아주 가볍고도 명쾌하고 시원하지요. 이 말 하다가 저 말 하고 저 말 하다가 또 엉뚱한 말을 해도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던 이야기가 어디로 꼬리를 감추었다가 또 어디선가 그 이야기로 언제 돌아온지 모르게 돌아와 있습니다. 딴 이야기 한다고 가로막는 사람도 시비 거는 사람도 화내는 사람도 토라지는 사람도 턱없이 삐지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고는 아무데서나 이야기가 그냥 끝이 나버리지요. 그러고는 나중에 만나면 자연스레 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한가하고 여유롭고 서두르지 않고 느긋해요.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의 말의 이어짐이 아주 여유가 있고, 아름답지요. 힘을 들여서 자기를 과시하려는 생각이 없어 보여서 재미가 있지요. 마치 여러 가지 나무들이 서로 어울려 있는 것 같지요. 마치 숲속에 비 오는 소리 같아요. 그러나 때로 느닷없이 아무 일도 아닌 것 같고 크게 싸울 때도 있지요. 싸울 때 보면, 그 말들과 모습을 보면 또 얼토당토 안 해서 웃음도 안 나온다니까요. 그 재미가 얼만데요.

늘 신경을 곤두세운 이론이나 논리가 사람들을 얼마나 피곤하게 하는지 몰라요. 배운 사람들의 그런 세련된 말들이 사람을 잡지요. 그런 말들일수록 일을 제대로 해결할 말은 거의 없습니다. 빈정거리고, 야유하고, 속 두고 딴 말 하고, 그런 사람들 말들은 징그러워요. 농사 짓고 사는 사람들의 말은 다 해결할 수 있는 말들이지요. 아주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며 군더더기가 없어요. 해결이 간단한 사건은 말과 행동 또한 간단합니다.

택배 못 보내니 집에 와서 밥 먹고 시 쓰라는 전화가 왔네요. 그만 집에 가야겠네요.

시인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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