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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명 : 산나물
조회수 | 7,050
작성일 | 05.02.15
먼지가 많은 큰 길을 피해 골목으로 든다는 것이 걷다 보니 부평동(富平洞) 장거리로 들어섰다.

유달리 끈기 있게 달려드는 여기 장사꾼(아주마시)들이 으레, 또 “콩나물 좀 사 보이소 예, 아주머니요, 깨소금 좀 팔아 주이소” 하고 잡아다닐 것이 뻔한지라 나는 장사꾼들을 피해 빨리빨리 달아나듯이 걷고 있었다.

그러나 내 눈은 역시 길가에 널려 있는 물건들을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한 군데에 이르자 내 눈이 어떤 아주머니 보자기 위에 가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보자기에는 산나물이 쌓여 있었다. 순진한 시골 처녀 모양의 산나물이 콩나물이며 두부, 시금치 들 틈에서 수줍은 듯이 그러나 싱싱하게 쌓여 있는 것이었다.

얼른 엄방지고 먹음직스러운 접중화가 눈에 들어온다. 그 밖에 여러 가지 산나물들도 낯이 익다.

고향 사람을 만날 때처럼 반갑다. 원추리며 접중화는 산소의 언저리에 많이 나는 법이겠다. 봄이 되면 할미꽃이 제일 먼저 피는데 이것도 또한 웬일인지 무덤들 옆에서 많이 핀다.

바구니를 가지고 산으로 나물을 뜯으러 가던 그 시절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일이다. 예쁜이, 섭섭이, 확실이, 넷째는 모두 다 내 나물 동무들이었다.

활나물, 고사리 같은 것은 깊은 산으로 들어가야만 꺾을 수가 있다. 뱀이 무섭다고 하는 나한테 섭섭이는 부지런히 칡순을 꺾어서 내 머리에다 갈아 꽂아주며, 이것을 꽂고 다니면 뱀이 못 달려든다는 것이었다.

산나물을 캐러 가서는 산나물만을 찾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산 저 산으로 뛰어다니며 뻐꾹채를 꺾고 싱아를 캐고 심지어는 칡뿌리도 캐는 것이었다. 칡뿌리를 캐서 그 자리에서 먹는 맛이란 또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꿩이 푸드덕 날면 깜짝들 놀라곤 하는 것이었다.

내가 산나물을 뜯던 그 그리운 고향엔 언제나 가게 될 것인지? 고향을 떠난 지 30년. 나는 늘 내 기억에 남은 고향이 그립고 오늘처럼 이런 산나물을 대하는 날은 고향 냄새가 물큰 내 마음을 찔러 어쩔 수 없이 만들어 놓는다. 산나물이 이렇게 날 양이면 봄은 벌써 제법 무르익었다. 냉이니 소루쟁이니 달래는 그리고 보면 한물 꺾인 때다.

산나물을 보는 순간 나는 그것을 사고 싶어 나물을 가진 아주머니 앞으로 와락 다가서다가 그만 또 슬며시 뒤로 물러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생각을 해 보니 산나물을 맛있는 고추장에다 참기름을 쳐 무쳐야만, 그래서 거기다 밥을 비벼서 먹어야만 맛이 있는 것인데 내 집에는 고추장이 없다. 그야 아는 친구 집에서 한 보시기쯤 얻어올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고추장을 얻어서 나물을 무쳐서야 그게 무슨 맛이 나랴. 나는 역시 싱겁게 물러서는 수밖엔 없었다.

진달래도 아직 꺾어보지 못한 채 봄은 완연히 왔는데 내 마음 속 골짜구니에는 아직도 얼음이 안 녹았다. 그래서 내 심경은 여태껏 춥고 방 안에서 밖엘 나가고 싶지가 않은 상태에서 모두가 을씨년스럽다.

시골 두메 촌에서 어머니를 따라 달구지를 타고 이삿짐을 실리고 서울로 올라오던 그때부터 나는 이미 에덴동산에서 내쫓긴 것이다. 그리고 칡순을 머리에다 안 꽂고 다닌 탓인가, 뱀은 내게 달려들어 숱한 나쁜 지혜를 넣어주었다.

10여 년 전 같으면 고사포(高射砲)를 들이댔을 미운 사람을 보고도 이제는 곧잘 웃고 흔연스럽게 대해 줄 때가 있어, 내가 그 순간을 지내놓고는 아찔해지거니와 풍우난설(風雨亂雪)의 세월과 함께 내게도 꽤 때가 앉았다.

심산(深山) 속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자연의 품에서 퍼질 대로 퍼지다 자랄 대로 자란 싱싱하고 향기로운 이 산나물 같은 맛이 사람에게도 있는 법이건만 좀체 순수한 이 산나물 같은 사람을 만나기란 요즈음 세상엔 힘드는 노릇 같다. 산나물 같은 사람은 어디 없을까? 모두가 억세고 꾸부러지고 벌레가 먹고 어떤 자는 가시까지 돋혀 있다. 어디 산나물 같은 사람은 없을까?   / 1953.3.25. 부산 피난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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