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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웅 | 신부님, 나 어서 죽게 해줘요!
조회수 | 3,050
작성일 | 06.07.18
봉성체를 다니노라면 불쌍한 노인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마을이 노안(老安)이라서인지 아흔이 넘으신 분, 아흔이 가까우신 분들이 수두룩하니, 진정 ‘가실 날’을 은총으로 아시는지 어서 죽기만을 고집하신다.

“그래도 살아 계신 것이 은총입니다.”

듣지도 못하시는 노인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소리치지만 할머니는 그저 “신부님, 나 어서 죽게 해줘요”라는 말씀만을 거듭하신다.

“하느님이 불러야 가시지 우리 맘대로 못 가셔요!”

공연히 또 소리를 질러 보지만 할머니를 달래는 신부의 마음도 답답하기만 하다.

“영성체 하게 ‘하늘에 계신’ 해봐요!”

“안 할려!”

“왜 안해요?”

“신부님이 자꾸 와서 영성체 해주니까 사람들이 날 보고 안 죽는다고 해!”

“영성체 안 하시면 배고파서 천당에도 못 가셔요!”

이렇게 저렇게 해서 간신히 빠져 나오고 나면 다른 집의 할머니가 또 같은모습으로 나를 기다리신다.

“신부님, 나 어서 죽는 성사 좀 봐줘요!”

“그런 성사가 어디 있어요?”

“신부님이 성사 잘 주면 일찍 간다고 합디다. 난 언제 갈께라우? 난 언제 갈께라우?”

아흔네 살의 할머니는 ‘죽는 성사’ 달라는 말씀만을 노래하신다.

“정말 돌아가시고 싶으면 약이라도 드릴까요?”

누군가가 옆에서 농담으로 물으면 그 소리는 또 못 들은 체하시며 딴 말씀만 하신다.

아흔이 되었어도 건강하신 분들도 많다. 문밖 출입도 꽤 하시며 동네 소식은 앉아서도 다 알고 계신다. 그런 분들은 또 음식을 잘드시기 때문에 없는 것이 고통스러울 때가 많다.

“진지는 잘 잡수셔요?”

“응, 그런데 못 먹는 것이 둘 있어!”

“무엇을 못 자셔요?”

“없어서 못 먹고, 안줘서 못 먹어!”

“..........!”

딱하고 불쌍한 마음에 그저 웃기만 하노라면 할머니는 또 “이젠 먹다 먹을 것이 없어서 귀까지 먹었어!” 하시면서 잘 안 들린다는 귀를 붙잡고 재롱(?)을 떠신다.

“신부님의 어머니는 올해 몇이셔?”

“예순셋이요.”

“아직도 한창이구먼.”

우리 본당 노인들 한테 60대, 70대는 노인 축에 끼지도 못한다.

“일흔아홉까지는 괜찮해라우!”

한 살 차이 가지고 큰소리치신다. 노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은총이다. 그러나 삶 모두를 은총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더 큰 은총이 필요하다. 가난과 질병, 고통과 눈물, 이 모든 것들이 은혜의 십자가인 줄 알지마는 그 십자가의 삶을 산다는 것은 죽고 싶을 정도로 고달플 때가 있는 것이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도 기억해야겠지만 아직 세상연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분들에게도 존경과 사랑의 도움이 있어야 하겠다.

“나 어서 죽게 해줘요!”

죽고자 하는 노인 마음에는 살고자 하는 염원이 더 큰 것이다. (R)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 광주대교구 강길웅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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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자 영성체 (病者領聖體) | 봉성체에서 병자 영성체 (病者領聖體)롤 용어가 바뀌다.

▶ 설명

이는 죽을 위험에 처한 신자의 영성체를 말한다. 본래는 라틴어로(Viaticum) ‘여행을 위한 준비(돈)’ 혹은 ‘여행을 위한 양식(糧食)’이라는 뜻을 지닌다. 여기서는 ‘죽음은 후세로의 여행’이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결국 병자 성체는 이 세상을 하직할 때, 그리스도의 ‘몸과 피’(路資)로써 힘을 얻고, 부활의 보증으로 안전해지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병자 영성체를 노자 성체(路資聖體)라고도 한다.

어떤 사유에서든지 죽음에 처한 신자들은 영성체를 할 의무가 있다. 같은 날 이미 성체를 영하였을지라도 생명이 위기에 처해 있으므로, 다시 영성체하는 것이 유익하다. 병자 성사는 같은 위험이 계속되는 동안 여러 번 받을 수 없지만, 영성체는 날이 바뀌면 또다시 할 수 있고, 공복재도 필요하지 않다.

특히 병자 영성체는 병자에게뿐만 아니라, 공동체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자들에게 사제나 부제가 성체를 모셔 가 영해 준다. 예전에는 이 행위를 봉성체(奉聖體)라 하였으나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교우들도 영성체를 통해 자신이 주님의 제사와 교회 공동체에 결합되어 있으며, 형제적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 가톨릭 용어사전에서
  |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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