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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빌라도 앞에서의 두 번째 재판
조회수 | 2,165
작성일 | 07.06.11
빌라도는 군중들이 주님을 애워싸고 헤로데로부터 돌아와 자기 궁전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스도와 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할 수 없이 백성들 앞에서 사건을 종결지어야 했기에 빌라도는 그리스도가 백성들을 오도했다는 첫 번째 죄목에 대해 이렇게 발표했다.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는 이 사람이 백성들을 선동한다고 끌고왔지만 너희가 보는 앞에서 직접 심문을 했는데도 나는 너희의 고발을 뒷받침할 만한 아무런 죄상도 찾지 못하였다. 헤로데가 이 사람을 우리에게 돌려 보낸 것을 보면 그도 아무런 죄를 찾지 못한 것이 아니냐? 보다시피 이 사람은 사형에 해당하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루가 23, 14-15)

두 명의 재판관 모두 배포된 보고서와는 관계없이 그리스도는 무죄라고 확신했던 것이 분명하다. 두 번째로 주님은 무죄라고 선언되셨다. 유대인들이 질투심에서 그리스도를 넘긴 것을 알고 있던 빌라도는 그에게 형을 선고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최고의회는 과월절에 죄수 하나를 풀어 주는 관습이 있음을 빌라도에게 알려줌으로써 도망갈 구실을 제공해주었다. 당시에는 바라빠라는 "유명한" 죄수가 감옥에서 번민하며 지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로마인에 대항하는 유대인 지하조직의 지도자였다. 그는 반란과 살인죄에다 로마에 대항해서 혁명을 주도한 죄로 감옥에 갇혔다.
  
빌라도는 매우 영리했다. 그는 그들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고소한 똑같은 죄목 - 카이사르에 대한 반란 -을 가진 죄수를 선택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보도하려고 하였다. 몇 분 후 총독 관저의 하얀 대리석 바닥에 모여든 군중들 앞에 두 사람이 서게 되었다. 빌라도는 로마 경비병들에게 둘러싸인 채 높은 단 위에 앉았다. 한 쪽편에 선 바라빠는 몇 달만에 햇빛을 보는지라 눈부셔했다. 다른 쪽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셨다. 여기 있는 두 사람은 모두 혁명죄로 고발되었다. 바라빠는 민족적인 반감에 호소하였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양심에 호소하셨다. 트럼팻 소리가 울리고 장내가 조용해졌다. 빌라도는 한 발 앞으로 내딛으며 군중들에게 말했다.

빌라도는 모여 든 군중에게 "누구를 놓아 주면 좋겠느냐? 바라빠라는 예수냐? 그리스도라는 예수냐?" 하고 물었다. (마태오 27, 17)

빌라도의 질문은 완전히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의 분위기를 갖고 있지만 아주 얄팍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질문을 생각하라. 먼저 이러한 질문을 받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고 나서 질문 자체를 생각해보라. 일반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사형에 처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 때문에 일부 선동가들은

그 동안 대사제들과 원로들은 군중을 선동하여 바라빠를 놓아주고 예수는 죽여 달라고 요구하게 하였다. (마태오 27, 20)

어느 사회나 "기교의 매춘부" 라고 불리우는 웅변술에 쉽게 놀아나는 경솔하고 단순한 하층집단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들은 거짓 지도자들에 의해서 그릇된 길로 나갈 수 있으며 성지주일날 "호산나" 라고 외치던 바로 그 사람들이 성금요일에는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성금요일 아침에는 선동가들에 의해서 백성들은 우매한 대중이 되어 버렸다. 양심적인 민주주의가 무력을 가진 우민주의가 되어 버렸다. 민주주의가 그 도덕적인 의미를 상실해 버릴  때 투표를 통해서 비민주주의로 몰고 갈 수 있는 것이다. 빌라도가 다음과 같이 물었을 때,

빌라도는 모여 든 군중에게 "누구를 놓아 주면 좋겠느냐? 바라빠라는 예수냐? 그리스도라는 예수냐?" 하고 물었다. (마태오 27, 17)

그는 공평한 민주적인 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빌라도는 생각으로 투표한 무죄와 유죄, 선과 악, 옳고 그름을 선택하는 권리였다.
  
빌라도의 질문에 군중들은 함성을 지르며 대답했다.

