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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 유경* 식보(食譜)
조회수 | 2,244
작성일 | 05.02.15
평양에 온 지 사년이 되나 자별스럽게 기억에 남는 음식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생활의 전반 규모에 그 무슨 전통의 아름다움이 있으려니 해서 몹시 눈을 살피나 종시 그런 것이 찾아지지 않습니다.

거처하는 집의 격식이나 옷맵시나 음식 범절에 도시 그윽한 맛이 적은 듯합니다. 이것은 평양 사람 자신도 인정하는 바로, 언제인가 평양의 자랑을 말하는 좌담회에 출석했을 때 들어 보아도 그들 자신으로도 이렇다 하는 음식을 못 들었습니다.

가령 서울과 비교하면, 감히 비교할 바 못 되겠지만, 진진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적고 대체로 거칠고 단하고 뻣뻣스럽습니다. 잔칫집 음식도 먹어 보고 요정에도 올라 보았으나 어디나 다 일반입니다. 요정에 올라서 평양의 진미를 구하려 함은 당초에 그른 일이어서 평양의 진미는커녕 식탁에 오르는 것은 조선 음식이 아니고 정체 모를 내외 범벅의 당치 않은 것들뿐입니다. 그리고 음식상이라기보다는 대개가 술상의 격식입니다. 술을 먹으러 갈 데지 음식을 가지가지 맛보러 갈 데는 아닙니다. 차라리 요정보다는 거리의 국수집이 그래도 평양의 음식을 자랑하고 있는 성싶습니다.

평양냉면은 유명한 것으로 치는 듯하나 서울냉면만큼 색깔이 희지 못합니다. 하기는 냉면의 맛은 반드시 색깔로 가는 것은 아니어서 관북지방에서 먹은 것은 빛은 가장 검고 칙칙했으나 서울이나 평야 그 어느 곳보다 나았습니다. 그러나 평양에 온 후로는 까딱 냉면을 끊어 버린 까닭에 평양냉면의 진미를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시작해 볼 욕심도 욱기* 도 나지 않습니다. 냉면보다는 되려 온면을 즐겨해서 이것은 꽤 맛을 들여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장국보다는 맛이 윗길이면서도 어북장국보다는 한결 떨어집니다. 잔잔하고 고소한 맛이 없고 그저 담담합니다.

이것이 평양 음식 전반의 특징입니다. 육수 그릇을 대하면 그 멀겋고 멋없는 꼴에 처음에는 구역이 납니다. 익숙해지면 차차 나아는 가나 설렁탕이 이보다 윗길일 것은 사실입니다.

친한 벗이 있어 추석이 되면 노티를 가져다 줍니다. 일종의 전병으로 수수나 쌀로 달게 지진 것입니다. 너무 단 까닭에 과식을 할 수 없는 것이 노티의 덕이라면 덕일 듯합니다. 나는 이 노티보다도 차라리 같은 벗의 집에서 먹은 만두를 훨씬 훌륭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호만두보다도 그 어떤 만두보다도 나았습니다. 평양의 자랑은 국수가 아니고 만두여야 할 것 같습니다.

동무라면 또 한 동무는 이른 봄에 여라 차례나 간장병과 떡 주발과 김치 그릇을 날라다 주었는데 이 김치의 맛이 일미여서 어느 때나 구미가 돌지 않을 때에는 번번이 생각납니다. 봄이건만 까딱 변하지 않는 김치의 맛, 시원한 그 맛은 재찬삼미(再讚三味)해도 오히려 부족합니다.

대체로 평양의 김치는 두 가지 격식이 있는 듯해서 고추 양념을 진하게 하는 것과 엷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거의 소금만으로 절여서 동치미같이 희고 깨끗하고 시원한 것, 이것이 그 일미의 김치인데 한 해 겨울 그 동무와 몇 사람의 친구와 함께 휩쓸려 늦도록 타령을 하다가 곤드레만드레 취한 김에 밤늦게 그 동무의 집으로 습격을 가서 처음 맛본 것이 바로 그 김치였던 것입니다. 다 두 칸밖에 안 되는 방에 각각 부인과 일가 아이들이 누워 있었던 까닭에 동무는 방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대문 옆 노대(露臺)에 벌벌 떠는 우리들을 앉히고 부인을 깨워 일으키더니 대접한다는 것이 찬 김치에 만 밥, 소위 짠지밥(김치와 짠지는 다를 것임을 평양에서는 일률로 짠지라고 일컫습니다)이었습니다. 겨울에 되려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더니 찬 하늘 아래에서 벌벌 떨면서 먹은 김치의 맛은 취중의 행사였다고는 해도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북쪽일수록 음식에 고추를 덜 쓰는 모양인데 이곳에서 김치를 이렇게 싱겁게 담는 격식은 관북 지방의 풍습과도 일맥 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요새 의학박사 양반이 고춧가루의 해독을 자꾸만 일러 주는 판인데 앞으로의 김치는 그 방법에 일대 개혁을 베풀어 이 평양의 식을 따면 어떨까 합니다. 나는 가정의 주부들에게 이것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습니다. 단지 의학박사가 아닌 까닭에 잠자코 있을 뿐입니다.

잔칫집에서 가져오는 약과와 과줄은 요릿집 식탁에 오르는 메추리알이나 갈매기알과 함께 멋없고 속없는 것입니다. 약과는 굳고 과줄은 검습니다. 다식이니 정과니 하는 유(類)는 찾으려야 찾을 수 없습니다. 없는 모양입니다.

중요한 음식의 하나가 야키니쿠*인데 고기를 즐기는 평양의 사람의 기질을 그대로 반영시킨 음식인 듯합니다. 요리법으로 가장 단순하고 따라서 맛도 담백합니다. 스키야키같이 연하지도 않거니와 갈비같이 고소하지도 않습니다. 소담한 까닭에 몇 근이고 간에 양을 사양하지 않는 답니다. 평양 사람은 대개 골격이 굵고 체질이 강장하고 부한 편이 많은데 행여나 야키니쿠의 덕이 아닌가 혼자 생각에 추측하고 있습니다.

다만 야키니쿠라는 이름이 초라하고 속되어서 늘 마음에 걸립니다. 적당한 명사로 고쳐서 보편화시키는 것이 이 고장 사람의 의무가 아닐까 합니다. 말이란 순수할수록 좋은 것이지 뒤섞고 범벅하고 옮겨온 것은 상스럽고 혼란한 느낌을 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어죽을 듭니다. ‘물고기죽’이란 말이나 실상은 물고기보다도 닭고기가 주장이 되는 듯합니다. 닭과 물고기로 쑨 흰죽을 고추장에 버무려 먹습니다. 여름 한철의 진미로서 아마도 천렵의 풍습의 유물로 끼쳐진 것인 모양입니다. 제철에 들어가 강놀이가 시작되면 반월도(半月島)를 중심으로 섬과 배 위에 어죽놀이의 패가 군데군데에 벌어집니다. 물속에서 첨벅거리다가 나와 피곤한 판에 먹는 죽의 맛이란 결코 소흘히 볼 것이 아닙니다.

동해안 바닷가에서 홍합죽이라는 것을 먹은 적이 있는데 그 조개로 쑨 죽과는 맛이 흡사한  데다가 양편 다 피곤한 기회를 가린 것이라 구미 적은 여름의 음식으로 이죽들은 확실히 공이 큰듯합니다. / 『여성』1939.6.


*유경-평양의 다른 이름

*욱기-참지 못하고 앞뒤 헤아림 없이 격한 마음이 불끈 일어나는 성질

*야키니쿠-불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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