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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신 : 이불과 요의 잔영
조회수 | 2,588
작성일 | 05.07.31
‘겨울’을 생각하면 이불과 요가 단정하게 놓인 따뜻한 온돌방이 떠오른다. 허리를 따끈한 온돌방에 지지면 더 이상 큰 즐거움을 찾기 어렵다. 특히 요 밑에 몸을 넣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무리 추운 겨울일지라도 그렇게 마련된 방안에 들어가 입김 호호 불며 손을 넣으면 추위는 멀찌감치 달아나고 스르르 눈이 감기려 한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 그야말로 낙원이 따로 없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도시 가정은 어느새 온돌 난방보다 보일러 난방이 주가 되며, 이불과 요보다는 매트리스와 화사한 침구가 주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온돌방에 이불․요를 선호함은 그 자체의 미덕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우리 집은 아파트로 옮긴 이후에도 비록 온돌은 아니지만 계속 이불과 요를 사용하였다. 펴고 개고 하는 귀찮음이 있었지만 그래도 따스함과 아늑함이 있어 좋았는데, 방이 좁아 하는 수 없이 침실로만 사용하기로 하고 킹사이즈의 침대를 들였다. 현재 우리 부부의 침실에는 침대 외에 아무것도 놓을 수 없는 방이 되었다.

우리 부부가 작은 방에서 생활하게 된 것은, 두 아들 녀석이 성장하게 됨에 따라 걔들의 책상, 책장, 이불장 등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 안방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 부부는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에서 지내고, 작은 방에 침대만 놓은 채 그곳에서 잠을 자게 된 것이다.

그런데 방바닥에서 이불과 요를 준비하여 자던 습관이 몸에 밴 우리 부부는 침대의 불편함으로 한동안 고생을 하였다. 자고 일어나면 느낄 수 있었던 쾌적함은 사라지고 찌뿌듯하고 개운치 않은 것이 잔뇨감인지 잔변감이랄까 하는 느낌처럼 전혀 깔밋하지를 않았다. 다만 침구를 정리하기 편한 것이 유일한 장점이다.

어릴 적 어머니가 새로이 마련해준 요에 몸을 누이고 이불을 덮으면 참으로 기분이 좋고 넉넉함을 느낄 수 있었다. 겨울에는 머리맡의 자리끼가 꽁꽁 얼 정도로 외풍이 심해도 두툼하며 묵직한 솜이불로 따스한 밤을 지낼 수 있었고, 여름에는 폭염에 지친 몸을 깨끗이 씻고 깔깔한 삼베 요에 누우면 시원하면서도 날카로운(?) 느낌으로 개운히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래도 역시 이불과 요는 칼바람 쌩쌩 부는 겨울밤과 어울린다. 그 겨울밤에 늦은 간식을 먹고 게으른 잠을 청할 때 가장 잘 조화되는 것이 이불과 요이다. 이불과 요에 금박과 매끄러운 비단으로 자수된 무늬를 매만지며 잠을 청하면 잠도 잘 온다. 간혹 늦게 귀가하는 식구가 있으면 선잠을 깨지만 금방 잠을 잘 수 있는 것도 이불의 묘미이다. 장난기 많은 형의 차디찬 손이 내 몸을 만져서 잠을 깨워도 싫지 않은 것이, 추운 겨울의 외기에 얼어붙은 손을 금세 녹여버리는 이불이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불과 요는 게으른 나에게 최고의 선(善)을 베푸는 좋은 벗이었다.

그런데 이 좋은 이불도 때로는 귀찮기 그지없는 존재가 된다. 잠버릇 험한 형제가 있어 함께 잠을 자면 내 이불을 빼앗아가기도 하고, 요 밑으로 몸을 밀어 넣어 온통 이부자리를 구겨버릴 때 그러하다. 그런 일이 생기면 안락한 잠은 싹 달아나고 형제를 밀치고 자리 정리를 해야 하는 느닷없는 전쟁(?)을 벌여야 한다. 동생이면 엉덩이를 몇 번 후려치고 그 녀석의 잠도 깨워 보상을 받을 수가 있지만 형에게는 그렇게도 못한다. 그저 혼자 씩씩거리며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또 하나 귀찮은 것이 있다. 물론 이불과 요로 인한 불편과는 관계가 밀접하지 않지만 어릴 때는 아주 깊은 함수관계(?)가 성립된다. 이불과 요의 비교할 수 없는 따스함 때문에 배변욕구를 참고 참다 잠이 들면 꿈속에서 소변을 보게 된다. 꿈속에서도 느낄 수 있는 그 따스함, 배변의 시원함… 다음날 아침 쏟아질 어머니의 꾸중을 왜 생각 못했는지 어리석기도 하지만 이불 속에서 이루어졌던 재미있던 일들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지금은 뵐 수 없는 어머니의 그 이불 만지는 솜씨가 참으로 그립다. 어머니의 따사로운 정이 그리워 아내가 마련해 온 혼수 이불을 바닥에 깔고 거기에서 잠을 자보기도 하지만 어쩐지 서툴고 양에 안 차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불 만지던 어머니의 주름진 손이 그리워 눈물을 훔치다가 아이들에게 들키기도 하지만 그리움은 더욱 커지기만 한다.

뜨거운 여름, 올해는 십년만의 더위란다. 그래도 이불의 추억이 그리워 아내의 솜이불을 꺼내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고 차라리 죽부인 끼고 시원한 삼베 이불을 그리며 자련다. 선풍기 타이머 맞추고 누워 있으니 어디선가 이름 모를 벌레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리 잠을 청해도 열대야의 끈적거림 때문에 잠을 설치고 창밖의 별빛만 하염없이 바라본다. 이 여름밤에 난데없이 이불과 요가 잔영(殘影)으로 보이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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