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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 최재효: 목련 꽃 필 때면
조회수 | 2,874
작성일 | 09.05.16
목련 꽃 필 때면
          
            - 여강 최재효-

내가 가장 좋아 하면서도 애잔한 꽃이 바로 목련꽃이다. 잎이 나오기도
전에 백설처럼 하얀 화판(花瓣)의 고고(孤高)함은 꽃 중에 으뜸이다. 또한
목련꽃은 나에게는 큰 누이요, 내 가슴 깊이 아련하게 서려있는 슬픔이다.
해서 나는 해마다 목련꽃이 필 때면 남모르는 가슴앓이를 해야 한다.  

20년 전 큰 누이는 목련꽃이 막 봉오리를 터트릴 때에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어린 삼남매를 이승에 남겨 두고 떠나가야 하는 그 발길이 아마도
무거웠으리라. 누이의 관을 부여잡은 어린 조카들의 가슴 찢는 울부짖음이
아직도 내 가슴 속에 메아리로 남아있다.

목련꽃 필 때면 항상 떠오르는 슬픈 추억이 있다. 흙을 목숨보다 더
소중히 생각하는 부모님 슬하에게 나는 삼남 사녀 중 여섯 번째였다. 위로
누이 세분과 형님 두 분 그리고 아래로 여동생이 있다. 농번기가 되면
집안을 지키는 사람은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들과 어린이들 그리고
강아지뿐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농사일로 바쁜 어머니 대신 집에서 나를
업어 키우던  분이 바로 큰 누이였다. 다른 누이들과 형들은 학교 때문에
늘 하늘에 별들이 초롱초롱해야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큰 누이와
나는 20살 차가 났다. 늘 집에서 나를 업어 키우고 하루 종일 응석을 받아
주는 누이를 나는 엄마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런 누이가 내가 5살 때 시집을 가게 되었다. 누이가 시집가는 마을은
점봉리에서  30여리 떨어진 ‘하거리’라는 마을이었다. 그 날은 막 진달
래가 피기 시작한 춘삼월이었다. 전날부터 서울과 수원 등 먼데 사는 친인
척들이 점봉리로 몰려들었고, 동네 아주머니와 장정들은 잔치 준비에
분주했다.

철없는 어린 소년은 집에 갑자기 사람들로 붐비고 먹을 것이 풍부해
진데 신바람이 났다. 아침부터 안마당에 누런 포장이 쳐지고 초례청(醮禮
廳)이 설치되었으며, 시간에 맞춰 처음 보는 남자가 사모관대를 정제
(整齊)하고 집안으로 친구들과 함께 위풍당당하게 들어왔다.

곧이어 연지곤지로 선녀처럼 예쁘게 단장한 큰 누이 모습에 막내 남동
생은 더욱 신이 나서 괜히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혼례의식이 끝나고
곧 큰 누이가 매형을 따라서 매형 집으로 간다는 생각에 다시는 영영
보지 못할 것 같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나는 뒷동산에 올라가 멍하
니 하늘만 바라보았다.

잔치가 끝나고 늦은 오후가 되자 누이는 가마를 타고 시집인 하거리로 향
했다. 나는 누이를 그냥 보낼 수 없어서 무작정 가마꾼들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뒤 따라갔다. 어린 나이에 삼십 리 산길은 꽤 먼 길이었다. 진달
래가 흐드러지게 핀 산길에 접어들자 높은 나무 위에서 뻐꾹새와 산비둘기
들이 울면서 철없는 소년을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파릇한 들녘을
가로질러 개구리가 알을 잔뜩 낳은 개울을 건너 두어 시간 만에 누이의
시댁인 하거리에 도착하였다.

삼륜차로 먼저 집에 도착한 매형은 대문 밖으로 뛰어 나와 개선장군
처럼 누이를 데리고 안채로 들어갔다. 나는 혹시 누가 나를 알아 볼까봐
멀리 숨어서 누이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안채로 들어간 매형과 누이는
이내 감감 무소식이었다.

