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국내여행

국외여행

수   필

편   지

책동네

음   악

생   활

문화정보

클릭 오늘 !

포토갤러리

행사일정

♣ 현재위치 : 홈 > 문화광장 > 수필(隨筆)

수필(隨筆) 코너 ( 여러분들의 수필이나 유명한 분들의 좋은 글들을 회원이면 누구나 올릴 수 있습니다... )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61 84.8%
피천득 : 인연
조회수 | 2,281
작성일 | 07.05.26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다. 힘드는 출강을 하게 된 것은, 주 수녀님과 김 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수십 년 전에 내가 열 일곱 되던 봄, 나는 처음 동경에 간 일이 있다. 어떤 분의 소개로 사회 교육가 미우라 선생 댁에 유숙을 하게 되었다. 시바쿠 시로가네에 있는 그 집에는 주인 내외와 어린 딸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하녀도 서생도 없었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하는 아사코는 처음부터 나를 오빠같이 따랐다.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코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하였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일년초 꽃도 많았다. 내가 간 이튿날 이침, 아사코는 '스위트피'를 따다가 화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주었다. '스위트피'는 아사코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성심여학원 소학교 일 학년인 아사코는 어느 토요일 오후 나와 같이 저희 학교까지 산보를 갔었다. 유치원부터 학부까지 있는 카톨릭 교육기관으로 유명한 이 여학원은 시내에 있으면서 큰 목장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사코는 자기 신발장을 열고 교실에서 신는 하얀 운동화를 보여주었다.

내가 동경을 떠나던 날 아침, 아사코는 내 목을 안고 내 뺨에 입을 맞추고, 제가 쓰던 작은 손수건과 제가 끼던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선생 부인은 웃으면서 " 한 십 년 지나면 좋은 상대가 될 거예요." 하였다. 나의 얼굴이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사코에게 안데르센의 동화책을 주었다.

그 후 십 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국민학교 일 학년 같은 예쁜 여자아이를 보면 아사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두 번째 동경에 갔던 것도 사월이었다. 동경역 가까운 데 여관을 정하고 즉시 미우라 댁을 찾아갔다. 아사코는 어느덧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영양이 되어 있었다. 그 집 마당에 피어 있는 목련꽃과도 같이. 그때 그는 성심여학원 영문과 삼학년이었다. 나는 좀 서먹서먹했으나, 아사코는 나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끔 내 말을 해서 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그 날도 토요일이었다. 저녁 먹기 전에 같이 산보를 나갔다. 그리고 계획하지 않은 발걸음은 성심 여학원 쪽으로 옮겨져 갔다. 캠퍼스를 두루 거닐다가 돌아올 무렵 나는 아사코 신발장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하고 나를 쳐다보다가, 교실에는 구두를 벗지 않고 그냥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뛰어가서 그 날 잊어버리고 교실에 두고 온 우산을 가지고 왔다.

지금도 나는 여자 우산을 볼 때면 연두색이 고왔던 그 우산을 연상한다. <셀부르의 우산>이라는 영화를 내가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사코의 우산 때문인가 한다. 아사코와 나는 밤늦게까지 문학 이야기를 하다가 가벼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새로 출판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

그 후 또 십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고 또 한국 전쟁이 있었다. 나는 어쩌다 아사코 생각을 하곤 했다. 결혼은 하였을 것이요, 전쟁 통에 어찌 되지나 않았나, 남편이 전사하지나 않았나 하고 별별 생각을 다하였다.

1954년 처음 미국 가던 길에 나는 동경에 들러 미우라 댁을 찾아갔다. 뜻밖에 그 동네가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선생 내외분은 흥분된 얼굴로 나를 맞이 하였다. 그리고 한국이 독립이 돼서 무엇보다도 잘됐다고 치하를 하였다. 아사코는 전쟁이 끝난 후 맥아더사령부에서 번역 일을 하고 있다가, 거기서 만난 일본인 이세와 결혼을 하고 따로 나서 산다는 것이었다. 아사코가 전쟁 미망인이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2세와 결혼하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만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사코의 집으로 안내해주셨다.

