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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신 : 비 오는 날의 상념
조회수 | 2,397
작성일 | 05.07.31
[새벽 빗소리에 잠을 깼다. 장마철이라서 꾸준히 비가 오지만 유난히 사납게 내리는 비는 새벽의 깊은 잠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 다시 잠자리에 누워있었으나 출근길이 걱정되어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얼마 후 비가 조금 가늘어졌고, 이 틈에 대충 정리를 하고 출근길에 나섰다. 버스에 타자마자 하늘이 컴컴해지고 이내 장대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차창을 통해 보이는 길가의 풍경은 온통 물바다였다. 길을 오가는 사람도, 정류장에 있는 사람도 모두 폭우 때문에 쩔쩔매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비는 더욱 세차게 내렸고, 버스가 물 고인 곳을 지나칠 때면 벼락을 몰아치듯 물을 사방으로 퍼트렸다. 그 모습은 마치 물로 만든 벽과 같았다. 나는 이미 버스에 타서 좋은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여유 있게 창밖의 당황스런 풍경과 물보라를 감상하면서 지난날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대전에 있던 우리 집은 마당이 제법 넓었다. 여름이면 마루에 배를 깔고 엎드려 마당에 떨어지는 비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슬비도, 가랑비도, 소나기도, 장대비도, 오늘 같은 폭우도 다 재미가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지렁이는 마당을 기어 다니고, 철없는 나는 그 비를 맞는 것이 싫지 않아 마당에 한참동안 서 있곤 하였다. 옷이 흠뻑 젖어 엄마한테 꾸중을 들어도 그 또한 재미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비 오는 날 마루에서 군것질하며 만화를 읽고, 중학교 때는 밀린 공부를 했고, 고등학생이었던 때는 음악을 들었다. 그 시절 비가 오는 날이면 마음이 착 가라앉아 혼자 사색하기에 딱 좋았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비 오는 날은 꼬마 철학자가 되는 특별한 날들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서는 그 재미가 반감되었다. 아니 서울 누하동 누님 댁에서 회기동까지의 꽤 먼 거리를 통학하던 시절 비는 최악이었다. 비만 오면 아무리 조심해도 옷이 흠뻑 젖었고 오가는 길이 그렇게 불편할 수 없었다. 고향 대전집의 마당을 생각하면 처량하다 못해 슬프기까지 했다. 그래서 여름방학이 오길 학수고대하였다. 여름방학이 되면 어린 시절의 그 느낌을 생각하며 마당 넓은 집의 마루에 엎드려 빗소리와 함께 두꺼운 법서를 읽었다. 보다가 졸리면 그 책을 베고 자곤 하였다. 혹시라도 그 책에 씌어진 글들이 머릿속에 자동입력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로 일부러 베개 대신 법서를 베고 잔 것이다. 그 때 빗소리는 낮잠을 재촉하는 포근하고 명랑한 모차르트의 기악곡과 다름없었다.

직장인이 된 어느 해 여름, 휴가를 얻어 교회의 수련회를 좇아 영월의 깊은 산속 폐교에 간 적이 있다. 그곳은 아이들이 도시로 떠나 학교 기능을 상실하자 약간의 개조를 하여 수련회 장소로 임대하는 시설이었다. 잡초가 드문드문 있지만 넓은 운동장이 있고, 삐거덕거리는 판자바닥이지만 커다란 객실을 갖춘 낡은 시설의 소박한 휴양지인 셈이다.

여름의 태양이 폐교의 넓은 마당에 작열하던 정오쯤 나는 숲그늘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햇볕이 내리쬐고 있는데도 비가 세차게 내렸다. 나는 그늘에서 나와 초등학생 시절처럼 비를 맞았다. 맑은 공기와 함께 내리는 소낙비는 너무나 깨끗하여 참으로 좋았다. 한 10분 쯤 후 비가 그치고 나자, 그곳 교실에서 낮잠을 즐기고 나온 아내가 옷이 흠뻑 젖은 나를 보고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며 놀랬다. 아내는 나더러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지만 나는 젖은 옷을 입은 채로 있다가 오후 늦게야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이틀 후 집으로 돌아 왔는데 그 날 비를 흠뻑 맞고 젖은 옷을 너무 오래 입고 있었던 탓에 문제가 생겼다. 엉덩이가 짓무른 것이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작지만 절제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여 하는 수 없이 수술을 받았고, 휴가가 끝나고 이틀을 더 쉴 수밖에 없었다. 출근해서는 다른 사람보다 이틀을 더 쉰 죄로 상사와 부하 직원들에게 크게 무안을 당하고, 벌칙으로 아이스크림 값을 거금 출연함으로써 여름휴가를 마무리했다. 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의 추억을 재현하려는 노력은 그렇게 미련하게 끝났다.

[8시 30분, 버스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사직동 육교에 도착했다. 비도 다행히 가늘어졌다. 우산을 받고 회사로 가는 골목길을 걸어가며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이런 작정을 해봤다.  ‘오늘 밤에 비가 오면 거실에서 배를 깔고 군것질 준비하고, 책 한 권 펼쳐 놓고, 음악을 들어야지.’  그런데 세속에 찌든 이 마음으로 아파트 거실에서 어린 시절의 그 느낌을 재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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