그래서 "그리스도라는 예수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자 모두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고 소리 질렀다. (마태오 27, 22)

빌라도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으며, 바라빠도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 이제 그는 바로 자유인이 되는건가? 처음으로 그는 반란을 계속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부풀어 오른 이글거리는 얼굴을 나자렛 사람에게 돌렸다. 그는 상대방을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자세히 뜯어 보려고 했지만 더 이상 감히 올려다 볼 수가 없었다. 이 나자렛 사람의 눈에는 자기 영혼을 꿰뚫어보는 뭔가가 있었다. 그의 눈빛은 자기가 풀려난 것에 대해 참으로 애석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온 무리가 일제히 "그 사람을 죽이고 바라빠를 놓아 주시오!" 하고 소리질렀다. (루가 23, 18)

빌라도는 다시 군중에게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고 물었다. (마르코 15, 12)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 주고 싶어서 그들에게 다시 그 뜻을 밝혔으나 그들은 굽히지 않고 "십자가형이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고 소리질렀다. (루가 23, 20-21)

빌라도는 세 번째로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냐? 나는 이 사람에게서 사형에 처할 죄를 찾아 내지 못하였다. 그러니 이 사람을 매질이나 해서 놓아 줄 생각이다" 하고 말하였으나 무리들은 더욱 악을 써가며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소리질렀다. 마침내 그들의 고함소리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 주겠다고 선언한 다음 폭동과 살인죄로 감옥에 갇혀 있던 바라빠는 그들의 요구대로 놓아 주고 예수는 그들 마음대로 하라고 넘겨주었다. (루가 23, 22-25)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다수가 상대적인 영역에 있어서는 옳지만 절대적인 것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다수란 선동이 아니라 양심에 근거해서 투표할 때라야만 합법적인 시험이 된다. 숫자만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때 진리는 이기지 못한다. 숫자란 미의 여왕을 결정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의는 결정할 수 없다. 미란 취향의 문제지만 정의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도 옳지 않다하더라도 옳은 것은 여전히 옳은 것이며, 모두가 다 틀렸다하더라도 틀린 것은 여전히 틀린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역사에 있어서 첫 번째 투표는 잘못된 것이었다.
  
바라빠는 정치적인 자유이긴 했지만 그리스도 때문에 풀려났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인간들이 자유롭게 된다는 상징이었다. 이 일은 어린양이 사람을 대신해서 그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죽음을 맞이하는 과월절에 일어났다. 구세주는 고통을 당하시고 죄인은 해방된다. 출애굽기는 죄인이 어린 양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고 선포하였지만, 주님이신 그리스도는 구원될 수 없다. 구세주께서는 풀려날 수 없지만 죄인은 해방될 수 있다.
  
빌라도는 여전히 그리스도를 풀어주고자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을 매질이나 해서 놓아 줄 생각이다." (루가 23, 16)

로마인들은 십자가형에 처하기 전에 항상 채찍질을 가했지만 이 때의 채찍질은 대단한 벌은 아니었다. 나중에 리시아가 아무런 범법의 증거없이 무작정 바오로에게 채찍질을 가했던 것처럼 빌라도도 백성들에게 동정심을 유발시키고자하는 마음에서 벌을 가했다. 당연히 이러한 말에 주님은 놀라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채찍질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다고 스스로 예언하셨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빌라도는 세 차례 주님을 풀어 주고자 하였다. 한번은 주님이 무죄라고 선포함으로써, 또 한번은 과월절에 죄수 하나를 풀어줌으로써, 그리고 마지막으로 채찍질을 가함으로 풀어주고자 하였다.

채찍질

빌라도는 최고의회를 만족시키고 자신의 양심을 달래고자 이러한 방법을 이용하였지만, 피를 흘리게 하면 그들의 감정이 누그러지고 동정심을 갖게 되리라고 기대한 빌라도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다. 정의에 관한한 그런 타협이란 목적을 달성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만일 유죄라면 빌라도는 그리스도를 사형에 처했어야 했으며, 무죄라면 풀어주었어야 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 목숨을 죄값으로 바치기를 고대하고 계셨다. 주님께서는 전에 당신이 받으셔야될 세례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요한은 그리스도에게 물의 세례를 주었지만 로마 병사들은 이제 당신이 받으실 피의 세례를 준다. 격렬한 채찍질로 성스러운 주님의 몸을 찢어논 후에 피 흐르는 육체에 달라붙는 자주색 옷을 그에게 입혔다. 그리고는 가시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웠다. 손가락에 가시가 하나만 찔려도 병사들은 온갖 저주스러운 말을 하면서도 그리스도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웠을 때는 온갖 조롱을 다 퍼부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놀리고 머리를 친 후 손에 갈대를 쥐어 주었다. 그리고는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척했다. 이사야는 이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다.