뾰죽 지붕에 뾰죽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이십여 년 전 내가 아사코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십 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이 되었더라면 아사코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뾰죽 지붕에 뾰죽 창문들이 있는 집이 아니라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세월>이란 소설 이야기를 한지 십 년이 더 지났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싱싱하여야 할 젊은 나이다. 남편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이, 일본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그리고 진주군 장교라는 것을 뽐내는 것 같은 사나이였다. 아사코와 나는 절을 몇 번씩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461 84.8%
'인연'의 수필가 피천득 별세


수필 '인연'으로 잘 알려진 국내 최고령 문인 피천득 서울대 명예교수가 25일 오후 11시40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평소 폐렴을 앓아 오던 피 교수는 이달 10일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면서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해 보름 넘게 치료를 받아왔다.

지인들에 따르면 피 교수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집 주변에서 산책을 할 정도로 건강했지만 작년 초 건강이 악화되면서 거의 집안에서만 지내왔다.

20여 년 전 "더 이상 산문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부인(90)과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생활해온 고인은 아침 일찍 일어나 책을 읽고 고전 음악을 듣는 등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해왔다.

병원의 한 관계자는 "워낙 고령이다 보니 감기, 폐렴 등의 증상으로 1-2개월에 한번씩은 아들이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아산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아왔다"고 말했다.

1910년 5월29일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중국 상하이 공보국 중학을 거쳐 1937년 호강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일제 강점 하의 조국으로 돌아와 경성중앙산업학원 교사로 근무했다.

광복 직후인 1945년 경성제국대학 예과 교수를 거쳐 1946년부터 30여 년 간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후배 영문학자들을 키워내기도 했다.

그는 등단 초기 잡지 '동광'에 시 '소곡'(1932), 수필 '눈보라치는 밤의 추억'(1933) 등을 발표하며 시인이자 수필가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33-34년 발표한 '눈보라 치는 밤의 추억' '기다리는 편지' 등 생활에 얽힌 이야기를 바탕으로 풀어낸 서정성 넘치는 수필들은 독자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 피 교수가 일본 유학시절 연모의 정을 품었던 소녀 아사코와의 인연을 담담한 문체로 풀어 낸 '인연'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한국의 대표적 명수필로 꼽힌다.

수필 형식으로 쓴 수필론 '수필'도 은유법을 적절히 구사해 수필의 본질과 특질을 잘 나타낸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수필 외에도 시집으로 '생명'을 비롯해 소설 '은전 한 닢', 번역서 '내가 사랑하는 시' '소네트 시집', 평론 '노산시조집을 읽고' '춘원선생' 등을 남겼다.

인촌상(1995), 은관문화훈장(1999), 자랑스러운서울대인상(1999) 등을 수상했다.

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2007-05-26 00:01
  | 05.26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28   고독한 외길  [1]   07.06.22 2455
27   김승희 : 외등이 켜진집    07.06.08 2587
26   김형석 : 죽음    07.05.26 2412
25   안병욱 : 행복의 메타포    07.05.26 2268
24   박완서 :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07.05.26 2052
23   이규태 : 헛기침으로 백 마디 말을 하다    07.05.26 2846
22   이어령 : 폭포와 분수    07.05.26 3640
21   유안진 : 지란지교를 꿈꾸며    07.05.26 1811
  피천득 : 인연  [1]   07.05.26 2281
19   법정 : 좋은 친구    07.05.20 1891
18   산세비애리아    07.05.19 1821
17   [박정석의 아프리카 에세이] 가나 케이프코스트 <1>  [3]   07.03.23 2502
16   나의 어머니    06.11.29 2087
15   황인숙 : 구룡폭포 가는 길    06.11.08 2109
14   강길웅 | 신부님, 나 어서 죽게 해줘요!  [1]   06.07.18 3050
13   황성진 : 생명의 신비, 소중함    06.01.22 2425
12   신달자 : 참된 헹복    06.01.22 2509
11   최광신 : 잘 가, 형!  [4]   05.07.31 2876
10   최광신 : 이불과 요의 잔영    05.07.31 2588
9   최광신 : 비 오는 날의 상념    05.07.31 2397
[1][2] 3 [4]
 

 

수필(隨筆) 코너 ( 여러분들의 수필이나 유명한 분들의 좋은 글들을 회원이면 누구나 올릴 수 있습니다... )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0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