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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주의 옆구리를 찌름
조회수 | 2,085
작성일 | 07.06.11
주님께서 숨을 거두셨을 때 도둑들을 빨리 죽게 하기 위해 그들의 뼈를 부러뜨렸다. 십자가에 못박혀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의 육신이 밤에 십자가에 달려 있으면 안된다고 율법은 명하고 있다. 더구나 파스카 주간의 안식일이 다가오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자들로서는 도둑들을 죽이고 십자가에 달린 자들을 모두 매장하는 것이 시급하였다. 그러나 아직 메시아에 관한 한 예언이 실현되지 않았다. 예언이 성취된 것은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데리고 나와 리토스트로토스라 하는 자리에 올라 가 자기 재판관석에 앉았다. 리토스트로토스라는 말은 히브리 말로 가빠타라고 하는데 "돌 깔아 놓은 자리"라는 뜻이다. (요한 19, 13)

구두쇠 하느님께서는 아껴 두셨던 고귀한 당신 피 몇 방울을 돌아가신 후 쏟아 부으시어 당신 사랑이 죽음보다 더 강함을 보여 주셨다. 피와 물이 흘러 나왔다. 피는 구원의 대가요, 성체 성사의 상징이며, 물은 재생과 세례의 상징이다. 병사가 그리스도의 심장을 찌르는 장면을 목격한 성 요한은 나중에 이렇게 기술하였다.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오셔서 물로 세례를 받으시고 수난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신 예수이십니다. 그분은 물론 세례를 받으신 것뿐만 아니라 세례도 받으시고 수난의 피도 흘리셨습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입니다. (요한 Ⅰ서 5, 6)

요한은 이 사건에 신비로운 성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이 사건은 단순한 자연 현상 이상의 것이다. 물은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 주님의 전교활동의 시작을 말해주고, 피는 주님께서 자신을 흠없는 봉헌물로 바치심으로 전교활동의 종결을 나타낸다. 둘 다 신앙의 기초가 된다. 세례를 받으실 때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당신 아들이라고 선언하셨고 부활은 주님의 신성을 다시 증거하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보내신 사자는 자신의 심장 위에 새겨진 사랑의 메시지를 지니고 창으로 찔렸다. 창으로 찌른 것은 하느님의 착한 목자를 모독하는 마지막 불경행위였다. 비록 주님은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과 같은 야만스러운 폭행은 당하시지 않았지만, 하느님의 성심을 열어 보이는데는 신비스러운 어떤 신적인 목적이 있었다. 최후만찬의 밤에 주님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던 요한은 주님의 심장이 열린 것을 적절하게 잘 기록하였다. 대홍수가 났을 때 노아는 방주 옆에 문 하나를 만들었으며, 그 문을 통해 동물들이 방주에 들어와서 홍수를 피했듯이, 이제는 사람들이 죄의 홍수를 피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가슴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문이 열렸다. 아담이 잠들었을 때 그의 옆구리에서 하와가 나왔으며 모든 생물의 어머니라고 불리웠다. 이제 둘째 아담이 머리를 숙이고 십자가 위에서 자고 있을 때, 그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의 형상으로 그의 신부인 교회가 나왔다. 열린 심장은 주의 말씀을 성취시켰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거쳐서 들어 오면 안전할뿐더러 마음대로 드나들며 좋은 풀을 먹을 수 있다. (요한 10, 9)

아오스딩과 초대 그리스도교 작가들은 주의 성심의 보고를 연 병사 론지누스(Longinus)가 무지의 고통에서 치유를 받았으며 후에 론지누스는 주교가 되고 교회 순교자가 되었다고 기록하였으며, 그의 축일은 3월 15일이다. 요한이 이러한 장면을 보았을 때 그는 6세기 전의 즈가리야의 예언을 기억하였다.

그리고 성서의 다른 곳에는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라는 기록도 있다. (요한 19, 37)

십자가를 바라볼 때 슬픔이 먼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슬픔이 솟아나온다. 죄의 사악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 모든 변명은 사라진다. 그러나 상처를 내고 십자가에 못박은 죄의 화살이 치유하는 용서의 향유를 가져온다. 베드로는 스승을 보고서 밖에 나가 통곡하였다. 구리뱀을 보던 자들은 뱀에 물린 독에서 풀려났듯이, 이제 이 상징은 실제가 되어 죄인처럼 보이나 죄인이 아니었던 그분을 보는 자들은 죄에서 치유된다.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거나 좋아하거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만 한다. 창에 찔리신 그리스도는 세상의 네거리에 온갖 소리를 들으면서 서계신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보고 마음이 누그러져 회개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보고서 안됐다고는 생각하지만 뉘우치지 않고 가 버린다. 바로 "가슴을 치며 집으로 돌아가던" 갈바리아 산에 있던 군중들이 그러했다. 여기서 가슴을 두드리는 것은 회개하지 않은 표시였다. 그것은 그들이 창으로 찌른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를 거부한 것이었다. 내 탓이오하고 가슴을 치는 것만이 구원해 주는 것이다.
  
사형집행자들이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지만, 예언대로 그리스도의 몸의 뼈는 다치지 않았다. 출애굽기에 의하면 파스카양은 그 몸의 뼈를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 양은 문자 그대로 이루어질 하느님의 어린 양의 전형에 불과하다.

이렇게 해서 "그의 뼈는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성서의 말씀이 이루어졌다. (요한 19, 36)

이 예언은 뼈를 부수라는 주님의 적들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성취되었다.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몸에는 외적인 상처와 멍과 흉터가 있지만 내적인 구조는 하나도 손상되지 않았듯이, 주님의 신비체인 교회가 도덕적인 상처나 불명예스러운 추문이나 불충실의 흉터를 갖고 있을지라도 신비체의 뼈 하나라도 부러뜨리지 않으리라는 예언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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