그런데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 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었구나.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은 줄로만 알았고 하느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는 줄로만 여겼다.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 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 주었구나. (이사야 53, 4-5)

채찍질을 한 후에 빌라도는 피 흘리고 있는 그리스도를 군중들 앞에 내세웠다.

빌라도는 다시 밖으로 나와서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를 너희 앞에 끌어 내 오겠다. 내가 그에게서 아무런 혐의도 찾아 내지 못했다는 것을 너희도 이제 보면 알 것이다." 예수께서는 가시관을 머리에 쓰시고 자홍색 용포를 걸치시고 밖으로 나오셨다. 빌라도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가리켜 보이며 "자, 이 사람이다" 하고 말하였다. 대사제들과 경비병들은 예수를 보자마자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십자가에!" 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빌라도는 "그러면 데려다가 너희의 손으로 십자가에 못박아라.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목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하고 말하였다. (요한 19, 4-6)

너희들이 고발한 바로 그 사람이다. 보라, 이 사람은 값진 의복도 없고 가시관외에 다른 왕관도 없으며, 왕권의 표시라고는 붉은 피밖에 없으며, 권력의 상징으로는 갈대밖에 없다. 그에게 너무도 비싼 대가를 치루게 한 왕의 칭호를 다시는 쓰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들의 마음 속에 약간이라도 인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기에 너희들이 원하는대로 해주었다.
  
그러나 백성들의 지도자들은 그리스도를 보자 이렇게 외쳤다. "십자가에 못박아라! 십자가에 못박아라!" 빌라도는 이렇게 말했다.
  
"그를 데리고 가 너희들의 십자가에 못박아라." 백성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대사제들과 경비병들은 예수를 보자마자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십자가에!" 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빌라도는 "그러면 데려다가 너희의 손으로 십자가에 못박아라.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목도 찾아 내지 못하였다" 하고 말하였다. 유대인들은 또다시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습니다. 그 율법대로 하면 그 자는 제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죽어 마땅합니다" 하고 대꾸하였다. (요한 19, 6-7)

빌라도는 그리스도가 "사람"이라고 했고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빌라도는 그리스도가 로마법 앞에서는 무죄라고 선언했고, 그들은 자기들의 법으로 볼 때는 그리스도가 유죄라고 대답했다. 빌라도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운 마음이 들어 (요한 19, 8)

미신은 의심을 수반한다. 헤로데는 부활을 믿지 않았지만 그리스도가 자기 영토내에서 설교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부활한 요한 세례자라고 생각하였다. 빌라도는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는 믿지 않았지만 자기 앞에 서있는 이상한 이 사람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한마디도 자기 변호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그리스도가 신이 보낸 사자가 아닌가 하고 몹시 두려워하며 마음이 흔들린 빌라도는 재판실로 그리스도를 불러들여 말했다.

예수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도대체 너는 어디에서 온 사람이냐?"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요한 19, 9)

빌라도는 "당신은 누구요?" 라든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요?" 라고 묻지 않고 "당신은 어디서 왔소?" 라고 물었다. 주님이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것은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빌라도는 이미 갈릴래아인인 그리스도를 헤로데에게 보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인간 이상으로 생각하였다. 만약에 그리스도가 정말로 하늘에서 왔다면 그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의 진짜 태생을 물었다. 빌라도는 벌써 여섯가지 질문을 하였기에 이제 그가 하고자하는 질문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질문에 답변하시지 않았다. 빌라도는 이미 진리에 등을 돌리고 있었다. 재판을 받는 동안 다섯 번, 즉 대제관 앞에서, 최고회의 앞에서, 헤로데 앞에서 그리고 빌라도 앞에서 두 번 주님은 신비스러운 침묵을 지키셨다. 아마도 이러한 침묵은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변호할 말이 한 마디도 없었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목자로서 말씀하신 것이고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침묵을 지키실 때는 양처럼 말이 없으셨다.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았다. 도살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깍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이사야 53, 7)

