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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발현
조회수 | 1,835
작성일 | 07.06.11
사십 일이 다 되기 전에, 사도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전에 그들에게 발현하신 적이 있던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곳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이제는 그들과 함께 있는 것도 다 끝났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실 것이다. 그러나 떠나시기 전에 그리스도께서는 예언과 역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말씀하신다. 이전에는 그 어느 누구도 이미 예언된 적이 없었으나 그리스도는 예언되었으며, 구약성서를 살펴보면 살펴 볼수록 더 깊이 이런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서 교회는 율법서와 예언서, 시편의 보고(寶庫)로부터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끄집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말했거니와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나를 두고 한 말씀은 반드시 다 이루어져야 한다" 하시고 성서를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며 (루가 24, 44-45)

새로운 빛에 의해 만물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만물은 부활을 통해서 볼 때 이전의 어둠 속에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을 읽기 위해서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을 읽기 위해서는 햇빛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선한 의지와 사랑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어떤 내적인 조명이 필요하다. 때때로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서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이러한 말씀은 항상 예외없이 하느님과 인간을 맺어주는 보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애를 요약하시며 되풀이해서 구약성서는 당신은 고통을 받지만 승리하는 종으로 예언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성서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하였다." (루가 24, 46)

주님께서 기억하신 것이 있었더라면 그것은 산상설교가 아니라 십자가다. 십자가가 없었더라면 복음이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며, 십자가의 죽음은 주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시지 않았더라면 인간의 죄를 없애주지 못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죄의 악함을 보여 주셔야 했고 선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 악이 가장 잘 드러나기 때문에 당신이 고통을 당하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갈바리아 산의 그리스도를 뒤덮었던 어둠보다 이 세상에 더 큰 어둠이 내린 적이 없었을 것이다. 어느 전쟁이나 보통 양측 모두 선과 악이 뒤섞여 있어 옳고 그름이 불분명하지만, 주님의 십자가형에 있어서는 한 쪽은 흑이고 한 쪽은 백이었다. 이날 만큼 악이 강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악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는 도시에 폭탄을 투하하고 어린이들을 죽이고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선을 죽이는 것이다. 이 싸움에 졌기 때문에 악은 다시는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선과 악과 직면했을 때 고통을 당하여야만 한다. 사랑이 죄를 만나게 되면 사랑은 십자가에 못박힐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인간이 되셨을 때 하셨던 것처럼 당신 성심(聖心)을 옷소매에 가지고 계신 그런 하느님은 인간 갈가마귀가 그것을 쪼아먹는 일을 각오해야만 한다. 그러나 동시에 선은 악을 이기는 조건으로 바로 이 고통을 이용하셨다. 선은 모든 화와 분노와 미움을 떠맡아 탄원하셨다. "용서하소서!"라고 선은 다른 영광스러운 삶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다. 따라서 주님으로서는 영광에 들어가기 위해 고통을 당하시는 것이 당연하였다. 완전무장한 채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을 때 패배를 당한 악은 앞으로 사소한 싸움에서는 이길지 몰라도 선은 켤코 이기지 못할 것이다.
  
공자나 부처는 상처받은 세상에 아무런 희망도 줄 수가 없었으며, 선을 가르치며 무덤 속에서 썩어 버린 그런 그리스도라면 그도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눈물이 없는 형제애를 말하는 인도주의는 부러진 날개를 고쳐줄 수가 없으며, 여타 다른 교사들과 구별되는 지식의 원천도 없고 결국에는 그들과 똑같이 죽음의 속박을 분쇄하지도 못하고 땅바닥에 으깨어진 진리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입증할 수 없는 그런 너그러운 그리스도라면 그도 부러진 날개를 고쳐줄 수가 없을 것이다.
  
주님의 당신 생애에 대한 이러한 요약은 인간에게 도전장을 던지며 주님을 역사 밖으로 벗어나게 한다. 악이 선을 이기지 못하리라는 무슨 보장이 있을까? 주님께서 단순히 착한 사람이거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도덕가일 뿐이셨더라면 덕의 승리를 무엇으로 보장하였겠는가? 희생을 감수하도록 감화를 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인간 영혼의 존엄성을 가르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으며, 자신에게 유죄판결을 내려보라고 죄많은 세상에 도전하실 수 있었으며, 죽음의 순간에 당신 적들을 용서하실 수 있었던 주님께서 단순히 평범한 죄인들과 도둑들과 함께 남의 오락의 제물이 되기 위해 평범한 나무에 매달려 죽으시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요, 운명이었더라면 아마 사람들은 이렇게 절망적으로 물을 것이다. "착한 사람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착한 생활을 해야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이렇게 될 경우, 가장 극악한 불의라도 일소되지 않을 것이며 가장 숭고한 삶을 산 사람이라도 명예가 회복되지 않은 채 죽을 것이다. 주님의 가르침과 구타를 받으면서도 참아낸 인내심과 폭도들 앞에서 보여 준 온유함을 아무리 들어올려 치하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찬사가 그리스도를 죽음의 생명과 주(主)로 만들지는 못한다. 오히려 이러한 덕목들을 허무하게 만들어 버린다. 왜냐하면 이러한 덕에 아무런 보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고통을 당하셔야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아버지를 찬양하셨다. 원하는대로 성성(聖性)을 찬양하라. 그러나 무죄한 분이 교수대로 나가는 광경을 내려다보시고 못을 뽑아내어 그 자리에 왕위를 쥐어주지 않는 그런 신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천사를 보내어 가시관을 벗겨내고 그대신 화환을 씌어주지 않는 신에 대해서는 어떻게들 생각할까? 지구상에 살았었던 가장 숭고한 인생이 사람들의 악행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고 하느님께서도 말씀하실까? 새하얀 꽃처럼 죄없는 인생이 로마 사형집행인들의 구두발 아래 짓밟혀서, 으스러진 꽃처럼 썩어야만 되었다면 인간은 인간본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이러한 인생은 처음의 달콤함 때문에 오히려 더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우리로 하여금 진리와 사랑을 보호해주지 않는 하느님을 미워하게 만들지 않겠는가? 이것이 선의 종말이라면 구태여 선하게 살아야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정의의 결과라면 차라리 무정부상태가 들어서게 하라!
  
