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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손가락과 손과 못
조회수 | 2,099
작성일 | 07.06.11
다락방에 주님께서 처음 나타나셨을 때는 사도들이 열 명밖에 없었다. 토마는 그 때 없었다. 그는 사도들과 함께 있지 않았지만, 복음서는 토마가 사도들과 함께 있었어야 했다고 본다. 토마가 그 자리에 왜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복음서에서 나오는 세 가지 다른 대목을 보면 토마는 언제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어두운 면을 보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주님께서 라자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였을 때 토마는 그와 함께 가서 죽고 싶어했다. 주님께서 나중에, 아버지께 되돌아가서 사도들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시겠다고 하자 토마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며 자기도 그 길을 모른다고 침울하게 말했다.
  
다른 사도들은 구세주의 부활과 영광을 확신하자마자 토마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했다. 토마는 믿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는 사도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부활을 입증하는 실험적 증거가 없다면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믿음의 조건을 이렇게 나열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자 토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요한 20, 25)

믿는 자들과 믿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자들의 상이성은 토마에게 부활에 대해 말해 줄 때 열 명의 사도들이 받은 반응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육안으로 직접 본 열 명의 증인 자격이 있는 동료들의 증언을 그가 거부한 것은 비관적인 사람들의 의혹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토마의 의심은 경박한 무관심의 회의나 진리에 대한 적대감이 아니었다. 그는 믿음을 갖기 위해 알기를 원했다. 어떤 의미에서 토마의 태도는 모든 의심을 떨쳐 버린 후 지식과 지성을 향상시키는 과학적 신학자의 태도이다.
  
이 대목이 성서에서 주님과 관련시켜 "못" 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유일한 곳이며, "그들이 내 손과 내 발을 뚫었도다" 라고 말한 시편작가의 말을 상기시켜 준다. 토마의 의심은 주로 낙담과 슬픔과 고독으로 인한 의기소침에서 생긴 것이다. 그는 동료들로부터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동료들로부터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자가 훨씬 아쉬워 할 때가 많다. 첫 번째 모임의 의사록을 기록했더라면 "토마가 없었다"라고 복음서의 비극적인 표현을 삽입하였을 것이다. 일요일은 주의 날로 지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사도들은 팔일 후에 다시 다락방에 모였기 때문이며 토마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은 여전히 잠겨 있었는데 부활하신 구세주께서는 그들 가운데 서시어 세 번째로 평화의 인사를 하신다.

안식일 다음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 걸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들어 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 (요한 20, 19)

평화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구세주께서는 바로 평화의 근거인 당신 죽음과 부활을 주제로 다루신다. 주님께서는 눈꼽만큼도 흠잡을 데가 없었으며 갈릴래아 바닷가에서 나중에 나타나셔서 베드로와 함께 하실 때에도 한 점도 이상한 데가 없을 것이다. 토마는 동물의 세계에 속하는 감각이나 기능에 바탕을 둔 증거를 요구하였는데 바로 그 감각의 증거를 얻게 된다. 주님께서는 토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토마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 20, 27)

주님께서는 죄많고 부정한 세대가 기적을 찾고 있으나 요나 예언자의 기적외에는 어떤 기적도 못 볼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바로 이것이 토마에게 보여 주시는 기적이다. 주님께서는 토마가 이전에 다른 사도들에게 한 회의적인 말들을 다 알고 계셨는데 이는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그리스도 옆구리에 있는 상처는 아주 컸기에 토마에게 손을 그 곳에 집어 넣어보라고 하셨을 것이다. 주님의 손에 난 상처도 매우 컸을 것이기에 토마에게 못자국에 손가락을 집어 넣어보라고 명하셨을 것이다. 토마의 의심은 다른 사람들의 의심보다 훨씬 오래 갔으며 그의 유별난 회의는 부활의 실제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이다.
  
토마가 주님의 말씀대로 했을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다른 열명의 사도들도 첫 부활 저녁에 똑같이 했을거라고 당연히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 토마에게 꾸짖는 말씀은 - 더 이상 의심하지 말라 - 믿음을 권유하는 말씀을 담고 있으며 토마가 자주 빠지는 죄인의 비관적인 기분을 떨쳐 버리라는 권유말씀을 담고 있기도 하다.
  
바오로는 하늘의 현시에 복종하였으며 토마도 그랬다. 의심하는 자가 긍정적인 증거로 확신을 얻고 경배자가 되었다. 무릎을 털썩 꿇으며 토마는 부활하신 구세주께 이렇게 말했다.

토마가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대답하자 (요한 20, 28)

열열한 한 마디로, 토마는 의기소침한 인류의 모든 의심을 한데 모아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이라는 완전한 의미의 감탄어로 그것들을 치유시켜 주었다. 이 말은 이사야의 엠마누엘이 자기 앞에 계시다는 것을 인정한 말이다. 맨 마지막으로 믿은 그가 맨 처음으로 부활하신 구세주의 신성을 완전히 고백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살과 피의 증거를 보고 나온 것이기에, 베드로가 주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하였을 때 그에게 내린 축복은 받지 못했다. 그러나 부활하신 구세주께서는 토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 20, 29)

파라오와 같이 보고도 믿으려하지 않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보고서야 믿는 자도 있다. 주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종류의 사람들보다도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을 훨씬 높이 보신다. 노아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하느님의 주의 말씀을 들었다. 노아는 그 말씀을 믿고 방주를 준비하였다.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면서 고향을 떠났지만, 그가 바다의 모래보다 더 많은 후손들의 조상이 되리라고 약속하신 하느님을 믿었다. 토마가 동료 제자들의 증언을 듣고 믿었더라면 그리스도에 대한 토마의 신앙은 훨씬 위대하였을 것이다. 토마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다시 부활하신다고 하신 말씀을 종종 들었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십자가 처형이 한 예언의 완성이라는 것을 성서를 보고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토마는 덤으로 감각적인 증거를 원했다. 토마는 감각적인 완전한 증거를 요구한 것이 잘 한 일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러나 미래세대가 똑같은 증거를 요구하면 어떻게 될까? 주님의 말뜻은 미래의 신도들은 당신과 함께 있던 자들의 말을 듣고 부활의 사실을 믿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아무도 부활을 본 사람이 없는 사도시대 이후의 신앙인들의 믿음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사도 자신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았기 때문에 그 근거를 가지고 있다. 사도들은 신도들이 그들의 증언을 믿고 보지 않고 부활을 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도들은 주님을 보고 믿었기 때문에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구원의 신비를 완전히 이해하고 그 신비 안에서 살고, 심지어는 구원의 실재 때문에 목이 잘리웠을 때 훨씬 더 행복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인간으로서 만져보고 또한 그를 하느님으로 믿었던 토마에게 우리는 항상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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