빌라도는 자기 앞에 있는 진리를 이용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사색의 주제로 취급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늘에서 응답을 주시지 않는다. 마음 속으로 빌라도는 무죄를 확신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확신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다. 따라서 빌라도는 아무런 답변도 들을 자격이 없었으며 아무 대답도 듣지 못했다. 빌라도는 이 죄수로부터 더 이상의 계시를 들을 만한 권리를 상실해 버렸다. 모든 영혼은 하느님께서 찾아오시는 때가 있는데 빌라도에게는 지금 찾아 오신 것이다.

클라우디아

바로 이 때 빌라도의 부인인 클라우디아가 남편에게 전갈을 보냈다.
  
클라우디아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의 딸인 율리아의 막내 딸이었다. 율리아는 세 번 결혼했으며 마지막은 티베리우스와 결혼했다. 율리아는 방탕한 생활 때문에 로마 기사와의 사이에서 클라우디아를 낳았을 때 귀양을 갔다. 클라우디아가 열 세 살이 되었을 때 율리아는 그녀를 티베리우스에게 보내어 자라게 하였다. 클라우디아가 십육세가 되었을 때 하층 계급 출신인 본티오 빌라도는 그녀를 만나자 티베리우스에게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해서 빌라도는 황제 가문과 결혼하게 되었으며 정치적으로 장래가 보장되었다. 결혼에 힘입어 빌라도는 유대아의 총독이 되었다.
  
로마 총독들은 아내를 임지로 데려갈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정치가들은 이런 규정에 대해 아주 기뻐했으나 빌라도는 그렇지 않았다. 사랑의 힘으로 염격한 로마법을 깨뜨렸다. 빌라도는 예루살렘에서 육년을 지낸 후에 클라우디아를 부르러 보냈다. 클라우디아는 낯설고 생소한 사람들 틈에서 살고 있던 세계의 수도를 떠나 고독한 생활을 하고자 열망했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볼 때 클라우디아는 자기의 목욕을 준비해주는 유대인 하녀로부터나 혹은 예수에 관한 소식을 전해주는 청지기를 통해 예수에 대해 틀림없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실제로 예수를 보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녀가 살고 있던 안토니아 요새는 예루살렘 성전 가까이 있었으며 예수께서는 성전에 종종 오셨기 때문이다.
  
그녀는 주님의 메시지에 대해서도 들었을 것이며, "누구도 이 사람처럼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감동을 받았다. 그녀가 알고 있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세계관과 그녀가 생각하던 것들과의 차이 때문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더 깊이 마음에 와 닿았다. 예루살렘 여인네들은 격자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던 클라우디아를 보았으며, 그녀의 하얀 손에 끼어 있는 보석빛을 보려고 하며 자부심 넘치는 그녀의 귀족적 얼굴을 보려고만 했지 그녀의 생각이 얼마나 깊은지, 그녀의 슬픔이 얼마나 컸는지, 그녀의 갈망이 얼마나 강렬한지 알 턱이 있었겠는가?
  
로마 인들은 거의 절대적으로 법에 순종했다. 어떤 여인도 법을 집행하는데 관여할 수 없었으며, 법적인 절차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도 없었다. 클라우디아가 이 사건에 끼어든 것을 훨씬 돋보이게 해주는 것은 자기 남편 본티오 빌라도가 그의 경력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이며 이로써 그가 길이 기억될 유일한 사건, 즉 주님의 재판을 종결하는 바로 그 날 남편에게 쪽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재판석에 있는 판사에게 쪽지를 보내는 것은 처벌할 만한 위법 행위였다. 엄청난 일이 막 이루어지려는 것을 보았기 대문에 클라우디아가 그러한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빌라도가 재판을 하고 있을 때에 그의 아내가 전갈을 보내어 "당신은 그 무죄한 사람의 일에 관여하지 마십시오. 간밤에 저는 그 사람의 일로 꿈자리가 몹시 사나왔습니다" 하고 당부하였다. (마태오 27, 19)

이스라엘 여인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동안에 이 이교도 여인은 예수의 무죄를 증언하였으며 남편에게 올바로 그를 다루도록 부탁하였다.
  