그러나 만일 주님께서 세상이 줄 수 있는 최악의 것을 받으시고나서 하느님의 능력으로 그 위에 살아나시고, 주님께서 전혀 무장하지 않으신 채 선과 용서의 무기만으로 전투를 하시어 살해되신 분이 승리하고 주님을 죽인 자들이 패배하였다면 희망을 갖지 않을 자 누구이겠는가? 순간적으로 악에 패배를 당한다해도 절망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어둠 속을 걸으면서 손과 발과 옆구리에 영광스러운 상처를 지니신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을 때 누군들 믿지 않겠는가? 주님께서 주신 법도는 명백하다. 인생은 하나의 투쟁이다. 우리 인생에 십자가가 없다면 결코 빈무덤은 있을 수 없으며, 가시관이 없다면 빛의 후광은 있을 수 없으며, 성금요일이 없다면 결코 부활주일은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 "나는 세상을 이겼노라" 라고 말슴하셨다고해서 주님의 제자들은 불행과 고통과 슬픔과 십자가형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주님께서는 투쟁으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해주는 평화를 주시지 않았다. 하느님께서는 전쟁을 계획하는 자들이 누리고 있는 평화를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천상 아버지께서 당신 아드님을 아끼지 않으셨다면, 천상 아드님 대신 주님도 당신 제자들을 아끼지 않으실 것이다. 부활이 의미하는 것은 물질세계에서 악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죄로부터 보호를 받는 것이다.
  
구세주께서는 사도들에게 "착하게 살아라, 그러면 고통을 받지 않을 것이다." 고 말씀하시지 않고 "세상에서 너희는 고통을 당할 것이다." 고 말씀하셨다. 아울러 육신을 죽이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을 죽일 수 있는 자들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주님께서는 당신 인생이 모든 제자들이 본받아야 될 귀감이라고 사도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들에게 세상이 주는 최악의 것을 용기를 가지고 침착하게 받아들이도록 독려하신다. 모든 고통은 "어루만지듯 쭉 뻗은 당신 손" 의 그늘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주님은 우리를 시련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부적이 아니시며, 오히려 대장으로써 싸움터에 앞장서시어 인생의 가장 힘든 고통을 영적 생활이 가장 풍부한 이득으로 변화시키도록 고무하신다.  인생에 대한 답변을 주는 것은 부활이다. 당신 자신의 몸 - 상처로 빛나는 구원의 깃발 - 으로 사악한 세상에 승리의 담보를 보여주신 주님은 여성적이 아닌 남성적인 그리스도이시다. 시인 에드워드 실리토 (Edward Shilito)는 이렇게 말했다. "고통과 슬픔을 모르는 어떤 거짓 신도 오늘의 우리를 위로할 수 없다."

상처투성이의 예수

한번도 찾지 않던 당신을 지금 찾나이다.
어둠을 뚫고 이글거리는 당신 눈동자 우리의 유일한 별입니다.
우리에게는 당신 이마에 나있는 가시 자국이 꼭 필요하며 상처투성이의 예수, 당신이 우리에게 늘 꼭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늘이 두렵습니다. 하늘은 너무도 조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 어느 곳에도 우리가 자리할 곳 없습니다.
상처 때문에 괴롭습니다. 향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주 예수여, 당신 상처를 통하여 당신 은총을 구합니다.
문이 잠겨 있을 때 당신께서 가까이 다가오시면, 손과 당신 옆구리만을 보여주소서.
우리는 오늘 상처가 무엇인지 알았기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당신 상처를 보여 주시면 그 의미를 알 것입니다.
다른 신들은 강했지만 당신은 나약했으며, 사람들은 말을 탔지만, 당신은 비틀거리며 왕좌에 나아가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상처만이 우리의 상처와 얘기를 나누실 수 있으며, 그 어떤 신도 상처가 없으며, 주님 홀로 상처를 갖고 계십니다.

에드워드 실리토 (1872-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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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62.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몸을 가지시다  4012
82   61. 승천  3452
81   60. 회개  3720
  59.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발현  1835
79   58. 신적인 명령  1890
78   57. 권위의 조건인 사랑  1909
77   56. 손가락과 손과 못  2092
76   55. 닫혀 있는 문  1902
75   54. 지상의 가장 심각한 상처 - 빈 무덤  2202
74   53. 그리스도의 밤친구들  2260
73   52. 주의 옆구리를 찌름  2038
72   51. 성전휘장이 갈라지다  3017
71   50. 십자가를 향한 칠언(七言)  2124
70   49. 십자가상의 칠언(七言)  2454
69   48. 십자가 처형  2248
68   47. 빌라도 앞에서의 두 번째 재판  2166
67   46. 명단의 맨 하위  1924
66   45. 빌라도 앞에서의 재판  2151
65   44. 베드로의 부인(否認)  2157
64   43. 종교재판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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