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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오 : 어머니의 기억
조회수 | 2,083
작성일 | 05.02.15
아버지는 엄하고 어머니는 인자하다는 것이 통념으로 되어있는 듯 하다. 나의 아버지는 통념과는 달리 마음이 약하고 인자한 분이였지만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는 역시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더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네 살 되던 해 봄부터 나는 아버지께 「천자문」을 배웠는데, 지금 세상에서는 한자가 어렵다하여 한자 폐지 운동들을 하고 있지만 나의 기억으로는 반드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천자문」을 배우느라고 별로 고생한 기억이 없는 것이다. 그 해 가을인지 겨울인지 「천자문」을 다 떼었다고 송편이랑 만들어 책씻이하던 일이 어렴풋이 남아 지금도 기억된다.

나에게는 한자보다는 한글이 훨씬 배우기 어려웠다. 다섯 살 되던 해 봄에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가갸거겨","나냐너녀"를 아무리 되풀이 해도 깨치지 못했다. 「천자문」에서 "하늘 천"하면 그것은 하늘을 의미하는 글자려니 하고 "따 지" 그것은 땅을 가리키는 글자려니 해서 기억에 도움이 되었는데 "가갸거겨"는 아무 의미도 없을 뿐 아니라 글자 모양이 비슷비슷해서 도무지 기억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의미가 없는 글이고 보니 흥미도 날 리 없고. (이것은 한글이 한문보다 어렵다고 내가 지금도 생각해서 하는 말은 물론 아니다. 지금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식으로 "가마", "가지" 하는 식으로 단어를 가르쳐 가며 글자를 가르쳤던들 훨씬 이해하기가 쉬웠을 것인데 처음부터 덮어놓고 "가갸거겨"하니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

어쨌든 그래서 같은 "가갸거겨"를 며칠 되풀이 한 끝에, 어느날 아침, 나는 생후 처음으로 아버지께 호되게 혼이나는 변을 당하였다. 후일 어머니께서 설명해 주신 바에 의하면 "가갸거겨"를 아무리 해도 내가 깨치지 못하는 바람에 역정이 난 아버지께서 큰 소리를 꾸짖으셨더니 내가 이까짓 놈의 책 안 배우겠다고 아버지가 공들여 써 주신 한글 책을 내동댕이 쳤다는 것이다.

별안간 휙 하는 소리와 함께 가는 싸리가지로 만든 서산대가 나의 어깨에 휙 떨어졌다. 한 번 만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계속 되는 것이다. 생후 처음으로 뜻밖에 당하는 일이라 놀라고 급해서 나는 "아이구, 아이구" 고함을 쳐 울며 윗목 쪽으로 데굴데굴 굴러 내려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날따라 몹시 화가 나신 아버지는 굴러 달아나는 나를 따라오시면서 몇번 서산대로 또 내리치셨다. 나는 "어머니"를 고함쳐 불렀다. 어머니가 들어오시면 나를 이 급한 지경으로부터 구해주시리라 생각한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윗목 장롱 앞 까지 굴러 갔다가 앞이 막혀 이번에는 옆으로 구르기 시작한 때에 "왜 그러니?"하시면서 방으로 들어오셨다. 어머니에 대한 기대가 절정에 이르렀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노한 음성으로 사태를 몇마디 설명하시자, 나를 구해주시기는 커녕 도리어 아버지편으로 가세하셨다. 아버지 회초리도 이미 기가 막혀 죽겠는데 어머니마저 "요놈, 요놈"하면서 손으로 나를 때려주기 시작하신 것이다. 그때의 절망! 나는 눈 앞이 캄캄하고 세상이 끝장난것 같았다. 더 어디로 굴러 달아날데도 없었다. 나는 이미 윗목의 구석까지 굴러와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절망을 나는 이날 이때 까지 두 번 다시 느껴본 일이 없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몹시 입이 짧고 병약한 어린이였다. 색다른 맛난 반찬이라도 있으면 밥을 좀 먹지만 보통때에는 거의 밥을 안 먹다 싶이 하고 학교를 갔다. 그때만 해도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학생이 몇명 안 되어서, 점심시간이면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 점심을 먹고 다시 학교로 가는 형편이었다. 내가 집에 돌아 올 시간이면 어머니는 찌개랑 국이랑 솔잎 불만 있는 청동화로에 석쇠를 걸쳐 올려놓고 기다리셨다.