클라우디아의 메시지는 그리스도 교도들이 이교도 여성들을 위해 해아 할 일의 본보기다. 그녀는 복음서에 나오는 유일한 로마 여인이며 최상류 계급의 여인이었다. 이 꿈은 이교도 세계의 꿈과 소망의 본보기요, 세기를 걸쳐 의로운 사람, 곧 구세주를 희망하던 본보기였다.
  
클라우디아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지만 게르트르드 폰 르포르트 (Gertrud Von Le Fort)라는 현대작가는 이렇게 상상했다. 성금요일 아침 클라우디아가 깨어났을 때 까타콤바(지하묘지)에서 "그는 본티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셨다" 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여오는 것 같았다. 조금 후에는 교회로 바뀐 로마 성전에서 "그는 본티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셨다"는 소리가 들려왔으며, 그러한 목소리는 바다의 파도소리처럼 한데 어울려 종탑처럼 하늘로 높이 치솟아 올라간 교회에서 몇 배로 불어나 노래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는 본티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셨다" 고 꿈이야 어떻든간에 직관적인 그 여인의 전갈이 옳았으며 현실적인 사람이 틀렸다. 여지껏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 죄수를 보고 빌라도는 대단히 화가 났다. 왜냐하면 자기 앞에서는 피고인들이 늘상 두려워 절절 기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인가? 나에게는 너를 놓아 줄 수 도 있고 십자가형에 처할 수도 있는 권한이 있는 줄을 모르느냐?" 빌라도의 이 말에 (요한 19, 10)

빌라도는 자기에게 석방할 수도 있고 단죄할 수도 있는 권한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기 앞에 서있는 이 죄수가 무죄라면 빌라도는 그를 십자가에 처할 권한이 없고, 만일에 그가 유죄라면 그를 풀어 줄 권한이 없다. 이제 재판관이 재판을 받는다. 주님께서는 바로 대답하시며 그가 갖고 있는 재판권은 카이사르한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왔다고 빌라도를 상기시켜 주신다. 빌라도는 임의적인 자신의 권한에 대해 자랑했지만,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위임된 권한에 대해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늘에서 권한을 받지 않았다면 나를 어떻게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너에게 넘겨 준 사람의 죄가 더 크다." (요한 19, 11)

빌라도가 자랑하는 권한은 "주어진" 것이다. 총독이나 왕이나 통치자가 그러한 사실을 알거나 모르거나간에 모든 지상의 권한은 위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로 인해 왕들이 다스린다"고 잠언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즉시 유다와 대사제에게 더 큰 죄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늘에서 권한을 받지 않았다면 나를 어떻게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너에게 넘겨 준 사람의 죄가 더 크다." (요한 19, 11)

빌라도는 이방인으로서 자기 권력이 하느님께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몰랐지만 가야파와 유다는 알고 있었다. 이러한 월등한 지식으로 인해 이들은 로마 인보다 훨씬 죄가 크다. 빌라도는 모르고 죄를 지었지만, 가야파는 알면서도 죄를 지었으며 유다도 마찬가지였다.

유죄선고

대담하게 빌라도를 꾸짖고 그에게 하느님께 속해있음을 상기시켜주고 그에게도 작지만 죄가 있다고 주장하시자 빌라도는 더더욱 "그를 풀어 주고자" 노력하였다. 빌라도는 밖에 나가 군중들을 만나 이 죄수의 무죄를 다시 한번 선언하였다. 그러나 군중들은 벌써 영리한 답변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말을 들은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 줄 기회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만일 그자를 놓아 준다면 총독님은 카이사르의 충신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왕이라고 하는 자는 카이사르의 적이 아닙니까?"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요한 19, 12)

