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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의 아프리카 에세이] 가나 케이프코스트 <1>
조회수 | 2,502
작성일 | 07.03.23
▶ 사진설명 : 같은 태양이라도 시원의 땅 아프리카에 쏟아지는 햇빛은 그 빛이 다르다. 원색의 빛들이 꿈틀대는 가나 케이프코스트의 포구.

▶ 세계 최고 친절(?)하다는 나라… 거기서 난 白人이었다.

박정석은 ‘용감한 여행가’다.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노스웨스턴대학과 플로리다대학에서 영화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고등학교를 마친 이후 가나 말라위 짐바브웨 인도 콜롬비아 등 50여 개국을 돌아다닌 여행광. 이제는 14개국 언어로 “맥주 한 병 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껏 가장 좋았던 나라로 콜롬비아와 미얀마를 꼽는다. 전자는 남자들이 친절하고, 후자는 여자들마저 친절하기 때문이란다. 2004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후 소설을 쓰고 있다.

“오브루니!”

어떤 목적지에 닿기 전 좋은 평판을 너무 듣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몇 년 전 우연히 한 외국 여행 사이트에서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를 뽑는 설문을 본 적이 있다. 1위는 뜻밖에도 아프리카의 가나(Ghana)였고 그 이유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가나로 향했다. 나날이 올라간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진짜 근사한 것이 필요했는데, 친절한 국민성으로 소문난 그 머나먼 나라에 도착한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정치적 올바름과는 거리가 먼 인종차별적 호칭이었다. “오브루니(white man)”. 어디를 가나 현지인들은 나를 이렇게 불렀다.

“어이, 오브루니. 거기 내 자리 좀 대신 맡아 줘!”

일찌감치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은 나에게 열린 창문 틈으로 시장바구니를 던지며 어느 꼬부랑 할머니가 이렇게 소리쳤다.

“오브루니!”


▶ 사진설명 : 가나는 식민의 시대 노예 수출이란 아픈 기억을 품고 있는 곳이다. 케이프코스트에서 만난 가나의 사람들.

터덜거리며 시골길을 걷는 나를 향해 우거진 야자수 틈으로 검은 머리를 내민 조그만 아이들이 애타게 속삭였다. “과자 사 먹게 1,000 시디(cediㆍ 가나의 화폐단위)만 줘요. 오브루니, 제발 여길 좀 봐요.”

케이프코스트(Cape Coast)에 도착한 것은 ‘오브루니’ 라는 호칭을 대략 천 번 정도 들었을 무렵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이 오래된 도시를 두 시간 정도 천천히 산책하는 동안 나는 고함 섞인 욕설을 너덧 번 들었고 한 번은 얻어맞을 뻔 했다. 그 이유는 내가 들고 있던 커다란 카메라 때문이었는데, 가이드북에는 현지에서 지켜야 할 중요한 에티켓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진을 찍기 전 반드시 허락을 얻을 것. 거절 당한다고 해도 너무 슬퍼하지 말 것. 아무리 가슴 아픈 상황이라 하더라도.’

가이드북에서 밝히고 있지 않은 사실은 사진을 찍기 위해 허락을 구하려 했을 때 현지인들의 반응은 언제나 똑같다는 것이다. ‘No’ ‘No’ ‘No’.

어디나 이국적인 풍광들로 가득한 도시였다. 포르투갈과 영국 식민시대에 지어진 이래 지금껏 수백 년의 세월에 걸쳐 서서히 썩어가는 낡은 건물들, 그 사이로 나를 주시하는 흑인들이 보였다.

“오브루니, 사진을 찍고 싶어? 그러면 돈부터 내시지.” 그물을 고치고 있던 어부 서너 명이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는 나를 향해 큰 소리로 고함쳤다. 돌을 주워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드넓은 아프리카 대륙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한 적대감이었다. 당황함이 분노로 변하는 것은 순간이었다.

“난 여태 사진을 찍기 위해 누군가에게 돈을 줘본 적이 한 번도 없어. 차라리 사진을 아예 안 찍고 말지.”