입이 짧은 내가 점심이라 해서 잘 먹을리 없었지만 전날 밤, 집에 제사같은 것이 있었던 날이면 어머니는 운두 높은 냄비에 무엇인지 이름모를 요리를 해놓고 기다리셨다. 탕국 국물에 산적, 전유어, 누루미 등속을 넣고 끓인것이여서 탕국 같기도 하고 신선로 같기도 하나 어쨌든 색다른 음식이라 나에게는 맛이 있었다. 입 짧은 사람이 의례 그러듯이, 그런 때면 나도 제법 많이 먹었다. "어머니, 이 음식이름이 뭐죠?" 맛있게 먹으며 어머니께 여쭈어 보면 "열구지탕(悅口之湯)이란다." 빙그레 웃으시며 대답하셨다. 열구지탕이라면 '입을 기쁘게 해주는 국' 이라는 뜻이다. 입이 짧아 음식을 잘 먹지 않는 사람에게 색다르게 보임으로써 구미를 돋구어 주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옛날 어른들은 그러한 유머를 가지고 계셨다. "어머니, 또 열구지탕 해주세요." 보통때 어머니께 조르면 "오냐, 요담 할머니 제사때 또 해주마." 그래서 나는 제삿날을 기다리는 것이 즐거워졌다. 제사 다음날에 어머니가 해주실 열구지탕이 먹고 싶어서.

내가 열여섯 살 되던 해 삼월에 하나밖에 없는 여덟 살 된 남동생이 죽었다. 성홍열에 걸린 것을 치료를 잘못해 발병한지 닷새만에 거짓말같이 죽은 것이다. 몹시 재주가 있고 눈에 영채가 나는 아이였다. 말도 채 유창하게 하기 전인 세 살 때 겨울에 벌써 천자문을 다 뗀 아이였다.

죽은 뒤 조끼 주머니에서 차곡차곡 접어넣은 보통학교 입학원서가 나와서 나는 새삼스레 눈물을 지었다. 벌써 여러날 전에 제가 학교를 찾아가 얻어가지고 와서 나더러 써달라고 조르던 입학원서였다. 조를 때 마다 "네가 쓰지 그래. 나도 내 입학원서는 내 손으로 썼다." 하고 내가 핀잔을 주던 입학원서다. 죽은 아이는 글씨도 곧 잘 써서 입학원서쯤 제 손으로 쓸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허무하게 죽고보니 나는 그것을 써주지 않은것을 몹시 뉘우치지 않을 수 없었다. 눈물을 아무리 흘려도 내 잘못을 땜질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워 더욱 가슴이 아팠다.

동생의 죽음에 대해 아버지나 어머니가 몹시 애통해 하신것은 말할 것도 없다. 죽은 자식 나이 세기라더니 어머니는 그 아이가 죽은지 십 년이 지나도 십오 년이 되도 설날만 되면 "그 애가 살았으면 올해 몇살이다."를 되풀이 하셨다.

매일 새벽 네 시면 어머니가 일어나시어 향불을 피워놓고 대접에 맑은 물을 떠 놓고 북두칠성에게 기도를 하신 것은 그때부터 였다. 어머니는 "죽은 애는 할 수 없지만 남은 너나 오래 살라고 치성을 들이는 게다." 그렇게 하시기를 십팔 년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시던 그 날 까지 계속 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이미 삼십 년이 가까워 오건만 지금도 나는 북두칠성을 보면 그 때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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