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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몸을 가지시다
조회수 | 4,117
작성일 | 07.06.11
승천 후 열흘이 지났을 때 사도들은 그들을 가르쳐주고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모든 것을 밝히 깨우쳐 주실 성령을 기다리며 함께 모여 있었다. 공생활을 하시던 중에 주님께서는 새로운 몸을 가질 것이라고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몸은 마리아로부터 취한 육체와는 다를 것이다. 바로 그 육체는 이제 아버지의 오른편에서 영광을 받으신다. 이 새로운 몸은 사람들의 의지에 따라 결합된 사교클럽과 같은 도덕적 실체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몸은 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실 때 보내주실 당신의 천상 성령에 의해 주님과 결합되어 있는 새로운 사회적 실체가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새로운 몸을 하나의 왕국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나 성 바오로는 이방인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몸으로 말한다. 주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이 새로운 몸의 본질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이 몸은 일곱 가지 특성을 지닐 것이다.

1. 주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당신 신비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은 신비체 안에서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인 탄생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적인 탄생으로는 아담의 아들이 되기 때문이다. 주님의 새로운 신비체의 지체가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양자로 만들어주는 세례의 물로 성령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2. 새로운 신비체와 주님과의 일치는 주님께 찬미가를 불러드림으로써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당신 이름으로 사교적 차를 마심으로써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방송을 들음으로써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주님의 생명을 함께 나눔으로써 이뤄지는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요한 15, 5)

3. 주님의 새로운 몸은 다른 모든 생물과 똑같이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겨자씨와 같이" 처음에는 조그맣다. 그러나 세상이 끝날 때까지 단순한 형태에서 복잡한 형태로 성장한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싹이 돋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마침내 이삭에 알찬 낟알이 맺힌다. (마르코 4, 28)

4. 집은 벽돌에 벽돌을 쌓아감으로써 밖에서 안으로 지어나가며, 인간 조직체들도 주변에서 중심부로 사람들이 증가함으로써 성장한다. 주님께서는 당신 몸은 살아있는 태아가 인간의 형태를 이루어가는 것처럼 안에서 밖으로 커나간다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받았듯이 신도들은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될 것입니다. (요한 17, 21)

5. 주님께서는 몸이 하나밖에 없으시다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몸이 여러개고 머리가 열 두 개라면 영적인 괴물처럼 보이실 것이다. 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한 목자가 있을 것이며 주님께서 당신 어린 양들과 양떼를 치기 위해 그를 임명하실 것이다.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어 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 나는 그 양들도 데려 와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내 음성을 알아 듣고 마침내 한 떼가 되어 한 목자 아래 있게 될 것이다." (요한 10, 16)

6. 주님께서는 당신의 새로운 몸이 당신께서 진리를 전해주는 성령을 보내실 오순절이 되어서야 사람들 앞에 밝히 드러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떠나 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더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그 협조자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보내겠다. (요한 16, 7)

따라서 오순절이 스물 네시간 지난 후나 스물 네시간 전에 시작한 어떤 것도 하나의 조직체에 불과할 뿐, 그것은 인간의 정신으로 된 것이며 하느님의 영은 없을 것이다.
  
7. 주님께서 당신 몸에 대해 말씀하신 가장 흥미있는 말씀은 당신이 그러셨던 것처럼 이 몸도 세상의 미움을 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세상은 세속적인 것은 다 사랑하지만 신적인 것은 미워한다.

종은 그 주인보다 더 나을 수가 없다고 한 내 말을 기억하여라. 그들이 나를 박해했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의 말도 지킬 것이다. (요한 15, 20)

이 신비체의 핵심은 주님의 사도들이다. 이들은 원료와 마친가지며 주님께서 성령을 이 원료에 보내시어 연장된 당신의 자아가 되게 하신다. 그들은 주님께서 안계실 때 주님을 대표할 것이다. 세상을 복음화시키는 특권이 사도들에게 유보되어 있다. 사도들이 태아인 이 새로운 몸은 주님의 사후(死後)의 자아가 될 것이며, 세기를 통해 내려 오면서 주님의 연장된 인격체가 될 것이다.
  
