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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권위의 조건인 사랑
조회수 | 1,949
작성일 | 07.06.11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보낸 후 사도들은 다시 이전의 생활근거지로 돌아갔으며, 특히 갖가지 아름다운 추억이 영글어 있는 갈릴래아 바다로 돌아갔다. 그들이 고기를 잡고 있을 때 주님은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불러주셨으며, 갈릴래아는 주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신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신 곳이었으며 이제 이곳에서 마지막 기적을 행하시게 될 것이다.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실 때는 "술이 없었으나", 이제 마지막에는 "물고기가 없다." 두 번 다 주님께서는 한 마디의 명령만 내리신다. 가나에서는 물항아리를 채우라고 하셨고, 갈릴래아에서는 바다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다. 두 번 다 충분한 양을 얻었다. 가나에서는 술 항아리 여섯 개에 가득 차게 되었다.
  
이 때 바다에 있던 사도들은 보통 맨 먼저 이름이 나오는 시몬 베드로가 있었으며 그 다음으로는 토마가 언급되고 있다. 토마는 그리스도를 주님이시며 하느님으로 고백한 후 사도들의 으뜸이라고 불리우는 베드로 곁에 있었다. 갈릴래아에는 가나의 나타나엘도 그곳에 있었으며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다른 두 제자도 그곳에 같이 있었다. 한 때는 자기 배를 가지고 있던 요한이 지금은 베드로의 배에 있다는 것이 특이할 만 하다. 베드로는 지도력을 발휘하여 다른 사람들을 고무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때 시몬 베드로가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하자 나머지 사람들도 같이 가겠다고 따라 나섰다. 그들은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으나 그 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요한 21, 3)

그들은 밤새 내 수고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아침이 오자 그들은 주님께서 바닷가에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분이 주님이신지는 몰랐다. 주님께서 그들의 애정을 유발시키기 위해 낯선 분으로 그들 가까이 오신 것이 이번이 세 번째였다. 그들은 주님께 말을 걸 수 있을 정도로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주님을 알아보지도 못했고 그의 목소리도 분간하지 못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 영광으로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님은 바닷가에 계시고 그들은 바다에 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아무것도 못 잡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 보아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들이 예수께서 이르시는 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을 만큼 고기가 많이 걸려 들었다. (요한 21, 5-6)

사도들은 이 말을 듣고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분명치 않지만 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치라고 주님께서 이전에 말씀하셧던 비슷한 명령을 분명히 기억하였을 것이다. 그 때는 주님이 배 안에 계셨으나 이제는 바닷가에 계신다. 거친 인생살이는 다 끝났다. 즉시 주의 명령에 순종하자 고기가 많이 잡혔으며 하도 물고기가 많아서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공생활을 하시던 때 물고기를 잡던 첫 번째 기적에서는 그물이 찢어졌다. 기적을 보고 놀란 베드로는 자기는 죄인이기에 주님께 자기 곁을 떠나달라고 부탁한다. 하느님의 풍부한 자비가 그로 하여금 자신의 무를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고기를 잡음으로써 그들은 강해졌다. 그 때문에 요한은 즉시 베드로에게,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시몬 베드로는 몸에 겉옷을 두르고 그냥 물 속에 뛰어 들었다. (요한 21, 7)

베드로와 요한의 성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요한은 부활 주일 아침 무덤에 제일 먼저 도착했고, 베드로는 무덤에 제일 먼저 들어갔다.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맨 처음 믿었으며 베드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맨 처음 인사드렸다. 요한은 배에서 주님을 맨 처음 보았고, 베드로는 주님께 맨 처음으로 달려갔으며, 물 속에 뛰어들어 주님의 발치에 맨 처음 도착하였다. 베드로는 배 안에서 옷을 벗고 있었으나, 몸에 겉옷을 걸치고 개인적인 안락을 잊어 버린채 인간적인 교우관계를 버리고 백 미터 정도를 열심히 헤엄을 쳐서 스승에게로 갔다. 요한은 정신적인 분별심이 더 했고 베드로는 행동이 더 빨랐다. 바로 요한이 최후만찬 저녁에 스승의 가슴에 몸을 기댔던 자였으며, 십자가에 가장 가까이 있었으며, 구세주께서는 그에게 자기 어머니를 맡기셨다. 그리고 지금은 바닷가에 계신 부활하신 주님을 맨 처음 알아보았다. 전에 한 번 주님께서 파도위를 걸어서 배 있는데로 오실 때, 베드로는 스승이 자기에게 오실 때 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스승에게 자기도 물 위를 걸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였는데, 지금은 구세주에 대한 존경심에서 옷을 몸에 걸친 후 바닷가까지 헤엄쳐 갔다.
  