지나친 결의에 찬 말은 듣는 사람은 물론 말하는 당사자의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은 것 같다. 흐트러진 정신건강은 육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가 있다. 성난 얼굴로 걸음을 재촉하던 나는 케이프코스트 성에서 항구로 내려가는 비탈길에서 돌부리에 다리가 걸려 넘어져 질척거리는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하얀 사람, 돌에 걸려 넘어지다.’

그것은 이 오래된 도시에서 하루하루 단조로운 삶을 살아가는 현지인들에게 좋은 구경거리였다. 흥미거리에 목이 마른 어린애들까지 당장 구름처럼 몰려들어 나를 빙 둘러싸더니 제각기 큰 소리로 웃고 뜻을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댔다.

절뚝거리며 항구를 떠나 숙소인 사보이호텔로 돌아왔다. 사보이(Savoy)라는 고상한 어감의 고유명사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너절한 여관의 주름투성이 매니저 영감은 내가 사진을 찍으며 겪은 이야기를 듣자 오히려 벌컥 화를 냈다.

“말도 안 돼! 이 곳 케이프코스트는 가나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야!”

“그야 영감님은 여기서 태어나서 지금껏 70년이 넘도록 사셨으니까 그렇겠지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초상권 문제로 돌까지 던지다니, 좀 심하군요.”

“그래서, 지금 돌에 맞아서 다리가 그렇게 됐나?”

“그건 아니지만, 돌에 맞을 뻔 했으니 정신이 혼미해져서 걸음을 헛디딘 겁니다.”

숙소의 유일한 직원인 코피(Kofi)가 약통을 가져와서 다리의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라 주었다. 여우처럼 홀쭉한 얼굴에 호리호리한 몸, 영리하게 반짝이는 눈을 가진 젊은 남자였다. 울창한 풀숲 위로 고개를 빼고 이리저리 재빨리 주변을 살펴보는 파란 뱀처럼, 그는 쉴 새 없이 내 표정을 살피고, 요모조모 옷차림을 훑어보고, 뚫어지게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다가 어느 순간 고개를 돌려 버렸다. 속마음을 들키는 것이 부끄러운 사람처럼.

그는 나더러 무슨 요일에 태어났느냐고 물었다.

“태어난 요일? 그야 나도 모르지. 아마 우리 어머니에게 물어봐도 기억하지 못하실걸. 한국에서는 태어난 날짜가 중요하지 요일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내 대답에 청년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금요일에 태어났다고 했다.

“그래서 내 이름이 코피(Kofi)에요. 금요일에 태어난 남자니까.”

아이가 태어나는 요일별로 이름을 붙이는 것은 가나의 인구 절반 정도가 속한 아칸(Akan)부족의 오랜 관습이었다. 유엔의 전 사무총장 코피 아난도 금요일에 태어난 것이다.

“무슨 요일에 태어났는지 모른다면 일곱 요일 중에서 마음대로 아무거나 골라 봐요.”

그래서 나는 수요일을 댔다. 예전부터 수요일이 좋았다. 노래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때문일까. 코피의 말에 따르면 수요일에 태어난 여자는 아쿠아(Akua)라 부른다고 했다.

“옆 동네 엘미나(Elmina)는 아마 케이프코스트보다는 좀 나을 거에요. 거기 사람들은 여기처럼 사납지 않으니까. 아마 사진 찍는 것에 별 문제 없을 거에요.”

그 말이 맞기를 바랬다. 다음 날 오후, 케이프코스트 인근에 있는 또 다른 옛 식민도시, 엘미나로 향했다

▶ 한국일보 2007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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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나(Ghana)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국가로 정치적 상황이 불안한 인접국들과는 달리 치안이 비교적 안전한 나라로 평판이 나 있다. 황금이 많이 나서 15세기 황금의 해안(골드코스트)으로 유럽에 알려졌다.

포르투갈인들은 15세기 후반 노예무역의 본거지를 엘미나에 세웠으나 17세기에 와서는 포르투갈인이 독점하고 있던 노예시장이 네덜란드ㆍ영국ㆍ덴마크ㆍ스웨덴·등 다른 교역상들에게 넘어갔다.

1874년 골드코스트는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으며, 1901년 아샨티 왕국과 현재의 가나 북부 부족들도 영국 보호령이 되었다. 1957년 가나라는 국명으로 독립했다. 공용어는 영어.