주님께서 부활하시고나서 오십 일 째 되는 날 당신 성령을 보내실 때까지 사도들은 화학실험실의 원료와 같았다. 과학은 인체를 구성하는 화학요소들을 백 퍼센트 알고 있지만, 그것을 통합시키는 원리인 영혼을 창조할 수 없기 때문에 인체를 만들어 낼 수 없다. 화학원료가 인간의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처럼, 사도들도 교회에 신적인 생명을 줄 수 없다. 사도들은 그들의 보이는 인간성들을 통일시키기 위해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신적인 영을 필요로 하였다.
  
따라서 승천 후 삼일이 되었을 때 하늘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구세주께서는 책의 형식이 아니라 살아있는 불혀의 모양으로 당신 영을 그들에게 보내주셨다. 하느님께서 태아에게 영혼을 불어 넣어 주실 때 몸의 세포들이 새로운 인간 생명체를 형성하듯이, 사도들도 성령께서 그들을 하나로 만들어주기 위해 오셨을 때 볼 수 있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신비체, 즉 교회는 성전과 성서에서 "완전한 그리스도" 또는 "충만한 그리스도" 라고 불리운다.
  
이 때 그리스도의 새로운 몸은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드러났다. 마치 하느님의 아들이 성령의 그느르심으로 마리아의 태중에서 스스로 인성을 취하셨듯이, 오순절에 주님께서는 성령의 그느르심을 통해 인류의 태중에서 신비체를 취하셨다. 주님께서는 당신 인성을 통하여 가르치고 다스리시며 성화시키셨던 것처럼, 이제는 당신 몸 즉 교회안에 일치하고 있는 다른 인간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가르치고 다스리시며 성화시키실 것이다.
  
이 몸은 사람과 같은 육체적인 것도 아니고 브릿지 클럽과 같은 도덕적인 것도 아니며, 이 몸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 성령에 의해 천상적이며 영적인 것이 되기에 신비체라고 불리운다. 마치 인체가 수백억 개의 세포로 되어 있지만 하나의 영혼에 의해서 생명을 받고, 하나의 볼 수 있는 머리에 의해 관장되고 하나의 보이지 않는 정신에 의해 지배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합치된 수 많은 사람들로 이뤄져 있지만 하느님의 성령에 의해 생명을 얻고 하나의 볼 수 있는 머리에 의해 관장되고 한분의 정신이요, 머리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이다.
  
신비체는 연장된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성 바오로는 이러한 진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사울처럼 미워했던 사람도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 신비체의 초대 신자들은 사울을 물리칠 만한 사람을 보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이 기도에 답하시어 바오로를 보내시어 사울에게 대적케하셨다. 어느 날 이 박해자는 증오심을 내뱉으며 다마스커스로 가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지체들을 붙잡아 예루살렘으로 압송하려고 다마스커스로 출발하였다. 그 때는 구세주께서 승천하신지 불과 몇 년이 안된 때였으며 주님께서는 이제 하늘에서 영광을 받으시고 계실 때였다. 갑자기 강렬한 빛이 사울에게 쬐었으며 사울은 땅에 떨어졌다. 광란하는 파도소리와 같은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사울은 자기에게 이르는 말씀을 들었다.

그가 땅에 엎드러지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음성이 들려 왔다. (사도행전 9, 4)


하찮은 존재가 감히 전능하신 분의 이름을 물었다.
"주여, 누구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 때 목소리가 대답하셨다.

사울이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사도행전 9, 5)

어떻게 사울이 하늘에서 영광을 받고 계시는 주님을 박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서 하늘로부터 들려온 목소리가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고 말했을까?
  