빌라도는 겁을 먹었다. 만일 이 죄수를 풀어주면 안그래도 자기가 음모와 반란을 꾸미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 황제에게 상소가 올라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총독직은 말할 것 없이 목까지 달아날 판이었다. 카이사르가 학살하고 그들에게 끼친 온갖 해와 성전을 타락시킨 것 때문에 그를 경멸하던 군중들이 카이사르외에는 다른 왕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너무도 이상한 일이다. 카이사르를 자기들의 왕으로 선포함으로써 그들은 메시아관을 포기해 버리고 스스로 로마 제국의 가신이 됨으로써 한세대가 가기 전에 예루살렘을 삼켜 버리는 로마 군대가 들어오는 길을 마련해 주었다. 그리스도에게 정의를 부인하기보다는 티베리우스에 대한 공포가 빌라도에게는 훨씬 다급한 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결국에는 하느님보다도 인간을 더 두려워한 자들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위해 보호해주리라고 믿었던 것을 잃어 버린다. 빌라도는 나중에 유대인들의 불평에 따라 로마 황제에 의해 관직을 박탈당한다. 이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 예인 것이다. 빌라도는 그들이 카이사르의 적으로 고발한 자를 편든다고 카이사르에게 알리겠다는 협박을 들었을 때, 재판석에 주저 앉았다. 온 몸에 피가 말라붙어 있으며 가시관을 쓰고 진홍색 망토를 걸치고 있는 이 죄수를 가리키며 빌라도는 백성들에게 말하였다.

그 날은 과월절 준비일이었고 때는 낮 열 두 시쯤이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을 둘러 보며 "자, 여기 너희의 왕이 있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죽이시오, 죽이시오.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시오!" 하고 외쳤다. 빌라도가 "너희의 왕을 나더러 십자가형에 처하란 말이냐?" 하고 말하자 (요한 19, 14-15)


빌라도는 물었다.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란 말이냐?" 대사제들이 대답했다.

대사제들은 '우리의 왕은 카이사르 밖에는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요한 19, 15)

왕은 곧이 곧대로 그들의 말을 믿었다. 과거 사무엘 시대 그들은 하느님께서 화를 내시며 그들에게 주신 왕을 갖기 위해 하느님의 통치를 배척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왕권을 거부함에 따라 그들은 카이사르의 왕권아래서 짓밟힐 것이다. 어떤 죄수가 사형선고를 받으면 긴 막대기를 가져와 두쪽을 내 그것을 죄수의 발치에 던지는 것이 로마의 관습이었다. 빌라도도 이 관습을 따랐는데 대리석 바닥에 떨어진 두 개의 막대가 십자가 꼴을 갖췄다.
  
Ibis ad crucem ("너는 십자가형을 당할 것이다") 는 라틴말 포고였으며 곧 이어, I, Lector, expedicrucem (렉토르는 가서 십자가를 준비하여라.)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그들에게 내어 주었다. (요한 19, 16)

이 죄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넘겨준 빌라도는 자기에게 힘이 없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바로 전에 자기에게는 죽일 수도 풀어줄 수도 있는 권한이 있다고 뽐내지 않았던가. 또 그리스도를 사형에 처하고자하는 자들에게 반대할 배짱이 없었다는 핑계도 댈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잠시 후에 십자가 위에 새긴 글을 고쳐야 한다고 유대인들이 요구했을 때 그는 자기가 얼마나 완고한지를 보여 주었다. 빌라도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였다. 빌라도는 카이사르에게 보고가 올라가지 않도록 자기가 다스리는 자들의 비위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으며 아울러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게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스도를 십자가형에 처한 죄는 어느 한 민족이나 인종, 백성 또는 개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죄가 그리스도를 십자가형에 처한 원인이었으며 온 인류가 죄의 결과를 물려받았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죄가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천상 아버지께서도 그리스도를 죽음에 넘겨주셨다는 것이며,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구원의 열매를 받게 된다.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느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습니까? (로마서 8, 32)


빌라도는 그 때,

빌라도는 그 이상 더 말해 보아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폭동이 일어나려는 기세가 보였으므로 물을 가져다가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너희가 맡아서 처리하여라.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마태오 27, 24)

빌라도는 모세가 명한 신비로운 의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빌라도가 자기는 죄가 없다고 선언하는 것을 본 유대백성들은 그 의식을 분명히 생각했을 것이다. 모세는 이렇게 명했었다.

