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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 촌사람들의 입 달력
조회수 | 2,080
작성일 | 08.11.10
주인 발소리 듣고 곡식 자란다지요

아침이면 어김없이 새들이 내 잠을 깨웁니다. 새처럼 부지런하다는 말이 정말 실감나게도 새들은 일찍 깨어나 산 가득 웁니다. 닭이 울고, 후투티가 울고, 참새가 울고, 딱새가 울고, 때까치들이 울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이 앞산 숲 속에서 쉼 없이 지저귑니다. 저번에 후후후훗 하고 우는 새가 무슨 샌가 했는데, 동네 이장이 그 새가 ‘후투티’라네요. 그 말을 듣고 나니, 그 새가 후후후훗이 아니라 후투투티 하고 우는 것 같았지요. 마을 이장들은 아는 것도 많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새의 울음소리를 가지고 온갖 말들을 다 만들어 냅니다. 까마귀는 집이 없고 까치는 집을 짓고 살아요. 그런데 까마귀가 자꾸 까치집을 넘본대요. 그러면 까치가 ‘짓고 살지 짓고 살지’ 하며 운답니다. 그러면 까마귀가 “야야. 나는 초상난 데 문상 갈라, 아이 낳는 데 축하하러 갈라 집 지을 새가 없단다” 그런대요. 밤을 새워 소쩍새가 우는데, 풍년이 들 해는 소쩍새가 ‘솥 꽉 솥 꽉 솥 꽉꽉’ 하며 솥이 꽉 찬다고 울고 흉년이 들 해는 소쩍새가 ‘솥 텅 솥 텅 솥 텅텅’ 하며 솥이 텅텅 빈다고 운답니다.

동네 앞 한수 형님네 밭에 산두 싹이 아주 나란히 섰습니다. 나란히 난 어린 곡식들은 다 어여쁘지요. 콩, 옥수수, 깨, 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어린것들이 어떻게 땅을 밀고 올라왔을까 신기합니다. 어제는 어머니와 밥을 먹으며 “어머니, 오늘 꾀꼬리가 울데요” 그랬더니, “꾀꼬리 울음소리 듣고 참깨가 나고, 보리타작 하는 도리깨소리 듣고 토란 난다”고 하십니다. 놀랍지요. 샛노란 꾀꼬리와 땅을 뚫고 올라오는 노란 참깨 싹을 생각해 보세요. 눈이 아리게 부시지요. 토란은 곡식이 잘 안 되는 물기가 많은 밭두렁 밑이나 버려진 자갈이 많은 땅에 심는데, 싹이 나오려면 오래 걸리나 봐요. 어찌나 더디게 싹이 나던지 도리깨로 땅을 텅텅 두드려야 땅 울리는 소리에 땅이 금가고 토란이 놀라 싹이 나나 봐요.

못자리를 할 때 볍씨를 뿌리고 그 위에 비닐을 덮어 둡니다. 비닐을 덮고, 바람에 날리지 못하게 비닐 자락에 1m 간격으로 흙을 한 삽씩 떠서 얹어 두지요. 그런데 벼들이, 그 연하고 여린 벼 잎이 올라오면서 비닐이 점점 들어 올려져요. 정말 놀랍습니다. 그 가늘고 가는, 그리고 아무런 힘이 없어 보이는 여린 벼 잎들이 힘을 합쳐 흙이 누르고 있는 그 무거운 비닐을 들어올리며 싹을 키우는 것이지요. 놀랍지요. 신기하지요. 절대 벌로 볼 일이 아닙니다.

보리 타작 도리깨에 토란잎 돋고
꾀꼬리 울음소리 듣고 참깨 난다…

요즘 나는 큰집 형님하고 아침 산책을 같이 갑니다. 형님은 산책이 아니라 논에 가는 것이지요. 형님은 벼를 내놓고 논에 물을 아침마다 보러 갑니다. 곡식들이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지요. 실제로 주인의 발소리가 들리는 앞 논두렁의 벼들이 더 자라고 나락 모가지가 굵고 알갱이가 많이 달린답니다. 모를 낸 그 이튿날 형님하고 형님 논두렁에 서서 그 여리고 예쁜 벼들을 보고 있는데, 형님이 “참말로 이쁘다” 하시는 거예요. 정말 모낸 논 논두렁에 서서 나란히 서 있는 벼들을 보면 예쁩니다. 형님은 “나는 저 벼들 보는 재미로 농사짓는다네” 하셨습니다. 형님네 논 사이 도랑 하나 건너에 나와 동창생의 논이 있습니다. 그 논에는 지금 모를 내기 위해 물을 잡고 있지요. 이웃 동네 사는데, 유일하게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사는 동기동창입니다. 이런저런 일로 빚을 많이 짊어졌는데 올해 논을 샀답니다. 옷에 흙 범벅이 된 채 검붉게 탄 얼굴로 삽을 들고 저문 날 논두렁을 걷고 있는 그 동무를 보면 나는 마음이 정말 고르지 못하답니다. 그 동무 아직 빚을 다 갚지 못했답니다.