케이프코스트는 골드코스트의 중심이 된 항구도시로 유럽인들은 이곳에서 황금ㆍ상아ㆍ향신료 등을 교환했다. 황금 매장량이 줄어들면서 대신 노예무역이 활성화했다. 케이프코스트와 엘미나성의 지하 감옥은 노예들이 배에 실리기 전 감금됐던 장소들이다.

오늘날 가나는 이웃나라 아이보리코스트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카카오의 산지로 알려져 있다. 국내 초콜릿 브랜드 ‘가나 초콜릿’의 가나가 바로 이곳이다.

▶ 한국일보 2007년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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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의 아프리카 에세이] 가나 <2>

▶ 대포 위의 작은 새… 그건 놀이이자 밥벌이였다.


▶ 사진설명 : 엘미나 성 앞의, 이제는 화석이 된 커다란 대포 위에 아이들이 걸터앉아 있다.

합승택시를 타고 엘미나 성에 내리자마자 성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던 소년들 십 수 명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엘미나 축구클럽에 기부를 좀 해 주세요. 유니폼도 사고 공도 사게요. 여기 이 명단을 보시면 지금껏 기부한 외국인들 이름과 기부금 액수가 적혀 있어요.” 아이들은 나를 빙 둘러싸더니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끈질기게 졸라댄다. “일본인이지요? 기부 좀 하세요.” “내 친구가 되어줄래요? 기부 좀 하세요.” “이메일 주소를 알려줄래요? 기부 좀 하세요.”

혼자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성 앞의 대포 위에 올라타고 있는 꼬마들을 발견했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들 두 명. 서로 장난을 치며 갈색 고철 위에서 놀고 있었다. 거리는 약 30미터 정도.

완벽한 피사체였다. 사바나에서 아름답고 겁 많은 초식동물을 발견했을 때처럼, 나는 카메라 가방으로 손을 뻗어 소리없이 망원렌즈를 꺼냈다.

‘잠깐만 그대로 있어 봐.’

그 애들은 날개를 접은 채 잠시 쉬고 있는 새들 같았다. 곧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렌즈를 바꿔 끼는 내 손은 초조했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부딪혀 조개껍질처럼 희게 빛이 바랜 성벽,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엘미나 성을 배경으로 원색의 옷을 걸친 두 명의 어린 생명들.

망원렌즈의 초점이 맞은 순간. 삐, 카메라가 소리를 냈고 나는 얼른 셔터를 누르려 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소녀들은 멀리 있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차린 것처럼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카메라 렌즈 속에서 얼굴을 가린 손가락 틈으로, 그 애들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그 애들은 내가 무엇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내 눈에 띄리라는 것을 알고 바로 그 때문에 대포 위에 기어 올라갔던 것이다. 쉽게 얼굴을 보이면 안된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얼굴을 보여 봐라.’

영리한 아이들은 여전히 얼굴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깔깔 웃고, 대포에서 매달리고, 목청껏 노래를 불러댔지만 끈질기게 얼굴을 한 손으로 가린 채였다.

‘얼굴을 보여 달란 말이야.’

한참을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눈치를 살피던 두 소녀는 어느 순간 동시에 손을 내렸다. 카메라 렌즈를 향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는데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내 귀에 방울소리처럼 맑은 환청이 울려 퍼질 정도로 환한 미소였다.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속해서 셔터를 누르고, 초점과 노출을 확인하고, 다시 셔터를 눌렀다. 덤불 사이로 보이는 연약한 짐승의 목덜미를 곧장 겨냥한 사수처럼, 모든 신경이 눈동자와 손가락 끝에 집중되었다. 몇 장만 더.


▶ 사진설명 : 엘미나는 노예 무역이란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땅이다. 원색의 깃발, 원색의 빨래가 펄럭이는 엘미나 포구(왼쪽)와 그들의 검은 피부를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눈부신 흰 성벽(가운데). 유럽인들의 노예 무역 거점이었던 엘미나 성(왼쪽).

이윽고 대포에서 소녀 한 명이 내려왔다. 푸른 잔디를 밟고 나를 향해 비칠거리며 다가왔다.

“이제.......돈을 주세요.”

소녀는 수줍은 듯 웃었다. 내가 자신들의 사진을 찍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돈을 달라고? 내가 너에게? 왜?”