다른 여섯 명은 배에 남아 있었다. 그들이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 생선이 불 위에 놓여 있고 빵이 조금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것은 자비로우신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마련해 놓으신 것이었다. 하느님의 아들께서는 가엾은 당신 어부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셨다. 이것을 보고 그들은 주님께서 자신을 생명의 빵이라고 선포하시면서 기적을 행하셨던 빵과 물고기를 분명히 기억했을 것이다. 그물을 바닷가로 끌어 올려 그들이 잡은 물고기가 153마리인 것을 세어 보고나서, 그들은 이분이 주님인 것을 확실히 믿게 되었다. 사도들은 주님께서 자기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듯이, 이렇게 고기가 많이 잡힌 것은 궁극적으로 베드로의 배에 끌려 들 게 될 신도들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 요르단강 둑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하느님의 어린양" 으로 제시되셨는데, 이제 그들을 떠나시려는 지금 주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자들에게 이 칭호를 적용시키신다. 자신을 착한 목자라고 하셨던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목자가 되는 권한을 주신다. 다음 장면은 그들이 식사를 한 후에 벌어진다. 저녁식사를 하신 후에 성체를 주시고 그들과 함께 잡수신 후 죄사하는 권한을 주셨듯이, 이제 빵과 물고기를 같이 잡수신 후 주님은 자신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자를 돌아보시고 세 번 사랑의 확답을 요구하셨다. 사랑의 고백은 권한수여 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권한은 폭정이다.

모두들 조반을 끝내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요한 21, 15)

질문은 "으뜸 목자의 특징인 참된 초자연적인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느냐?" 는 것이다. 베드로는 한 번 최후만찬 저녁 때 주님께 다른 모든 사람이 주님께 화를 내고 주님을 저 버린다 하더라도 자기는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주제넘게도 주님의 위대한 사랑에 편승하려고 했다. 이제 베드로는 자기 원래 이름인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불리운다. 이렇게 부르심으로써 주님은 베드로에게 그의 자연인으로서의 과거와 특히 그의 죄와 주님을 부인한 것을 상기시켜 주고 계신다. 베드로는 은총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성에 따라 살고 있었다. 이 이름은 또 다른 의미도 갖고 있었다. 이 이름은 베드로가 영광스러운 고백을 했을 때 주님께서 그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복되다" 고 하시며 그를 바위로 삼아 그 위에 당신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던 것을 기억하였을 것이다. 사랑의 질문에 답하며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모두들 조반을 끝내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요한 21, 15)

이제 베드로는 더 이상 다른 제자보다도 주님을 더 열렬히 사랑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른 여섯 제자들이 주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원어를 보면 주님께서 사랑에 대해 쓰신 단어와 베드로가 대답하며 쓴 말과는 다르다. 베드로가 쓴 단어는 오히려 자연적인 감정을 나타낸다. 베드로는 지고한 사랑에 대한 주님 말씀의 의미를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다. 자신을 잃어 버린 베드로는 자연적인 사랑만을 주장하였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사랑은 당신을 섬기는 조건으로 삼으시면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 고 말씀하셨다. 철저히 죄에 떨어지고 자신의 약점을 철저히 안 자만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해주고 양들을 먹일 수 있는 최선의 자격을 갖추고 있음이 분명하다.
  
베드로를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임명한다는 말이 세 번 되풀이 된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했다 하더라도 그를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시겠다는 신적인 선언은 그대로 유효하다. 주님께서는 2차 3차 계속하신다.

예수께서 두 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예수께서 세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는 바람에 슬퍼졌다.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분부하셨다. (요한 21, 16-17)

두 번째 질문에서 주님께서 사용하신 그리스 원어는 초자연적인 사랑을 의미하였지만 베드로는 자연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전과 똑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세 번째 질문에서 주님께서 사용하신 단어는 베드로가 처음에 사랑에 대해 사용한 단어와 똑같은 단어로써 자연적인 애정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베드로와 그의 성품에 좀 더 부합하는 단어를 찾기 위해 당신이 사용하시던 단어를 고치신 것처럼 보인다. 베드로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를 몹시 슬프게 만든 세 번째 질문에서는 베드로가 쓰던 말을 그대로 쓰신 것 같다.
  
세 번째 질문에 대답하면서 베드로는 사랑의 확답을 생략하고 주님의 전지하심에 맡긴다. 그리스 원어로 베드로가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신다고 할 때 사용한 단어는 신적인 시각에서 안다는 것을 뜻한다. 주님께서는 그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아신다고 베드로가 말했을 때 사용한 그리스어는 직접적인 관찰을 통해 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었다. 베드로가 한 칸 한 칸 겸손의 사다리를 내려갈 때 주님께서는 한 발 한 발 베드로를 뒤따르시며 그가 맡게 될 임무를 보장하셨다.
  