만일 누군가가 발을 밟으면 발은 몸의 일부기 때문에 머리가 불평을 하지 않겠는가? 주님께서는 바오로가 당신 몸을 때릴 때는 곧 주님을 때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의 몸이 박해를 받을 때 일어나서 항의하시는 분은 보이지 않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비체가 그리스도와 개별인 사이에 놓여 있지 않은 것은 주님의 육체적인 몸이 막달레나와 주님의 용서 사이에 놓여 있지 않으며 당신 손이 어린아이들과 축복 사이에 놓여있지 않은 것과 같다. 주님께서 개인적인 삶을 통해 인간에게 오신 것은 당신의 인간적인 몸을 통해서였으며, 당신의 신비적으로 일체가 된 삶을 통해 인간에게 오시는 것은 당신의 신비체, 즉 교회를 통해서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살아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아와 갈릴래아에서 하시던 것처럼 지금도 가르치고 다스리고 성화시키고 계시다. 단 하나의 복음서도 쓰여지기 전에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는 로마 제국내에 존재하고 있었다. 교회에서 나온 것이 신약성서이며, 교회가 신약성서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이 신비체는 네 가지 두드러진 생명의 표시가 있다. 이 신비체는 일치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의 영혼, 즉 오순절의 선물인 한 성령에 의해 생명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교리와 권위에 있어서 일치가 교회의 생명을 하나로 유지시켜 주는 구심력이 되듯이 보편성은 원심력으로써 교회가 팽창하고 종족과 피부색의 구분없이 구원받는 인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교회의 세 번째 특징은 성성(聖性)으로서 이는 교회가 건전하고 순수하며 이단과 분열의 병에 걸리지 않은 상태로 지속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성성은 신자 개개인이 아니라 교회 전체의 성성인 것이다. 성령께서 교회의 영혼이시기에 교회는 영혼을 성화시키는 신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햇빛은 지저분한 유리창을 통과한다고 해서 지저분해지지 않으며, 성사의 도구인 인간이 죄가 있다해서 성사들이 성화의 능력을 잃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특징은 사도성이다. 생물학에서는 "Omne vivun ex vivo" (모든 생명체는 생명에서 나온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신비체는 사도적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역사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갖고 있으며 수 세기동안 그리스도와 결별된 인간으로부터 교회가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초대 교회는 모여서 유대의 후계자로 부활을 목격한 자와 사도들이 동료인 자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 오시는 동안,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예수께서 우리 곁을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줄곧 우리와 같이 있던 사람 중에서 하나를 뽑아 우리와 더불어 주 예수의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 21-22)