소녀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손으로 자기 입을 가리키며 맥없이 중얼거린다.

“......먹을 것 사려고요.”

그 애는 아직 어렸지만 벌써 부끄러움에 대해 알고 있었다. 내 표정을 보더니 곧 포기하고 뒤돌아섰다. 다시 깡총거리며 멀리 대포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에게로 되돌아갔다. 돈을 받지 못할 것을 알게 된 애들은 더 이상 얼굴을 가리는 헛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제 인색한 이방인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었다. 더러운 수건을 파란 하늘에 대고 깃발처럼 흔들며 노래하고 있었다. 운이 좋은 날이면 이렇게 대포 위에서 잠깐 기분을 내는 것만으로도 얼마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애들이었다. 운이 나쁜 날이면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그러나 일한 자는 먹어야 한다. 나는 주머니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 멀리 있는 소녀들을 향해 흔들었다.

소녀는 내 신호를 이내 알아들었다. 조그만 얼굴이 기쁨에 넘쳤다. 원하기만 한다면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도 있을 것처럼.

낡아빠진 옷을 걸친 맨발의 여자애는 푸른 풀밭을 박차고 하늘을 날 듯 이쪽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자칫 앞으로 쓰러질 듯 위태롭게. 나는 반사적으로 다시 카메라를 들어올렸다. 소녀의 환한 얼굴, 가냘픈 팔다리, 좁은 가슴을 정조준했다.

‘너희들은 새. 나는 포수.’

엘미나에서 케이프코스트로 돌아오는 합승택시 속에는 케이프코스트 여인 두 명이 타고 있었다. 어시장에서 생선을 사들였는지 비린내가 진동했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여자들은 택시기사를 통해 내 이름을 물어왔다.

“오브루니.” 내가 대답하자 뒷좌석의 여자들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 말고, 당신 진짜 이름이 뭔지 궁금하대요.”

“아쿠아(Akua).”

여자들은 더 큰 소리로 웃어 젖혔다. 어쩌면 나는 정말 수요일에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수요일이 좋았다. 좋은 날이었다. 고통스러운 월요일과 화요일은 이미 지나갔고 이제 하루가 갈수록 점점 즐거워질 일밖에 남지 않은 일주일의 중간이었다. 오늘이 바로 수요일이다. 내 생일날.

호텔로 돌아왔을 때는 날이 완전히 어두워진 후였다. 다친 다리의 상처가 아직도 쑤셨고 어깨에 멘 카메라는 쇳덩어리처럼 무거웠다. 엘미나의 소녀들은 디지털 파일에 갇힌 채 죽지도 썩지도 못하고 박제된 동물처럼 어린 모습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방으로 통하는 길고 좁은 복도는 어두컴컴했고 누가 후추를 넣고 요리를 하는지 자극적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쇠로 된 커다란 열쇠를 방문에 꽂고 이리저리 돌렸지만 손잡이는 너무 낡아 잘 열리지 않았다.

▶ 한국일보 2007년 0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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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미나 성 (Elmina Castle) : 흑인들 한 서린 노예무역 거점

1482년 포르투갈 상인들이 세운 엘미나 성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첫 번째로 건설된 유럽인들의 노예무역 거점이다. 성의 상층부에는 서아프리카의 유럽식 성들이 보통 그러하듯 유럽인들을 위한 호화로운 객실이 위치하고 지하에는 잡혀온 노예들이 감금되는 감옥이 있었다.

한 방에 많은 경우에는 200명까지 수용되어 제대로 눕지도 못할 정도로 좁았으며 위생과 영양상태가 매우 열악하여 말라리아와 황열병이 자주 발생, 노예들 중 상당수가 엘미나 성의 '돌아오지 못하는 문(The Door of No Return)'을 지나 아메리카와 카리브 등지로 팔려가기도 전에 숨을 거두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엘미나 전략 2015'의 일환으로 보수 중이다. 지하 감옥 입구에 걸린 현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죽은 자는 편히 잠들고 돌아온 자는 뿌리를 찾게 하소서. 다시는 이런 불행이 없기를, 살아있는 우리는 맹세합니다.'

▶ 한국일보 2007년 03월 22일
  |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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