그 시체에서 가장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은 모두 그 골짜기에서 목찍힌 암송아지에 대고 손을 씻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의 손은 이 사람의 피를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현장을 목격하지도 못했습니다. 야훼여, 주님께서 구해 내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벗겨 주소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서 죄없는 피가 흐르지 않게 하소서.' 이렇게 하면 그들은 그 피의 책임을 벗게 된다. 이렇게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죄없는 자의 피를 흘리는 일을 송두리째 뿌리 뽑아야 한다. 야훼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해야 한다. (신명기 21, 6-9)

이제는 그 역할이 거꾸로 뒤집혔다. 빌라도가 자신은 죄가 없다고 선언하고 모세의 후손들이 그 반대의 역할을 하였다. 모세의 의식은 피로써 죄를 씻어준다는 예표가 되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빌라도는 마호멧이 모래로 자신의 죄를 씻고자했듯이 물로 자신의 무죄함을 찾고자 하였다. Faery Queen이라는 작품을 통해 스펜서(Spenser)는 빌라도가 남은 생애동안 계속 손을 씻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맥베드 부인도 그렇게 손을 씻었지만 물이 빌라도의 마음을 씻어 줄 수 없었듯이 맥베드 부인도 이렇게 불평을 털어 놓았다.
  
"위대한 바다 신(海神)의 바닷물로 내 손에서 이 피를 깨끗이 씻어낼 수 있을까? 아니야 …"
  
비겁한 총독이 정의를 왜곡한 책임을 상징적으로 씻어 버리려고는 했지만 역사는 계속해서 "본티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셨다" 고 외쳐왔다.
  
유다는 "무죄한 피"를 배반했다고 고백했으며, 빌라도는 거듭 주님에게서 "아무런 잘못도 찾지 못했으며" 헤로데 역시 마찬가지였다. 클라우디아 프로줄라는 그를 "의인"으로 생각했으며 조금 후에 도둑은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전혀 잘못한 일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백인대장은 마침내 이렇게 고백할 것이다.

백인대장과 또 그와 함께 예수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지진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하며 몹시 두려워하였다. (마태오 27, 54)

그러나 빌라도가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 자기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선언했을 때 유대백성들은 이렇게 외쳤다.

군중은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지겠습니다" 하고 소리쳤다. (마태오 27, 25)

이 피는 그들에게 파멸을 가져 올지 모르지만 그러나 변함없는 구원의 피이다. 비록 그들이 스스로에게 저주를 내리긴 했지만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주님께서는 그들의 판결을 인정하시지 않았다. 결국에 그들은 회개할 것이다. 종말이 오기 전에 구원을 받게 될 남은 사람들이 항상 있게 마련이다. 지금 이 순간 이러한 남은 사람들 사이에 드는 자들은 아리마태아의 요셉과 니고데모와 헤로데 집의 청지기와 얼마 후의 바오로와 같은 숭고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버림을 받으신 후 사람들에 의해 십자가형을 받도록 넘겨지셨을 때 또 다시 조롱을 받으셨다.

이렇게 희롱한 뒤에 그 자주색 옷을 벗기고 예수의 옷을 도로 입혀서 십자가에 못박으러 끌고 나갔다. (마르코 15, 20)

주님께서 놀림을 받으시고 가짜 왕이라고 조소를 받으실 때 입고 계시던 옷을 그들은 벗겼지만 주님의 가시관을 벗겼다는 말은 한 마디도 없다. 아마도 주님께 원래의 겉옷과 속옷을 갈아 입히고 아울러 이음매 없는 겉옷도 입혔을 것이다. 주님은 원래 입으시던 옷을 입고 나아가시어 당신 백성에게 설교하시고 그들 가운데서 메시아로 거니시던 바로 그 분임이 확인될 것이다.

그 때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올라 오다가 그 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병사들은 그를 붙들어 억지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마르코 15, 21)

주님께서는 도시 밖으로 끌려나가셨는데 그것은 어떤 형을 집행하거나 그렇게 하는 관습이 있었다. 레위기는 선을 모독한 자들은 도시 밖에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나중에 돌로 맞아 첫 번째 순교자가 된 스테파노는 먼저 도시 밖으로 끌려 나갔었다. 또한 율법의 규정에 의하면 사제가 손을 얹어 백성들의 죄를 전가시켰던 희생양을 도시 밖으로 끌고나감으로써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나간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이러한 상징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유대인의 대사제는 짐승의 피를 지성소에 가지고 들어 가서 속죄의 제물로 바칩니다. 그러나 짐승의 몸은 영문 밖에서 불살라 버립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도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3, 11-12)

그들은 이제 주님은 죽어야 된다라고 생각했지만 주님 자신과 그들이 미워하던 분은 결코 죽으실 수 없었다.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성 밖을 나가 히브리말로 골고타라는 곳으로 향하셨다. 골고타라는 말은 해골산이란 뜻이다. (요한 1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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