주님은 자신에 대해 "나는 문이다" 고 하셨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열쇠와 문지기의 임무를 부여해 주셨다. 볼 수 있는 양떼에 대한 볼 수 있는 목자로서의 구세주의 임무는 끝났다. 주님께서는 천상 옥좌로 보이지 않는 목자가 되시기 전에 으뜸 목자에게 당신의 임무를 넘겨주셨다.
  
갈릴래아 어부는 지도자로 승격되며 교회 수위권을 받는다. 어떤 사도 명단이나 베드로는 사도들 가운데 맨 첫 자리에 나온다. 베드로는 항상 이름만 맨 먼저 불리울 뿐이 아니라 행동도 항상 앞장을 선다. 베드로는 첫 번째로 주님의 신성을 고백하였으며 사도들 가운데 맨 처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신 것을 증거하였다. 바오로 자신이 말한 것처럼 베드로가 맨 처음으로 주님을 보았으며, 오순절에는 성령의 파견을 받아 같은 동포들에게 맨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는 어린 교회 안에서 격렬한 박해자에게 맨 처음으로 반대했던 사람이며, 신앙을 가진 이방인들을 교회 안에 받아들인 12사도 가운데 첫 번째 사도였으며, 그가 그리스도 때문에 죽음의 순교를 하게 되리라고 처음 예언된 사람이었다.
  
공생활을 하시는 동안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바위라고 하시며 이 바위 위에 당신 교회를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주님께서는 당신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시리라는 것을 예언하셨다. 그 때 베드로는 주님께 십자가를 지시지 말라고 유혹하였다. 주님께서 사탄의 행위라고 부르신 그 유혹에 대한 보상으로써, 주님께서는 그에게 당신 어린양들과 양떼를 지도할 완전한 권한을 부여해 주시며 베드로 자신도 십자가 위에서 죽을 것이라고 예고하셨다.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너는 사람들이 나를 못박았던 십자가와 같은 십자가와 네가 십자가를 통해 영광에 들어가려는 나를 방해 하려 했던 그 십자가를 갖게 될 것이다. 이제 너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한다. 나의 사랑은 죽음으로 나아가는 현관이다. 내가 너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죽였다. 네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은 너를 죽일 것이다. 한 번 말한 적이 있듯이 착한 목자는 자기 양떼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다. 이제 너는 내 대신에 내 양떼의 목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너는 너의 수고에 대해 내가 받은 것과 똑같은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것은 십자가요, 네 개의 못이요, 그리고 영생이다."

이어서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네가 젊었을 때에는 제 손으로 띠를 띠고 마음대로 돌아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이를 먹으면 그 때는 팔을 벌리고 남이 와서 허리를 묶어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 21, 18)

젊은 시절에 베드로는 충동적이고 고집이 셌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십자가 위에서 죽음으로써 스승에게 영광을 돌려드릴 것이다. 오순절부터서는 베드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는 감옥과 칼이 기다리고 있는 성도 예루살렘을 떠나야만 되었다. 다음에 그는 신적인 스승의 인도를 받아 사마리아로 갔으며, 이방인 꼬르넬리오의 집에 들어 갔으며, 그 후로는 새로운 바빌론의 로마로 가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베드로는 바오로가 끌어 모은 흩어진 낯선 사람들에 의해 용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끌려가 바티칸 언덕에서 순교자의 죽음을 맞이한다. 베드로는 스승과 똑같이 죽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자청하여 머리를 밑으로 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베드로는 초석이기 때문에 교회의 확고한 기초로써 땅 속에 묻히는 것이 지당하였다.
  
이와 같이 해서 항상 주님께 십자가를 버리도록 유혹하던 사람이 사도들 가운데 첫 번째로 십자가를 맞이하게 되었다. 베드로가 주님의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은 젊은 시절의 열정과 성급함보다도 그가 흔쾌히 맞아들인 십자가 때문이었다. 베드로는 주의 십자가가 죄로부터의 구원을 뜻한다는 것을 몰랐을 때는, 다른 사람들은 다 주님을 저 버려도 자기는 그러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스승보다 자기가 먼저 죽겠다고 했다. 이제야 베드로는 자신이 맞이하는 십자가의 의미를 갖고 중요성을 띄는 것은 갈바리아의 십자가에 입각해서 볼 때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인생의 말년 경에 베드로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십자가를 보며 이렇게 기록하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대로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은 뒤에도 여러분이 이런 일들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하려고 나는 힘쓰겠습니다. (Ⅱ베드로 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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