그 친구 논물 잡아 둔 곳을 지나며 보니 물이 길바닥으로 줄줄 새는 거예요. 형님하고 나하고 물이 새는 곳을 이리저리 찾아 물 새는 곳을 막았습니다. 내 깐에는 아주 중요하고 큰일을 했고, 그 동무를 만나면 나도 할 말이 생긴 것이지요. 그 동무네 논 위가 종길이 아제네 논인데, 올해 모가 잘 되지 않아 난리가 났습니다. 형님네 모가 많이 남아 아주 다행이었지요. 종만이 아저씨네도 모가 모자라 지금 전전긍긍합니다. 벼농사에서 모가 모자라면 큰일 중에서 상 큰일이지요. 그래도 내 평생 모 모자라 빈 논으로 가을을 맞은 논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떻게든 모를 심지요. 형님 말에 의하면 요즘은 열흘 만에 모를 키워내는 데도 있답니다. 계약을 해서 며칠 날 모를 내겠다고 하면 그 회사에서 그 날짜에 맞게 모를 키워 준대요. 우리 이웃 군이 순창군인데 그곳에 동계면이 있어요. 그 면 조합에서 그렇게 모 길러주는 일을 맡아 한답니다. 그 농협은 직원들이 차를 몰고 다니며 마을의 이런저런 일을 돕는대요. 조합장도 직접 팔 걷어붙이고 농민들과 함께 일을 한답니다. 그래야지요.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 매고 실내화 질질 끌고 사무실에서 왔다 갔다 하며 거드름을 피우는 조합 직원들보다 그런 농협이 정말 농민을 위한 농협이지요.

동네 앞 논을 돌아 강을 건너 강 길을 한 20분쯤 걸어가면 형님네 논입니다. 논에 가서 보면 이놈의 너구리들이 모낸 논에 있는 올챙이들을 잡아먹으려고 모를 쓰러뜨리며 논으로 돌아다닌 자국이 보입니다. 요새 농촌에는 산짐승들 때문에 농사를 망칠 때가 간간이 있습니다. 며칠 전 아침에도 동네 바로 앞 강가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았지요. 처음 보았을 때 신기했는데, 요샌 자주 보니, 소 닭 보듯 합니다. 고라니란 놈이 참깨밭을 뛰어다녀 비닐이 뽕뽕뽕 뚫려 있습니다. 오소리는 잡식성이에요.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먹어치웁니다. 동네 산에 토끼가 안 보인 지 오래되었는데, 너구리가 토끼 새끼들을 다 먹어치운답니다. 토끼뿐 아니에요. 집에서 기르는 염소 새끼도 주워 먹어버린대요. 동네까지 쳐들어온답니다. 멧돼지들은 또 새끼들을 데리고 내려와 고구마밭이나 논을 짓밟아 놓습니다.

작은 씨들이 모여 흙을 뚫어내듯
몸과 맘에 밴 자연의 이치가 툭툭

형님은 동네 일과 동네 산과 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소상히 알고 있습니다. 비닐을 씌워 놓고 구멍을 뽕뽕 두 줄로 뚫어 놓은 곳에 참깨 싹들이 아주 예쁘게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 참깨들을 보고 참 이쁘지요인, 했더니 “자네 왜 참깨들이 한 구덩이에서 저렇게 많은 싹이 나온지 안가?” 하고 묻데요. 나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모르겠데요. 그래서 모른다고 했더니, 이렇게 말하십니다. “참깨를 한 구덩이에 두 개 세 개씩 넣으면 이것들이 하도 싹이 작아서 땅을 못 뚫고 나온다네. 그래서 참깨 구덩이에서는 저렇게 많은 싹이 나온당게. 여러 개를 한 구덩이에 넣어야 저것들이 힘을 합쳐 땅을 뚫고 흙을 밀어내며 나온당게.” 나는 놀라고 또 놀랍니다. 광화문에 모여든 촛불 생각이 났습니다. 작은 촛불들이 모여 나라를 들어 올리잖아요. 역사는 늘 되살아난다는 것을 잊은 철없는 사람들이 우리 자존심을 건드렸잖아요. 아무튼, 오래된 농사 교육은 사람들에게 자연과 생태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또 몸과 마음에 배게 했지요. 말로만 떠들고, 이론으로 무장해서 목에 핏대 세우고, 나같이 책상머리에 앉아 생태가 어쩌니, 자연이 어쩌니, 한마디로 지랄하는 것들하고는 근본적으로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요.

어제는 모를 내고 이앙기가 잘못해서 모를 빠트리거나 구부러진 모를 때우는 곳에 갔습니다. 수남이 누님하고 형수님 두 분이 모를 때우다가 쉬고 있길래, 그곳으로 가 논두렁에 앉아 놀았습니다. 내가 옛날 같으면 밤꽃이 필 때 모를 냈다고 하자 누님이 옛날에는 대추를 콧구멍에 넣어가며 모를 냈다고 합니다. 옆에 있던 형수님은 “뭐? 대추를 콧구멍에다가 집어넣어?” 하며 놀랍니다. 그러면서 우리 동네는 밤송이를 겨드랑 밑에 넣어가며 모를 심었다고 합니다. 밤송이를 겨드랑이 밑에 넣어 가시가 쿡쿡 찔러 겨드랑이가 안 아프면 모를 내서 그 해에 쌀밥을 먹었답니다. 누님은 대추가 많은 고장으로 시집을 가 살아서 대추로 모내는 철의 늦고 이름을 가늠했고 우리 동네는 보이느니 산에 밤나무들이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밤에 동창생 논에 불이 환하데요. 트랙터로 논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형님하고 같이 가 보았지요. 어둑거리는 논둑을 동무는 검은 바위가 움직이는 것처럼 돌아다닙니다. 갈아 놓은 논에서 개구리들이 와그르르 웁니다. 개구리 울음소리들이 찔레꽃 꽃 덤불로 하얗게 모여들었습니다.

시인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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