어린 소년은 낯선 동네, 낯선 집 대문 앞을 서성댔지만 이방인 같은
소년을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옆 동네 사는 아이가 잔치 집에
무엇을 얻어 먹으로 온 것으로 생각하였거나 아니면 어쩌다 지나가다
들린 타동네 아이로 취급하는 데 은근히 화가 났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60년대 중반에는 산골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전화기도 없었다.
대포산 너머로 해가 넘어가고, 매형네 집에 온 하객들도 하나 둘 돌아
가고 나자 주위는 금방 춥고 어두워졌다. 배가 몹시 고프고 추위가 엄습
했지만 소년은 늦은 밤까지 낯선 집 대문 앞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곧 누이가 나올 것 같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누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점점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점봉리에서는 소동이 벌어
졌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과 하객으로 왔던 친척들이 최 씨네
막내아들이 없어 졌다고 웅성거리며 불안해하였다. 동네 이장은 아이를
찾는다고 여러 번 방송을 하였고, 형님들과 누이들 그리고 사촌들까지
나서서 집 근처 들과 산 심지어 이웃집 헛간, 뒷간을 모두 뒤져 보았지
만 최 씨네 막내아들은 종적을 감추었다.

별들도 졸려워 할 시간, 매형님네 집 사랑채에 혼자 사는 매형의 작은 아버
지가 새벽녘 잠결에 소년의 콜록거리는 소리를 듣고 이상하게 여겨 툇마
루로 나왔다. 생전 처음 보는 꼬마가 대문 옆 툇마루 위 멍석을 쌓아 둔
사이에 기대어 잠든 것을 발견하였다. 깜짝 놀란 노인은 안채로 달려가
매형을 불렀다.

막 첫날밤을 치르기 위하여 불을 끄려는 참이었다. 연지곤지를 지우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큰 누이는 밖에서 웅성대는 소리를 듣고 뭔가 느낌이
이상해 사랑채 툇마루로 나왔다. 거의 동사(凍死) 상태에 있던 막내
남동생을 발견한 누이는 나를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누이는 나를 신방으로 옮기고 의식이 불분명한 나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
도록 했지만 나는 금방 깨어나지 못했다. 큰 누이는 통곡을 하며 뜨거운
물수건으로 밤새도록 찜질을 하며 밤을 새워야 했다. 일생에 단 한번인
첫 날밤을 낭군이 아닌 어린 남동생과 치러야 했다. 동녘이 훤히 밝을 무렵
달려온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신이 돌아온 막내아들을 보자 가슴을 쓸어
내리며 울먹였다.

황당한 일을 당한 큰 매형은 아버지를 보고 송구해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이후로 난 늘 큰 매형과 큰 누이에게 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그런 막내
처남을 큰 매형은 귀여워 해주었다. 여름 방학이 되면 어머니에게 떼를
쓰다 시피 하여 하거리 큰 누이 집에 놀러가곤 했다. 그럴 때 마다 누이는
나를 친자식처럼 귀여워 해주며, 맛있는 것을 해주었다. 누이가 사는 집
뒷들에는 봄만 되면 탐스런 백목련이 함빡 피었는데 누이는 그 목련을
무척 좋아하였다.

40년이 지난 지금 누이 몸에서 태어난 조카들이 나와 같이 늙어가지만
누이에 대한 애잔한 생각은 갈수록 더해만 가고, 목련이 필 때면 큰 누이
생각에 가슴이 저려 온다. 큰 누이가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도 목련
꽃이 막 고개를 내밀 무렵 이었다. 올 봄에도 목련이 필 때면 저승 문턱
까지 다녀 온 소년은 목련꽃이 곱게 피어 있을 큰누이 무덤을 찾아 자주
찾지 못한 죄를 고하려 한다.
이진주 [비회원]
가슴에 묻고 영원하소서,,,,
삭제 |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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