이렇게 육화 때 당신 자신을 "비우신" 그리스도께서는 오순절에 "가득차게" 되신다. 케노시스 즉 굴욕은 주님의 존재의 한 면이며, 당신의 신부인 신비체, 교회를 통하여 계속 살으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또 다른 면이다. 태양이 열과 빛을 비춤으로써 그 복사에너지로 땅을 채워주듯이 아래로 향하는 주님의 사랑은 성 바오로가 말한 대로 주님의 "가득차심"인 교회 안에서 완성된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예수님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수님을 믿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별로 유리한 점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주님을 신비체를 통하여 살고 계시는 하느님으로 보지 못한 사람은 주님을 인간적인 몸을 통하여 살고 계시는 하느님으로 보지 못했을 것이다. 주님의 신비체 안에 있는 몇몇 세포 안에 스캔들이 있듯이 주님의 육체적인 몸에도 스캔들이 있었다. 둘 다 인간적인 모습을 띄고 있기에 나약하게 보이고 십자가형을 당할 때 그 안에서 신성을 볼 수 있는 도덕적인 힘이 필요하다. 갈릴래아 시절에는 주님께서 이룩하러 오신 왕국, 즉 십자가형을 받으신 후 성령을 통해 인간을 성화시키실 당신 신비체를 믿기 위해서는 확실성의 동기에 바탕을 둔 믿음이 필요하였듯이, 오늘에 와서는 당신이 볼 수 있는 머리와 당신 몸인 교회를 통하여 다스리고 가르치며 성화시키는 머리, 즉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똑같은 확실성의 동기에 바탕을 둔 신앙을 필요로 한다. 각각의 경우 "들어 올림" 이 필요하다. 주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주님이 십자가 위에 "들어 올려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성령을 통해 인간을 성화시키기 위하여 주님은 승천을 통해 하늘로 "들어 올려야" 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과거에는 당신의 육체적인 몸을 통해 걸으셨지만, 이제는 당신 신비체를 통하여 여전히 살아 계신다. 교회가 복음서의 이후 역사이듯이 복음서는 교회의 이전 역사다. 주님은 베들레헴에서와 같이 여전히 여관방에서 박대를 받고 있으며, 소련이라는 이름과 중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새로운 헤로데들이 칼로 주님을 박해하고 있으며, 다른 종류의 사탄들이 나타나서 십자가와 극기를 버린 인기의 지름길로 주님을 유혹한다. 위대한 승리의 성지주일이 주님께 다가오지만 그것은 성금요일의 전주곡이다. 주님을 거슬러 새로운 고발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옛날처럼 종종 종교인들로부터) 즉 주님은 카이사르의 적이요, 비애국적이며, 민족을 타락시키고 있다는 등 주님은 밖에서는 돌로 맞고 안에서는 거짓 형제들로부터 공격을 당하신다. 사도들이라고 불리우면서 주님을 배반해서 적에게 넘겨주려고 하는 유다들까지도 많이 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영광을 받은 제자들 가운데 일부는 더 이상 주님과 함께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배들처럼 주님의 가르침, 특히 생명의 빵에 대한 가르침을 "지독하다" 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활이 없는 죽음은 없기 때문에 주의 신비체는 역사의 과정 속에서 수많은 죽음과 수많은 부활을 겪게 될 것이다. 주님의 처형을 알리는 종소리가 언제나 울리겠지만 그 처형은 영원히 연기될 것이다. 그때 주님께서는 "본티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셨던" 것처럼 만능의 국가권력 밑에서 박해를 받으며 죽으러 가실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아브라함과 예루살렘에 대한 모든 예언이 영적인 완성을 통해 그대로 이뤄질 것이다. 그 때 주님께서는 당신의 육체적인 몸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듯이 당신 신비체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요한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 일곱 가지 재난이 가득히 담긴 일곱 대접을 손에 든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에게 와서 "이리 오너라. 어린 양의 아내인 그 신부를 너에게 보여 주겠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령의 감동을 받은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 가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로부터 내려 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에 싸여 그 빛은 지극히 귀한 보석과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과 같았습니다.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대문이 있었고 그 열 두 대문에는 천사가 하나씩 있었으며 또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그 대문은 동쪽에 셋, 북쪽에 셋, 남쪽에 셋, 서쪽에 셋이 있었습니다.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 두 주춧돌이 있었는데 그 주춧돌에는 어린 양의 열 두 사도의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요한묵시록 21, 9-14)

나는 그 도성에서 성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바로 그 도성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그 도성에는 태양이나 달이 비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그 도성을 밝혀 주며 어린 양이 그 도성의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만국 백성들이 그 빛 속에서 걸어 다닐 것이며 땅의 왕들은 그들의 보화를 가지고 그 도성으로 들어 올 것입니다. 그 도성에는 밤이 없으므로 종일토록 대문들을 닫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러 나라의 보화와 영예를 그 도성으로 가지고 들어 올 것입니다. (요한묵시록 21, 22-26)

이 모든 계시를 보증해 주시는 분이 "그렇다. 내가 곧 가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 주 예수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요한묵시록 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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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몸을 가지시다  4117
82   61. 승천  3560
81   60. 회개  3833
80   59.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발현  1887
79   58. 신적인 명령  1943
78   57. 권위의 조건인 사랑  1960
77   56. 손가락과 손과 못  2140
76   55. 닫혀 있는 문  1953
75   54. 지상의 가장 심각한 상처 - 빈 무덤  2259
74   53. 그리스도의 밤친구들  2551
73   52. 주의 옆구리를 찌름  2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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